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에서 극점을 이루지만 박경리 작가의 장점은 흙에 기본을 두고 인물을 서술하는 생명력에 있다. 잘 개간하든 내버려 두든 대지가 가지는 모성의 성질은 자기조차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자식을 낳는다. 나는 길은 알되 가는 길은 모른다고, 다양하게 흘러가는 우리 삶의 행방은 무엇이 부서져서 흙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내 어머니의 자궁 같은 그곳에서 길들여지고 다듬어진다.
그리고 비옥하든 마르던 대지가 가진 영양분을 빨아낸 꽃봉오리가 이 세상에 불쑥 고개를 내밀 때 그것은 항상 같은 길로 안내되지 않는다. 별 다른 장애 없이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비가 오면 비 오는 대로, 편하게 무르익을 때로 익어서 스스로 땅에 고개를 떨구며 지 놈들의 열매를 뿌린 순탄한 씨들도 있지만, 어떤 풀씨들은 예측 가능한 길을 벗어나 비극적인 조류에 휩쓸리며 내장까지 파열되고 만다. 자신의 어머니가 물려줬던 피와 눈물, 삶의 가루들을 다시 어머니의 품에다 안겨주면서.
- '흙이 참 강물과도 같구나.'
중학교 시절, 박경리의 장편소설 《토지》를 보면서 머리가 아팠다. 당시 토지는 완결이 되지 않았기에 그 속에 살고 있는 인물들은 작가의 숨이 붙어있을 때까지 아니, 그녀가 죽어서도 끈질기게 살아있을 것 같은 질긴 악귀의 모습으로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그때 처음 작가에 대해서 진중하게 생각해 본 것 같다. 외우기도 어렵게 물밀듯이 등장하는 인물, 어지럽고 치열해진 상황에서 기울어지는 인간의 심성, 작렬하는 태양처럼 쉽게 분열하는 시대상. 나에게 작가란, 이해할 수 없는 생과 사의 암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 숫자 없는 컨테이너로 보였다. 개봉할 때까지 무엇이 들어있을지 알 수 없고, 보는 자가 스스로 비밀의 문을 찾아내지 않는다면 그 눈길조차 철저히 외면하는 매정하고 이름 없는 창조자 말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도덕적인 잣대를 넘어 운명적으로 살리고 죽이는 길에 놓아두려면 그는 생명 없이 축 늘어진 목각 인형을 살아있는 것처럼 조율하는 만능악사 내지, 초라한 배경에서도 생명력이 넘치는 화면을 그려내는 마술사가 돼야 하지 않겠는가?'
골똘히 한 가지 선율에 심취한 작곡가의 목소리로 자문하였다. 박경리의 선율은 항상 일관적으로 편한 음색을 띄지 않았고 간혹 음표가 빠지는 허점이 있었지만 그렇게 물을 정도였으니, 향토색이 짙은 고집 센 통영 여자를 꽤나 좋아했었나 보다.
내 어머니는 사천 사람인데, 어렸을 때 기억되는 그녀는 박경리 작가가 자주 그리는 경남의 어느 마을에서 태어난 여인의 모습을 고스란히 안고 있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걸맞게, 수십 년간 애환진 역사는 수더분한 여인네가 되지 못하고 주위에서 불거지는 기구한 일들에 버선발로 급히 장독 뒤에 숨어버린 몰락한 어느 집안의 며느리를 연상케 하였다.
나쁜 일이든 아니든 소재를 물면 종일 상상하길 즐겼던 나는 바람난 여인네처럼 뜨거운 아랫목에 누워 어머니에게 이것저것 물으며 지난 행적을 캐곤 했었다. 생각해 보니 그때는 잘 몰랐던 것 같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그리고 그 삶이 어떠한 의미를 담는 것인지를. 그저 파란만장하고 재미있는 묶음 소설을 듣는 것처럼 평범하게 보이던 전대(前代)의 삶이 흥미로운 가면극처럼 비쳤었다.
그러나 갑자기 철이 들어야 했던 어느 날, 병석에 누워버린 그녀의 허약한 모습을 보면서 김동인의 《발가락이 닮았다》처럼 '어딘가 닮았다'는 말을 무서워하게 되었다. 시골사람이 도시로 나와서 품행을 신사처럼 바꾸려고 해도 맨발로 밟았던 흙의 감촉을 잊지 못하고, 붉은 흙에서 태어났던 놈은 이름을 바꿔도 씨 도둑질을 못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고, 단지 같은 고장을 그렸음에도 박경리의 작품을 보면 내 어머니와 그녀의 가계, 유전적인 소양만이 아니라 나의 현재까지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김 약국의 딸들》은 어머니가 무척 읽고 싶어 했으나 아직까지 읽지 못하는 소설이다. 아마 평생 그녀 스스로 읽기가 힘들지 않을까 싶다. 언젠가 말해달라고 하면 머릿속 책장에서 꺼내 읽어드리려고 책을 폈었다. 박경리의 작품을 보면 항상 느끼는 점이지만 그녀는 사람들의 행동과 심리에 대해 많이 응시한 사람으로 보인다.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지켜보면 굳이 평탄을 넘어선 시대가 아니더라도 언제 어디서 쉽게 터져 나올 수 있는 불씨임을 발견한다. 인생이라는 숲을 파괴할 화력이 전개되고 본격적인 마성이 태동하는 근원지로 가정의 단위 구성원과 핏줄을 지적한 것은 그녀만이 가지는 모성전개방식이 아닐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어렸을 적 《토지》를 읽으며 받았던 괴이한 절망감은 《김 약국의 딸들》에서도 역시 비켜가지 않는다. 남의 말도 석 달이 안가 쉽게 잊는 사람이지만 직접 겪은 일들까지 씁쓸한 회한으로 접고 가는 사람들은 몇이나 될까. 박경리의 소설에는 언제나 그녀의 분신이라 짐작할 여자가 등장한다. 난 김약국의 딸들에서 둘째 용빈을 주목했었다. 그녀가 아버지의 죽음을 감지한 날 정윤과 나누었던 이야기는 박경리의 운명론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었을지 앞이 보이지 않던 날에 잠시 생각하였다.
‘인간의 운명을 다르다고 생각하는가? 다르다는 것은 운명이 아니다. 인간의 운명은 죽음이다. 늦거나 빠르거나 인간은 그 공동운명체에 있다. 죽음을 바라보는 꼭 같은 눈동자가 있다. 우리는 그것을 생각하지 말자. 상황이 다르다 뿐이지 사람은 대부분 자기가 눈을 감을 동안 여러 사람의 죽음을 체험한다.’
죽으면 아무것도 아닌 우리들의 삶이지만 기이하게 죽어가는 가족들의 운명처럼 저주스럽게 전승되는 삶의 회한이 돌림병처럼 피를 타고 전이된다. 그 순간 마법에서 풀린 석상의 사자가 목덜미를 위협하는 구체적인 이야기로 변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은 죽음을 만나지 않고서 살아갈 수 없는 인간들 누구에게나 잠재해 있다.
나는 《김약국의 딸들》을 보며 무엇을 잉태하고 낳아야 하되 그것을 비옥하게 하기 위해 다시 죽여야 하는 전염적인 생질의 순환이 대지가 가지는 모성전개의 뿌리가 아닌지, 어떤 인생에다 대입해 보게 되었다. 그 누가 비상을 먹고 자살을 하고 살인을 하고 지랄병을 안고 사위에게 살해되고 시아버지에게 능욕을 당하다 물에 빠져 죽는 일을 한꺼번에 받아낼 수 있을까. 모두 가닥가닥 갈려진 너와 나의 인생이기에 이상한 일들에 한숨을 뇌까리며 가스등 아래서 어제 같은 내일을 위해 소리 없이 통곡을 하는 것이리라.
작가 또한 자신이 끌어안을 수 없는 어떤 삶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지 지금에서 생각해 본다. 삶을 보는 눈이 두 개라서 다행이다. 눈을 감으면 그 세상조차 하나로 보이는 게 더욱 허망하지만.
눈을 뜨고 있었으나 맹점조차 보이지 않았던 암흑기는 이십 년 전이었나 보다. 모든 것이 전복되었던 날, 휘몰아친 사건들 속에서 침잠해 있었다. 그러다 숨이 막혀서 살려고 버둥거리다 보니 물귀신처럼 발목을 잡는 사람들까지 꺼내야 했다. 그리고 생사의 부침 속에서 살아지고 보니 난파된 배는아직도 비틀비틀 항해하고 있다. 멍청하게 죽지 않겠다고 생각한 어릴 때의 의지가 나를 살린 것인지, 독기 어린 삶에 대한 열망이 어둠까지 끌고 온 건지, 지금은 그 암흑에서도 나름대로 가닥을 잡아내일을 고민하는 여유도 알게 되었다.
인생의 바닥은 여기까지로 생각했다가 거기에서 더 나락이 있고 나면 낮과 밤이 다른 '지킬박사와 하이드'나 두 얼굴을 동시에 가진 '아수라 백작'같이 자아가 극도로 분열되는 복수자아를 경험하게 된다. 워낙 콧대가 높았고 들판의 잡초같았기에 미치지는 않았지만 온몸으로 욕설을 내뿜는 가운데 마음은 너덜거렸다.
불안했지만 그래도 나름 즐거움을 찾았던 십 대 시절도 예기치 않게 절반에서 동강 나면서 성격도 변해버렸다. 어릴 적 알던 사람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성충으로 변해버린 모습에서 애벌레를 기억하지 못하듯이 시간이 벌려놓은 삶에서 나의 이름과 현재의 얼굴과 과거의 모습을 연결할 이미지를 갖지 못하는 것이다. 이름을 들으면 그 사람이었나 놀라워했다가 이미 거리가 벌어진 세월과 아무 공통점이 없는 삶에서 더 이상의 이야기는 의미를 갖지 못한다.
가끔 어렸을 때의 치기는 함부로 내뱉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 이렇게살지 않을 거야.
- 내가 할 수 있어.
- 내가 할 거야.
우리가 삶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게 얼마나 있을까. 선택을 하면 책임을 지어야 하는 카드를 받기 전까지 뱉어놓은 말은 시원할지 몰라도 뿌듯할지 몰라도 그 카드값을 갚는 순간이 다가올 때 그 감당 앞에서 자유로울 자는 없다.
그래도 난 스스로 선택한 것에 대한 빚만은 다 갚고 미련 없이 훌훌 떠날 것이다. 운명의 그날이 다가올 때까지.
[THE FATE] SHANGHAI. 2007. 11. PHOTOGRAPH by CHR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