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들어보면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어두컴컴한 빗줄기를 헤치고 공항으로 가는 길에 잠이 쏟아졌다. 살갗을 스치는 습한 기운에 기분마저 가라앉았다. 사방이 어두웠다. 도로 위로 바닥을 쓸고 가는 빗소리만이 귀를 간지럽혔다. 자글거리는 소리가 눈가에 머문다.
비행기를 타고 다시 눈을 감았다. 출장 중에는 눈을 뜨고 있는 시간이 짧다. 최근에 헤집어놓은 기억을 들춰보며 속이 편치 않았다.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기에 그곳으로 가야 했다. 무덤덤한 가슴에서 모터소리가 난다. 아직 아물지 않았나 보다. 나를 조용히 응시하는 게 쉽지 않다.
어느 날에 서 있었다. 가만히 그렇게 그 사람들을 보다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환한 빛이 느껴졌다. 눈을 뜨고 창을 바라보니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하늘을 자주 보자고 했는데 잊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일하기 전 창 밖의 사람들을 십 분 정도 지켜본다. 걸어가는 연인들. 배달하는 기사들. 청소하는 아저씨. 줄 서 있는 아이들. 캐리어를 끌고 가는 사람들. 종종걸음 치는 여자. 담배를 물고 가는 남자. 하늘까지 보기는 그렇게 시선이 멀지 않다.
밤새 비 내리던 하늘 위는 말짱하다. 구름이 둥둥 떠있고 창공은 새파랗다. 고개를 들어보면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고개를 숙이며 잊고 산다. 우울한 비가 창을 스쳐도 하늘의 바다는 조용하다. 그 위의 우주는 더 조용하려나. 검고 짙은 나의 밤처럼 깊고 어둡겠지. 가슴이 답답해질 때마다 고개를 들어봐야겠다. 구름바다가 몽글한 하늘을 눈에 담아야겠다. 고개를 들어보면 다른 세상이 있다. 넓고 푸른 하늘의 구름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