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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COVERY

창조와 발견, 그리고 다시 마주한 콜럼버스

by CHRIS
[Columbus, Rediscovered — by me] Italy. 2018. 6. 27. PHOTOGRAPH by CHRIS


창조와 탐험은 가려진 수풀을 헤치는 행위이며 수정된 해석이자 재발견된 가치이다. 커피를 마시려 식탁 위를 헤매던 시선에 우연히 걸린 ‘콜럼버스’ - 2018년 여름의 초입, 유럽 남부의 상쾌한 아침이었다. 그 짧은 단어 하나가 ‘먹는다’는 의식을 멈추게 하고 기나긴 상념을 불러왔다. Columbus. Sugar cane. Discovery. Conquest... 단어와 개념이 뒤섞이며 사물의 뒤틀림 속에서 씁쓸한 역사의 잔향이 피어올랐다. 한줄기 생각의 파도가 그 어느 아름다운 피사체보다 눈길을 사로잡았다. 가끔은 기대하지 않았던 공감각적인 전율이 뜻하지 않은 곳에서 터져 나온다. La Dolce Vita! 인생은 당신이 말하듯이 설탕처럼 달콤하고 아침 햇살처럼 아름다울까? 당신이 경험하고 느끼는 대상의 모습은 진짜일까?


2018. 7. 15. SUNDAY


창조와 발견의 관계는 밀접하다. 대상을 창조하지 않고 단순히 향유하거나 소비하는 사람들은 흔히 성경이나 코란, 베다, 우파니샤드에서 증거 했던 창조주나 조물주의 전능을 원한다. 우리에겐 모든 것을 변질시키고 변화시키며 인간의 의식까지 조정하는 시간의 흐름을 간직한 말, 즉 언어의 역사가 있다. 종교 속에 자리한 창조자에 대한 신비한 전승 개념이나 위대한 인물에 대한 시대적 존중은 시간의 껍질을 제거하고 바라본다면 한줄기 허상과도 같은 것이다. 억겁의 시간을 걷어내고 상상 너머의 공간을 응시한다면 우열조차 사라진 평등한 개념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분쟁할 것도 없는 평화적인 의식도 바라볼 수 있다.

인간에게 내재된 본능적인 행위를 살펴보면 창조는 모든 생명체가 기본적으로 내재한 시스템적인 태도이다. 달리 말한다면 메커니즘적인 기능이다. 인간이 언어를 배우지 않고 사용하지 않으면 언어능력도 발달될 가능성이 사라지고 자연스럽게 퇴화되듯이 창조적 기능을 사용하지 않으면 사회 속에서 쉽게 잊을 수 있는 망각의 물질체로 변하게 된다. 발견은 흔히 창조를 직접적으로 행하지 못할 때 관찰체로서 점유할 수 있는 도구적이며 생산적인 잉여품이다. 뇌파의 기능이 퇴화되어 새로운 발명을 하지 못한다면 흥미로운 발견이라도 할 수 있게 창작이 본능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세상을 관찰하고 폐쇄적인 의미에 인간의 행위를 규제했던 시절의 과오에 대해 해석을 열어두어야 한다.

지난 삶은 놓인 시간을 이겨내느라 바쁘게 달렸다. 반복하는 러닝머신에서 미끄러지지 않으려는 듯이 중심을 놓치지 않기 위해 다리에 힘을 주며 쳇바퀴를 돌았고 그 달림이 쉼이 되기를 바라며 평지로 내려오고 싶었다. 구조화된 인식을 형성하고 철학적인 지도를 그리는 것에 소홀했다. 이제, 오래 지켜본 자로서 삶에서 발견한 창조의 태도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을 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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