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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MORTAL COIL

《죽음의 역사, 앤드루 도이그》 이 유한한 육체의 소란 속에서

by CHRIS
[THIS MORTAL COIL, ANDREW DOIG]


"우리가 이 속세의 번뇌를 벗어버린 다음, 죽음의 잠 속에 어떤 꿈이 올지 생각하면 망설일 수밖에."

《햄릿, 윌리엄 셰익스피어 Hamlet, Willam Shakespeare》


"방금 떠났다. 조금만 일찍 오지 그랬냐." 나직하게 울음을 감추는 목소리에 삼십 년 전 병원 의자에 나란히 앉아 가볍게 웃던 이모의 모습이 떠올랐다. 차갑게 잠이 든 얼굴을 보며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십 오분. 아마 조금 더 일찍 왔어도 이미 다가온 죽음은 막기 어려웠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은 죽음과 가까워지는 길이다. 죽음의 시간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태어나면서 점차 멀어지는 삶의 여정은 웅크렸던 시절의 어둠으로 돌아가는 한 방편일지도 모른다. 흑사병과 같은 전염병, 기근과 전쟁으로 인해 중세의 만연했던 죽음과 관동성 심장질환, 암과 뇌졸중, 폐질환, 치매, 자살로 야기되는 현대의 죽음은 어떠한 무게적 차이를 지니고 있을까.


코로나 백신을 맞다가 몸 안에 도사린 암을 발견하고서 조심스레 병명을 알리던 이모는 한동안 건강해졌다가 점차 온몸으로 암이 전이되는 가운데 쇠약해져 갔고 급작스럽게 이별을 고했다. 언젠가는 우리에게 끝이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별에 익숙했던 시간에서 예고가 현실이 되니 할 말을 잃어버렸다. 이번 가까운 이의 죽음에서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은 인지적 저하에 따른 죽음의 인식은 기억이 상실된 백지와 같다는 것이었다. 죽음은 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존재가 사라진다는 사실이고 현실에서 소멸되는 사건인 것이다.


"인생에서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이해해야 할 뿐이다. 지금이 바로 우리가 덜 두려워할 수 있도록 더 이해해야 할 때다."

《위태로운 터전, 마리 퀴리 OUR PRECARIOUS HABITAT, MARIE CURIE》


1만 년이나 걸린 구석기시대의 건강 수준의 극복은 페스트, 천연두, 스페인 독감, 티푸스, 콜레라, 장티푸스, 성홍열, 백일해, 홍역, 폐렴, 폐결핵, 괴혈병, 말라리아, 뎅기열, 산욕열,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을 물리칠 다양한 의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지진, 쓰나미, 화산폭발과 같은 자연재해에 대한 과학적 방비책을 사전에 도출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기근, 기아, 전쟁으로 죽음에 가까웠던 시대에서 합리적 이성의 상태로 멀어질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현대인들은 역사적 데이터와 기술적 코드를 통해 비만과 당뇨병, 고혈압, 근시, 요통, 뇌질환, 신경증, 헌팅턴병, 혈우병 등 인간을 괴롭히는 병명의 다양성을 만끽하는 동시에 파킨슨병, 알츠하이머, 알코올, 니코틴 중독, 자살, 교통사고까지 심리적이고 자극적인 생활 습관들과 복합적 정신 질환들이 죽음의 다양성을 이루고 있음을 관찰하게 된 것이다.


인간의 노화와 기대수명 사이의 격차는 점차 그 간극이 사라지면서 우리의 뇌간이 멈추는 날까지 수정과 보완의 형태로 외떨어진 죽음에 대해 완벽하게 방어적 행보를 보일지도 모른다. 《죽음의 역사, 앤드루 도이그 THIS MORTAL COIL, ANDREW DOIG》는 뜨거운 6월을 거쳐 8월까지 계속해서 한 번도 읽지 못한 채 시선에만 놓아두었다.


이모와 소란스레 이별을 하고 나서야 잠 속의 꿈이 의미하는 바를 떠올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의 얽힘, 죽음이 공존하는 삶의 현장은 죽음으로 향하는 인간의 유한한 육체 속에서 시간의 궤적을 고통스럽게 말고 있다. 인간은 삶과 죽음이 하나로 얽힌 소용돌이 속에서 영원한 잠으로써 유한한 삶의 고통을 벗어나고자 한다. 계속해서 숨을 쉬고 산다고 해도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면 고통과 감각, 반복적인 무게의 회오리 속에서 끊임없이 다가오는 죽음은 한정된 삶과 함께 하기란 어렵지 않을까. 차갑고 유한한 삶의 소란이 따갑도록 목구멍 한가운데를 스치고 지나간다.



To die, to sleep—

No more—and by a sleep to say we end

The heartache, and the thousand natural shocks

That flesh is heir to. ’tis a consummation

Devoutly to be wish’d. To die, to sleep—

To sleep—perchance to dream. Ay, there’s the rub!

For in that sleep of death what dreams may come,

When we have shuffled off this mortal coil,

Must give us pause—there’s the respect

That makes calamity of so long life.

《Hamlet, Willam Shakespe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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