그냥 그렇게
“어렴풋이 내가 하고 싶은 걸 알지만, 결국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간다.”
"Je sais vaguement ce que je voudrais arriver à faire. Mais au fond j'y vais sans réfléchir."
"I know vaguely what I would like to do. But deep down, I go without thinking."
by Alberto Giacometti
아침 출근길에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괜스레 기분이 물결이 되어 넘실거린다. 도산대로 중간에서 다음 신호를 기다리며 빗방울이 가득한 사진을 찍었다. 와이퍼가 급하게 빗물을 밀어낼 때까지 고조되는 클래식 음악을 들었다. "이건 무슨 음악이었더라... 모르겠다." 와이퍼 레버를 올리자 청명하게 닦여진 시야에 파란불이 감돌았다. 오른발에 힘을 주면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오늘은 비
말없이 이유 없이
그냥 그렇게
글, 영상, 사진, 그림, 음악, 영화, 시, 소리… 지난 삶들이 알려준 다양한 표현의 언어이다. 가슴이 답답해질 때마다 생각의 거울을 닦는다. 자코메티가 말했듯이 어렴풋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알 것만 같은데, 그렇다고 딱히 설명하기도 어려워서 소리 내어 말하기보다는 침묵을 지키게 된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간다고 해서 무의미함이 아닌, 말 없어도 묵묵히 갈 수 있는 긴 호흡을 내쉰다. 오늘도 생각너머의 시선을 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