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 끝없는 대화 속에서
C는 슈트케이스를 내려놓으며,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 그에게 물었다.
“트래비스. 사랑이라는 게 그 자체로 의미가 있어? 아니면 우리는 상대를 바라보며 존재의 공백을 메우려는 걸까?”
잠시 방 안엔 커피 향과 묵직한 정적만이 감돌았다. 트래비스는 눈을 감고 시간을 세는 듯한 시계 초침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사랑은… 의미를 찾을 필요가 없어. 우리는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거지. 감정은 흘러가는 시간과 같아.”
C는 머리를 쓸어내리며 그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 말은 지나치게 단단해서 둘 사이의 거리를 느끼게 했다.
“그럼, 우리는 쉽게 사라지는 덧없는 것을 붙잡고 사는 거네.”
“덧없지 않으면 무엇이 있을까. 이 세상이 덧없음 그 자체라면… 사랑은 그 허무함을 견디는 방법일지도 모르지.”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깊고 검은 밤. 새들도 잠든 세상.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그들을 감시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 뭔 소린지 모르겠다. 모든 것들이 상징에 불과하다니. 그 상징 안에서 살아 있다는 느낌을 찾는 거라고?”
“상징은… 우리가 현실을 마주할 수 있는 유일한 틀이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그 외면 속에서 무언가를 찾는 게 더 편한 사람들도 있으니까.”
그녀는 그와의 대화 속에서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날 것의 감정을 다시 꺼내 보고 싶어졌다.
“그럼,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는 것도 허무함과 유의미를 연결하려는 실험인 거야?”
트래비스는 숨을 들이쉬며 대답했다.
“그래. 사랑은 생의 실험에 불과해. 우리는 현재를 정의하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정의는 아무것도 남지 않지.”
그녀는 허탈하게 웃었다.
“그럼 우리가 사랑하는 이유는 우리가 지금이라는 시간 속에서 실험되는 존재이기 때문이야?”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는 실험하는 존재이자 실험되는 존재야. 그 실험이 실패하더라도, 그건 우리가 존재한 증거가 되는 거지.”
그녀는 눈을 감았다.
“너와의 대화는 끝없는 미로 같아. 어디서 시작됐는지도 모르겠고, 어디서 끝날지도 모르겠어.”
“그게 사랑이라면… 끝이 없다는 게 오히려 진짜일지도 몰라.”
대답은 없었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려 했지만, 사랑이라는 단어 앞에서조차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만이 선명했다. 두 사람은 각자의 진실 속에서 서로를 마주했고, 그 속에서 또 다른 질문들을 던지며, 대화는 계속되었다. 끊임없이. 반복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