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EBE, AMOUR, LOVE

《사랑, 그 혼란스러운》 일상의 혼란과 감정적 이탈

by CHRIS
《Liebe: Ein unordentliches Gefühl by Richard David Precht》


"우리는 모두 자신의 생각에 상징의 옷을 입혀서 받아들이고, 숙명처럼 그 생각이 이끄는 대로 행동한다."

조지 엘리엇(George Eliot)


사랑은 일상과 거리가 있다. 범인류적인 사랑을 사랑이라고 규정하기에는 광범위해 보이고, 사물에 대한 사랑을 사랑이라고 말하기엔 뭔가 부족해 보인다. 사랑은 특별할 것이라는 착각의 봉투 속에 담긴 백지 수표와도 같다.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에 따라 공이 무한대로 붙는 흥행 보증수표가 될 수도 있고 타인에게 지불을 거부하는 부도수표도 될 수 있다. 《사랑, 그 혼란스러운, Liebe: Ein unordentliches Gefühl》을 읽으며 사랑의 혼란함에 어지러운 일상을 묻고자 했으나, 과학과 인문학이 만나는 접점에 사랑이 있다는 리하르트 다비드 프레히트(Richard David Precht)의 설명을 들으며 무엇을 과학으로 정의해야 할지, 어디까지를 인문학으로 규정해야 할지에 대한 불분명한 잣대에 불쑥 반발심이 생겨났다.


감정은 표현으로 전이되듯, 글의 감도는 단어에 스며든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아름답고 기이한 성적 현상이 바로 사랑이라고 말하는 작가 앞에서 사랑이라는 감정보다 사랑이라는 단어에 주목해 본다. 번식과 투자, 탐욕과 수집, 선택과 집중처럼 모든 단어들은 짝을 잃은 사랑 옆에서 알알이 흩어졌다. 인간과 DNA가 거의 일치하는 보노보나 침팬지, 오랑우탄의 생식적인 접근과 해마의 수절적인 순애보 속에서 섹스의 빈도와 육체적 열정으로 표현되는 사랑의 혼란스러운 느낌은 성적인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진화론적이고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무성생식과 유성생식으로 분화하면 성정체성과, 섹스, 번식의 카테고리는 성, 연애, 사랑의 개념을 부자연스럽게 만든다. 공감, 호감, 헌신, 책임감과 같은 감정의 공동체적이고 육체적, 정서적, 심리적인 유대 또한 친밀한 결속의 경험이며,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무한계성을 가진다.


생물학, 심리학, 진화학, 유전학, 과학, 사회학도 아니고 더욱이 철학이나 문학도 될 수 없는 《사랑, 그 혼란스러운》은 잡을 수 없는 감정과 변동하는 정서에 대해서 말한다. 요약하자면 사랑에 대해 말한 책 중에서 가장 혼란스럽고 작가적 색채가 규정되지 않은 글이었다. 읽다가 쉬고 읽다가 문맥을 놓쳐서 사랑과 혼란이라는 단어에 시선이 머물렀다.


언제든지 침입해 올 수 있는 사랑의 물결 앞에서 현재의 나는 '기대의 기대'에서 한참은 멀어져 있다. 부서진 것들을 정비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이어가는 습관을 정렬해 본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흥미롭지 않은 사정이 생긴 것은 타인과 나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진 어느 날부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란 단어는 여전히 주목을 요구한다.


실제의 사랑과 사랑의 개념, 사랑의 현상, 사랑이 품은 이상은 모두 별개의 모습이다. 모든 것을 사랑으로 묶어두기엔 과포화된 단어의 범위는 일반적인 상식의 기준에서 멀어져 있다. 속박을 요구하는 단단한 의식의 규정만이 아니라 혼란스러운 작가와의 대화에서도 벗어나 본다. 낭만적 사랑, 낭만적 가정, 새로운 우리. 그것이 무엇이든 사랑은 영원히 혼란스러운 비규정의 형태로 머문다. 오늘은 이 책의 감상으로 설명 대신 단어만 남겨 둔다. 사랑, 그 혼란.


"살아간다는 것,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살아가면서 알 수가 없다. 살아가면서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자 노력한다면 자신이 알 수 없는 것의 의미를 만들어내도록 강요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쉴 새 없이 이미지를 만들어내면서 동시에 그에 대해 진실한 설명의 요구를 거부하는 것이 이 딜레마를 견디는 유일한 방법이다."

볼프강 이저(Wolfgang I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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