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TIAL RITUALS

《공간의 심리학》 은밀한 공간, 은밀한 거리

by CHRIS
[SPATIAL PSYCHOLOGY, 2025. 11.17. PHOTOSHOP & PROCREATE. IMAGE COLLAGES DESIGNED by CHRIS]


일 년에 두 번 반복하는 의식처럼 머리를 정돈하는 시간에 《공간의 심리학》을 읽었다. 공간 심리학의 원제는 《왜 남자들은 나란히 서서 소변보기를 꺼리는가: 그리고 공간 심리학의 다른 수수께끼들 Warum Männer nicht nebeneinander pinkeln wollen: und andere Rätsel der räumlichen Psychologie by Walter Schmidt》이다. 취미가 독서이던 시절, 집중도가 강해지는 방식은 화장실에서 책이나 신문을 읽는 것이었다. 배출을 목표로 하는 공간에서 새롭게 정보를 담는 아늑한 사고의 행위는 집중력을 향상한다. 저자 발터 슈미트 또한 입력(Input)과 출력(Output)이 함께 공존하는 부류인가 보다. 그는 사회적인 공간의 무의식적 행동 패턴은 화장실에서도 철학할 수 있음을 선언하고 있다. 남성들이 공공장소에서 거리 유지에 실패하지 않기 위해 선택하는 화장실 간격으로 사고의 제목을 연 슈미트는 "공간의 심리학"이라는 제목의 간결성으로 그 의미가 간소화되었으나, 저자의 종국적인 의도는 현대 사회가 은밀하게 통제하는 감정과 권력의 분산 방식에 대한 철학적 나눔이라고 하겠다.


"세상 누구라도 따뜻함과 편안함이 있는 자신의 잠자리에서는 평화로움과 안전함을 느낀다."

《인간과 공간, 오토 볼노브 Mensch und Raum by Otto Bollnow》


인생은 사건의 연속이다.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각자의 동굴로 숨어 안정을 도모한다. 타인으로부터 욕을 한 바가지 듣고 기분이 상한다. 방으로 돌아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어둠 속에서 눈을 감는다. 들이닥친 사건을 외면하다 보면 아늑하다. 방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다. 마음 한 구석은 여전히 불안하다. 눈을 뜨고 찬 바람을 맞아야 한다니, 나는 연약하다. 귀찮다. 지속적으로 잠을 청한다. 동굴 속에 누워 버린 인간은 자신의 공간을 되찾고 회복할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살아가면서 자기 영역을 확보하는 것은 뇌적인 지능과 육체적 힘을 필요로 한다.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공간의 비밀은 스위스의 산악등반가 샤를 비드머(Charles Widmer)의 말로 설득력을 지닌다.


"우리의 마지막 신체기관인 모든 감각기관은 공간을 이용하는 것에 맞춰져 있다."


너무 가까이 있어도 답답하고 너무 멀리 있어도 서운한 인간의 거리는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비교한 날카로운 가시털을 가진 설치류 호저(Hystrix cristata)의 가까이 다가가기엔 육체적으로 먼 간격이다. 매서운 삶의 혹한기에 추위를 물리치려고 빡빡하게 모여든 호저는 서로의 가시에 찔려 뿔뿔이 흩어졌다. 흩어지고 보니 또다시 너무 추워서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가시에 찔리지 않으면서 최대한 바람을 막아낼 수 있는 가장 적당한 서로 간의 거리를 알아냈다. 살만한 인생이 될 수 있는 "예의"적인 거리는 더불어 살기를 가능하게 하는 필수적 거리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거리두기"라는 명언을 남겼다. 타인과의 거리를 통해 서로의 생명을 유지하고 보장받는 방식은 전쟁이나 기아, 질병처럼 생명과 죽음이 현재의 삶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을 때 머릿속에 각인된다. 더불어 살려면 거리두기가 필수이다. 코로나가 해제되고 감염의 위험이 낮아지면서 사회적 거리감에 대한 감수성이 개인마다 다르게 흔들리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그러나 코로나라는 팬데믹을 겪고 한국 사회는 거리감이 감옥에 가두는 격리와는 다른 사회적 양식임을 인지하게 된 것은 분명하다.


우리가 바라보고 추구하는 대상은 미로나 비밀의 정원처럼 꿰뚫어 보기 어렵거나 숨은 풍경이 많을수록 매혹적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이국을 찾고 다시 이국에서 고향을 떠올리는 아이러니를 반복한다. 알 수 없는 세계에서 밤귀가 밝은 사람과 거울신경에 따르는 사람들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뢰탐지견'의 역할을 맡는 선구자들은 스스로의 공간영역을 개척하는데 적극적이다. 가스통 바슐라르가 이야기하는 집의 모성은 고향집으로 상징되는 어머니와 부엌의 온기가 함께 뒤섞인 장소이기도 하다.


인간은 미래를 상상하며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과거를 회상하며 의자에 등을 비스듬히 기대어 시간을 되짚는다. 태동의 어둠에서 빛을 향해 걸어간 뒤 기나긴 타향살이를 마친 뒤에 다시 생의 종말로 귀가하는 우리는 결국 돌아갈 어둠을 예감하며, 그 사이에 살아낸 취향과 감각을 공간 속에 새겨 넣는다. 우리는 공간 속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공간에 의해 기억되고 형성된다. 어쩌면 공간은 사람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존재였는지를 가장 은밀하게 비추는 거울인지도 모른다.


#공간심리학 #거리두기 #인간과공간 #생활철학 #브런치에세이 #철학 #공간 #심리학

keyword
작가의 이전글TWO WO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