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시간과 지구라는 공간 위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거가 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과거에선 현재를 어떻게 규정지을까? 현재를 받치는 과거가 없다면 미래는 어떻게 지속될 수 있을까? 현재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과거가 어찌 됐든 상관없다는 게 아니라 과거가 투영된 현재도 괜찮다는 게 아닌가?
지금이 있다면 방금 전에라도 존재한 과거가 없을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더 많은 의문이 피어난다. 나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깨고 싶고, 또 다른 기준을 만들어가고 싶다. 하찮은 질문이지만 이런 단순한 퀴즈에 감금당하고 마는 것은 모호한 과거를 넘어 새로워지고 싶다는 바람에서 기인한다. 어느새 꼼지락거리는 마음의 꼬투리는 몰래 구멍을 뚫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세상은 부드러운 곳인가, 거친 곳인가? 내가 기억을 잃고 거리에 누워있을 때 구세군처럼 등장해서 옷도 주고 일자리도 주고 잠자리도 주고 사랑도 주고 감자 반 쪼가리라도 나눠먹는 사람들의 도시가 어디 숨어 있는가? 영화 <과거가 없는 남자(The man without a past)> 는 그런 세상을 보여준다. 기억을 잃어버린 사실은 과거가 없는 이에게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랑이라는 공구(工具)로 과거를 잊고 만들어가는 현재는 온정이 살아 숨 쉬는 동화처럼 훈훈하고 몽환적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섣불리 당신의 과거를 알고 싶지 않다. 알게 되었을 때 오히려 무덤덤해질까 봐 손톱부터 잘근잘근 물어뜯게 된다.
- 이대로 쭉 가자고요. 네?
내가 사랑하는 남자는 엇박자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정박자를 고수하고 고개를 끄덕이라고 한다면 지루함에 코부터 골고 말 테니까. 아키 카우리스마키(Aki Kaurismäki) 감독은 공간을 장식하는 색채구성에서는 블랙시트에 북구의 톤 다운된 정적을 충분히 우려내는 반면, 시간의 구성에 있어서는 사건 전개의 긴박함까지도 놀랍도록 의뭉스럽게 만들어버린다.
- 오호. 이게 뭐야! 완전 뚱딴지 같잖아?
그것이 그의 매력이다.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Leningrad Cowboys Go America)>는 단물 빠진 껌처럼 싱겁고 우스운 영화였다. 표정도 없고 뜨악한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흡사 찰흙에다 어설픈 자세로 박아 넣은 조약돌 같았다. 90년대 이 영화를 보고 몇 년 후에 TV에서 김 무스인가, 무스를 머리에 잔뜩 바르고 별스러운 스타일을 넓은 이마에 부쳐가며 코웃음을 조장한 남자가 자주 등장하곤 했었는데 나는 그를 보면서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밴드를 생각하곤 했다.
툰드라 같은 휘넓은 무대에서 전기장치를 넘나들며 사람들의 웃음을 끌어내기 위해 온갖 손 발짓을 구사하는 남자의 모습은 뾰족한 카우보이 부츠에 까마귀머리를 칼 세우고 무표정하게 로큰롤을 비실거리던 무명밴드의 아메리칸드림을 흥얼거리게 만들었다. 실제 존재하지 않는 밴드가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의 그림자를 흡수해 버린 것이다. 과거의 추억과 지난 꿈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현재의 평범한 형상들 위에 부재(不在)의 기억들을 올려놓고 새로운 방식으로 리믹스하는 부조리한 몽상과 같다.
<과거가 없는 남자> 바로 직전, 카우리스마키 감독은 <개들에게 지옥은 없다(Dogs have no hells)>에서 새로운 세계로 달려가는 남녀의 모습을 십 분간 선보였다. 개들의 뜨거운 혓바닥과 같은 온도로 열락의 김을 뿜는 열차에 오르며 방금 부부가 된 남녀는 애정 어린 시선을 교환한다. 그러나 석유를 채굴하러 혹한의 세계로 떠나는 그들에게는 떠나는 현재만 있고 과거가 없었다. 어떻게 이들이 사랑을 했고 남자는 지금에서야 왜 그녀를 찾은 것인지 설명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그들이 손을 꼭 잡고 함께 떠났다는 것이고 두 줄의 레일 위에서 그들의 현재가 날아갔다는 거다. 전혀 볼 수 없고 상상만 하게.
과거의 미래가 오늘의 현재이고 지금의 현재가 내일의 과거가 된다면 이 뒤섞인 시간들을 어디서부터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가느냐, 그게 삶의 관건인 것 같다. 과거가 없는 남자를 어떻게 사랑해야 될지 좀 감이 잡힌다.
현재에 집착해도 문제이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과거에 더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라고 흠칫거리는 트라우마는 상처받은 이들의 내밀한 골수 속에 단단하게 박혀있다. 과거 없이 그냥 말끔하게 현재만으로 상대를 파악할 수 있을까. 일련의 목차와 설명이 사라진 백지상태의 사람을 어떠한 편견 없이 환영하는 일은 어렵다. '그냥 가자' 그렇게 쿨하게 되는 사람은 속세에 미련이 없는 수도승이나 가능할 거 같다.
대상에 대해 궁금함이 생기면 아직도 충분한 설명을 요구하고 쉽게 수긍하지 못하는 성격이지만, 가끔은 그러고 싶다. 그 누구도 모르는 곳에서 아무 이야기나 떠들고 싶다. 말하는 것조차 지치면 그냥 술 한잔 마시고 싶다. 술도 힘들면 그냥 눈 감고 흐르는 음악을 듣고 싶다. 그건 그녀건 과거가 있건 없건 그런 미지의 공간에서는 익명의 시간 속에 놓인 존재에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을 테니까.
[Anonymous time] 2024.2. PHOTOSHOP & OPEN-AI DALLE·3 Prompt Design by CHRIS
빈털털이의 기억을 가진 여자에게 역시 빈털털이의 손을 가진 남자가 다가왔다. 그들은 사랑을 했을까?
2013. 9. 17. TUES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