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HORN TREE AND A THORN BIRD] 2024. 9. 11. PROCREATE. IPAD DRAWING by CHRIS
시인과 촌장, 하덕규, 그리고 많은 이들이 부른 [가시나무]. 언제였을까. 레코드 가게를 지나치다 우연히 듣게 된 노래 이야기는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내 속엔 피워낼 가시가 많아
당신이 다칠지 모르겠네
다가오는 사람도 떠나가는 사람도
가시가 너무 커버렸기에
마음껏 속내를 드러내 껴안아버리면
당신에게 아픔을 줄지도 모르겠네
가시를 잘라 함께 하기엔
물들어진 상처가 많았기에
당신과 함께 하지 못하겠네
가시도 잘리고
더 이상 잘라낼 것도 없는
가지만 안은 나무는
쉴 곳도 앉을 곳도 없겠네
그대의 자리도 없겠네
도시 한복판에 놓인 가시가 잘린 가시나무는 이렇지 않았을까. 《가시나무새와 가시나무》, 문득 이런 이야기가 생각난다.
외로운 가시나무 위
한 걸음 다가서면 두 걸음 멀어지는 그런 한 사람을 사랑하는 슬픈 가시나무새가 있었어.
날빛도 사라진 앙상한 나뭇가지에 앉아 한 사람만을 기다리고 그를 위해서만 노래하는 슬픈 가시나무새가 있었어.
그가 웃으면 웃고 그가 울면 따라 우는 가느다란 둥지나무 꼭대기에서 노래하던
슬픈 가시나무새가 있었어.
어두운 밤하늘을 벗 삼아 돌아가는 밤길에 그를 대신해 매에게 날개를 다친 슬픈 가시나무새가 있었어.
초췌해져 돌아온 그를 위해 자신의 깃털을 뽑아
따뜻한 둥지를 만들어준
슬픈 가시나무새가 있었어.
어느 추운 날 홀로 가시나무 위에서 그 사람만을 위한 노래를 부르다 하얀 눈을 붉게 물들인 슬픈 가시나무새가 있었어.
사랑한다고 말하면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 같다며 끝내 말 못하고 그를 위한 노래만 부르던 슬픈 가시나무새가 있었어.
오직 그 사람만이 듣지 못했던 슬픈 노랫소리가 있었어. 오직 그 사람만이 듣지 못하는 노래를 부르던
슬픈 가시나무새가 있었어.
끝내 그 사람이 그 새를 떠날 때도 가시나무 위에서 노래만 부르던 붉어지는 눈망울과 식어지는 숨결로 그의 행복을 빌던 바보 같은 가시나무새가 있었어.
그리고, 그 가시나무새를 사랑한 가시나무 한 그루가 있었어. 나는 가시나무야.
2004. 9. 12. SUNDAY
동화 같은 이야기는 어디서 주워 들었는가. 한 귀퉁이에 적혀있는 글들을 보면 사랑에 대해 생각하던 시절의 이야기인지 지어낸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콜린 맥컬로(Colleen Margaretta McCullough)의 《가시나무새들 | 가시나무새 The Thorn Birds》는 남녀의 엇갈린 사랑의 굴레가 인생이란 이름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단 하나의 사랑을 위해 여인 삼대가 엮어가는 사랑의 서정시!" 드라마로 만들어진 미니시리즈의 조용한 선율이 흐르는 화면을 응시하며 바라만 보는 사랑은 힘들겠다 싶었다. 품에 안을수록 서로 상처가 되는 사랑은 시작해야 하는 것인지 하지 말았어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바라만 보는 게 서로를 지키게 되는 사랑이라면 가까이 갈 수 없는 거리는 멀기만 했다.
상념이 가득했던 시절에는 스스로를 가시나무가 아닐까 생각했다. 가시나무새가 누굴 좋아하던 떠나가면 떠나감에 돌아오면 돌아옴에 가벼운 몸으로 물끄러미 한 자리에 서 있는 가시나무에게 연민이 갔다. 땅속 깊이 뿌리가 박혀서 떠나기도 어려운 인생의 면류관을 지고 있는 가시나무.
가시나무새는 가시나무를 벗어나 비상을 꿈꾸고 있다. 그리고, 가시나무는 자유롭게 날아가는 새를 볼 수 있다면 외로이 서 있어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