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벤야민 《오디오믈렛》, 추억의 간식
"추억의 오디오믈렛은 이상하리만큼 마음을 편하게 하고 새로운 희망을 가슴속에서 솟게 했다. 전투의 위험, 쫓기는 자의 경계심, 화덕의 따스함, 그리고 휴식의 달콤함, 낯선 현재와 어두운 미래를 한껏 드러내는 그건 그날 만들어진 양념이었다. 똑같은 레시피로 재현할 수 없는 기억."
《오디오믈렛, 발터 벤야민 Maulbeer-Omelette, Walter Benjamin》
피로가 쌓이면 고구마 맛탕과 우유가 먹고 싶다. 당신이 자주 만들어주던,
산산조각 난 유당의 텁텁함과 부드러운 설움이 입안을 채운다.
그러나 나는 생 고구마를 깎아 먹는다. 부탄가스는 떨어지고 힘은 없고 배가 고팠기 때문이었다.
사각사각 탱탱한 고구마에서는 때 이른 풋사과 맛이 난다. 아주 시어서 나는 눈알이 화하였다.
출출하면 커피 한잔과 계란후라이가 먹고 싶다. 당신이 자주 만들어주던,
단백질의 풍만함과 식도를 달게 쏘는 씁쓸함은 입안을 덮친다.
그러나 나는 커피를 내리 타서 마신다. 계란은 상했고 힘은 없고 여전히 배가 고팠기 때문이었다.
홀짝홀짝 싸구려 가루 커피에서는 아이의 흐느낌이 들린다. 아주 서글퍼 나는 귓가가 찡하였다.
간식 없는 삶은 하루 종일 시달린 몸을 시간의 세탁기에 넣는다.
물벼락을 맞은 뒤 다리가 저렸던 나는 많은 것을 잊었다. 붉은 십자가를 보러 갈 날짜도,
전화를 걸어서 확인해야 할 물음도, 빈 손으로 망연자실하게 길가에 나동그라진 무릎도,
두고 온 그대가 제비새끼처럼 목 타게 기다린 부름도.
조급한 발걸음은 단상 치는 목침, 낯선 거리 한복판에서 건들대는 오-뚝-이다.
잊고 있던 배고픔과 숨죽인 우울이 내 어딘가에 독(毒) 빗을 꽂는다.
그제야 활짝 열린 굶주린 목구멍ㅡ
악마의 동굴같이 음험한 속으로 거칠게 딸꾹질한다.
생 고구마 젖 비린내와 가루 커피의 설익은 탄내가 쏟아져 내린다.
쉰내와 토사물, 당신처럼 요리를 잘 만들지 못했던 눌은 기억들.
추억의 간식을 잊지 못한 입에선 끊임없이 무언가가 흘러나온다.
눈물도 고함도 진물도 신음도 아닌, 오늘 나의 生面不知 嘔吐가!
2005. 3. 23. WEDNESDAY
손맛을 타고난 어머니가 있다는 것은 한 개인의 유년기와 청년기를 거쳐 장년기와 노년기까지의 입맛을 장식하는 하나의 태도가 될 것이다. 평범한 간식을 접하면서도 같은 날의 숫자에, 다른 시간의 지점에서, 같은 사람에게, 다른 형태의 기억이 소환된다는 사실에서, 기억을 담은 시간적인 역사가 문화와 사회적인 연대기를 통해 상징적으로 그 모습을 바꾸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과거와 현재의 교차점은 우리들이 흔하게 접하는 추억에서도 드러난다. 역사적인 아우라는 변화하는 시간 속에서 알레고리적인 사고와 연결된다. 발터 벤야민이 설명하는 오디오믈렛의 복합적인 알레고리 기법은 뽕나무 열매에서 누에를 거쳐 비단으로 변화하는 재료적인 변형으로 이어짐과 동시에 오믈렛처럼 달걀을 깨고 섞고 가열하면서 해체된 현재를 하나의 요리로 재구성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추억은 존재의 이름은 같으나 감정을 품는 동시에 시간적인 동일성을 제거하게 되며 개인이 특정 시간에 경험한 감각은 기억으로 구성된 즉시 개별적인 사건으로 저장된다. 일상의 발견은 과거에 스쳐 지나간 감정의 파편에서 새로운 사유를 불러온다. 각자에게 결코 동일할 수 없는 시간과 경험은 우리가 흔하게 알던 맛, 즉 감각의 본질을 변화시킨다. 지나간 시간을 담담하게 응시한다. 혀끝에서 말없이 수그러드는 단맛에 잔잔하게 눈밑이 떨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