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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Feb 29. 2024

YOUTH

젊음

[The YOUTH in the line of the AGEDNESS] 2024. 2. SKETCH DRAWING & PHOTOSHOP by CHRIS



소중한 순간은 깨달았을 땐 이미 지나가버리고 붙잡고 싶은 사랑은 덧없이 사라져 간다. 기다릴 수 없기에 시간은 한없이 애틋하고, 후회 뒤의 그리움은 피보다 더 짙은 향기를 풍긴다. 땅과 가까워지는 순간에 가장 황홀한 젊음으로 치장하고 좋은 꿈 한번 크게 꾸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가벼운 마음으로 <수상한 그녀>를 보고, <은교>의 이적요 시인이 슬프게 중얼거리던 축사를 떠올렸다.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As your youth is not a reward from your effort, My agedness is not a punishment from my fault."


이걸 진짜 시어도어 렛키 (Theodore Roethke) 시인이 말했는지는 모르겠다.


'박범신 작가는 롤리타 증후군인가? 후회도 많아. 여자는 싱그럽네.' 


한참 화면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난 이적요로 분한 박해일을 바라보며 어색한 노인 분장 뒤로 1999년이었는지, 2000년이었는지 세기말 밀레니엄(MILLENNIUM) 붐이 불던 그 시절, 대학로의 한 소극장에서 연극 <청춘예찬(靑春禮讚)>으로 만났던 젊은 박해일을 떠올렸다.



 

우린 바람 불면 대학로에 가야 했다. 친구가 일 년 정도 대학로 소극장에서 조명기사로 아르바이트를 할 때 자주 놀러 갔었던 동숭로는 문화예술의 보고였다. 당시에는 문화예술계 업체마다 연합으로 문화카드를 남발해서 저렴한 비용으로 연극, 영화, 뮤지컬, 인형극, 무언극, 국극 등을 자유롭게 볼 수 있었다. 


배우들과 감독들의 집산지였던 대학로의 연극판은 영화보다 더 현장감 넘치고 감칠맛 있는 코스를 선사했다. 자유로운 대사와 극적인 열기, 삶에 대한 고백들. 그러나 관객을 세명, 많게는 명정도 놓고 세상의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들을 보기가 얼마나 미안했던지 모른다. '극이 되면 좋을 텐데. 배곯지 않을 테니.' 그래도 꿈이 뭐라고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지 지금 궤도에 올라와 있는 배우들을 볼 때면 다행이라는 생각은 든다.   


그러니까 그때 <청춘예찬>으로 돌아가보면, 박해일이 담배를 물고 불량스럽게 이야기할 때 목에서 기침이 연달아 튀어나왔다. 작은 소극장에는 환기가 되지 않아서 담배연기가 자욱해질 무렵 꾹 참으려고 했는데 목이 간질간질하더니 한번 터진 기침은 멈추지를 않았다. 기침과 욕설. 기침과 독백. 기침과 대화. 기침과 적막. 얼른 밖으로 나와 물 한잔 마시고 기침이 멈출 때까지 들어가질 못했다. 좌석에 돌아갔을 때 청춘의 이야기는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 그저 희망차지 않았던 암울했던 분위기와 청춘이라는 단어와 위배되는 현실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막이 끝난 뒤 배우들과의 민망한 시선교환. 이후로 박해일은 목 안을 간지럽히던 따끔한 기침처럼 각인되었다.  

 

<청춘예찬>에서 그렸던 청춘(靑春)은 이름만큼 파릇한 봄이라기보다 겨울로 접어드는 가을의 끝자락 같았다. 계절이 뒤바뀌어버린 듯한 역설처럼 전복된 현실이 사실이라고 담담히 서술했다. 그런데 <은교>에서는 세월을 원망하듯 미련스럽게 늙음을 뱉어내고 자신도 이미 거쳐갔던 시절의 젊음을 질투하고 있는 걸 보니 작가는 싱싱한 젊음이 부러웠나 보다. 부러워하면 지는 건데. 어차피 흘러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나이 듦에 대해 부쩍 생각한다. 칠팔십도 안 되었는데 죽음을 입버릇처럼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연민도 들지 않는다. 죽음은 언제나 찾아올 수 있다. 갑자기 부지불식간에. 죽음이 특별하던가? 놀라워하다 보면 죽음에 눌려서 살기 어렵다. 죽겠다고 노래 부르는 노인네들이 죽음이 다가오면 제일 먼저 도망간다. 주변의 죽음이 많아지면 나이가 들어가는 거라던데, 오랫동안 주변의 죽음들에 무덤덤하여서 내 안의 그녀에게 물어봤다.


"살아있니? 넌 미동도 없어?"


우린 이전처럼 싱그럽지 않은 모습을 보며 슬퍼해야 할까. 꼭 그럴 필요가 있을까. 거울을 보면 이미 예전 같지는 않다. 시간에 맞게 변하는 세상에 대해 가볍고도 진중하게 관조할 수 있기를.


삶의 무거움과 가벼움은 보는 이의 몫보다 짊어진 이가 누릴 혜택이기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쉽게 말하여지기 어려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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