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에 대하여, 세네카》 인간과 화
"인간은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기 위해 태어나고, 화는 서로의 파괴를 위해 태어난다. 인간은 화합을 원하고, 화는 분리를 원한다. 인간은 이익이 되기를 원하고, 화는 해가 되기를 원한다. 인간은 낯선 사람에게까지 도움을 주고자 하고, 화는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에게까지 공격을 퍼부으려 한다. 인간은 타인의 이익을 위해 기꺼이 자신마저 희생시키고, 화는 상대방에게 앙갚음을 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자신마저도 위험에 빠뜨린다. 화는 우리의 의지에 좌우되는 마음의 잘못이다. 화는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추하게 만들고, 가장 평온한 것을 거칠게 만든다. 화가 당신을 버리는 것보다 당신이 먼저 화를 버려라. 그동안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고 우리 자신도 괴롭히는 고통을 안겨준 화. 우리는 좋지도 않은 그 일에 귀한 인생을 얼마나 낭비하고 있는가! 화를 내며 보내기에는 우리 인생은 얼마나 짧은가!"
《화에 대하여,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DE IRA, Lucius Annaeus Seneca》
세네카가 들려주는 화에 대한 철학적 사색은 화가 제거된 차분한 지점으로 회귀할 것을 강조한다. 검붉고 희뿌연 분노를 걷고 선명한 세상을 본다면 기분은 청명할 것이다. 세네카는 화를 다루는 방법을 통해 인간의 조건에 대해 설명한다. 이성을 가진 인간이 화를 다룰 수 없다면 시끄럽게 떠들고 무작정 돌진하는 개나 소와 다를 바가 없다. 화에 둘러싸인 사람들은 종종 능력과 실천에 비해 기대치가 높다. 격정과 분노의 제거 및 소멸은 개인이 몸담고 있는 세상을 편견 없이 바라보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화가 솔직함이 아니라 어리석음, 사치, 낭비벽과 마찬가지로 분별없음에 대한 표현이라면 화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어떻게 유순하게 길들일 수 있을지는 각자의 숙제다.
"화병이라고요?"
그녀 스스로의 진단이었다. 아니,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화병일 거라고 생각했다. 주름 진 기억이 사라져 간 투병의 시작은 그리움과 원망 속에 묻혀 둔 몇십 년의 '화'로부터였다. 아무 데나 올라가는 손과 거칠게 욕을 털어내는 입은 가슴 한 구석에서 불처럼 솟아올랐다. 주체할 수 없이 번져나간 일그러진 화의 업식은 왼쪽 뇌혈관을 터트리고 오른쪽 사지를 마비시키더니 연이은 충격에 바닥으로 몸뚱이를 주저앉혔다. 아버지의 외도, 어머니의 죽음, 섞여있는 피의 가계, 가운데에 낀 어설픈 책임자로서의 고뇌, 살고자 하는 발버둥, 언니의 죽음, 실종된 동생,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 낙망, 남편과 자식에게 삶의 전부를 쏟아붓던 시간이 뒤집혀진 후 뇌혈관에 압력과 충격을 가하는 분노는 머리와 심장에 부담을 주었다. 혈류가 한 곳으로 몰리면 소리 없이 터져버린다. 급발진이 초래하는 위험성은 브레이크가 없다. 마약, 음주, 흡연, 도박, 폭력, 섹스와 잘 버무려진 한 사발 비빔냉면처럼 화가 피어오르면 세상과 부딪힌 곳은 빨갛다.
기억을 잃어버린 그녀가 천진하게 웃는다. 목욕을 막 끝낸 발바닥이 차갑다. 길게 자란 손톱을 깎으며 똑똑 청량하게 부러지는 소리가 안으로 움츠리는 손을 잡게 했다. 나의 화는 금세 식는 편이다. 한번 투지가 불타면 감정이 뜨겁게 돌았다가, 최악의 부딪힘의 결과가 예상되거나 쓸데없는 부딪힘을 겪고 나면 냉정해진다.
대규모 인간 심리가 결집된 주식시장처럼 개별적 인간의 행동 심리에 대한 예측은 삶에 도움 되지 않는다. 이성이 자리하고 있는 자리에 감정에 대한 평가를 늘어놓으면 상대방은 길길이 날뛴다. 평온해지는 얼굴 속에서 인간이길 포기한 상대의 반응은 침묵으로 향하는 안정제가 된다. 감정상태를 쓰다 보면 화가 덧없게 느껴진다. 감정이 제거된 순간, 의외로 자유는 거기에 있었다.
세네카가 전하는 《화에 대하여》를 읽으며 인간과 삶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던, 화가 육체 밖으로 터지기 이전, 그녀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건강과 기억을 잃게 하는 화는 신체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타인에게 의지하게 만든다. 스스로 서서 기대임 없이 자유롭고 싶다면 화를 잘 다뤄야 한다. 그러나 일상의 화는 잠재된 손톱 밑의 가시처럼 불지불식간에 관자놀이를 저격한다. 쉽게 완화되지 않는 흉부의 통증에 움츠린 어깨를 펴보지만 여전히 어깨는 둥글게 말려있다.
"호흡을 편안히 하고 어깨를 폅니다. 등은 곧은 편인데 어깨가 안으로 말려 있어요. 가슴은 바로 호흡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척추를 이완하고 가슴을 펴보세요."
지나온 시간의 습관을 정렬해 본다. 무슨 일을 하든 삼십 년은 되어야 그 흐름을 조금은 알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차분히 수면 아래로 화를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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