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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자 조르바 Apr 23. 2021

여기 무슬림 국가였지?

우즈벡(타슈켄트)Episode 2

1.

다음날 아침 11시, 나지르가 직접 호스텔 정문까지 찾아왔다. 택시까지 타고 간 그의 집은 혼자 사는 것 치고는 많이 넓었다. 침대가 없을 뿐 거실에 방하나, 부엌도 따로 있다. 오랜만에 군대처럼 모포 깔고 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의 집에는 다음 주 대입 시험을 앞둔 ‘잠식’이라는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나지르와 같은 법학 대학을 준비 중이지만 몇 번이나 시험에 미끄러졌다고 한다. 아마 삼수 이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다음 주가 시험인데 처음 보는 외국인에게 요리해주러 왔다니, 황송하고도 불편하다. 요리는 알아서 할 테니 공부하러 가라고 있는 힘껏 말했지만 그는 연신 괜찮다며 너털웃음과 함께 손사래를 친다. 이내 그의 선택을 존중해 주기로 했다.

그렇게 그는 가스레인지에 불을 켰다.


에어컨 따위는 없는 7월의 부엌, 땀을 뻘뻘 흘리며 우즈벡 음식을 하는 잠식을 보니 숙연해진다.

“진짜 이럴 필요 없는데..”


다행히도 빵을 찢어서 수프에 찍어먹는 우즈벡 음식은 입맛에 맞았다. 내가 맛있게 먹는 모습에 우리 외할머니처럼 흡족해하는 잠식을 보니 웃음이 난다.


밥 먹고 배도 불렀겠다,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질문 ‘너희는 왜 이렇게 나를 반겨줘?’를 입 밖으로 꺼냈다.


“우리는 손님 맞이하는 걸 좋아해. 한국도 좋아하고.”


“한국을 왜 좋아하는 건데?”


“한국 드라마는 너무 재미있어. 나는 주몽, 당겜, 겨울연가도 봤어”

당겜은 대장금이다. 우즈벡에서 한국 사극이 이렇게 인기가 많은 줄은 몰랐다. 국뽕이 차오르는 순간이다.     


“한국에서는 우즈벡이 미녀의 나라라고 해. 우리는 우즈벡에 밭 가는 김태희, 소모는 한가인이 있다고 하거든”     

“오 김태희! 김태희 나온 아이리스도 봤어! 한국 김태희가 더 좋아!”


“나도!!”

우즈벡에서도 김태희로 하나 되는 우리였다.     


2.


사실 나지르 집에서 며칠 동안 같이 지내는 건 많은 결심이 필요했다. 낯선 나라, 생판 처음 만난 사람이라는 사실 이외에도 따질 것은 많았다. 그는 카우치서핑 호스트도 아니었기 때문에 레퍼런스 따위는 없었고 무엇보다 무슬림이었다. 종교적 신념이 강한 사람은 '무슬림'이라는 단어 하나로 다짜고짜 욕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무슬림 신자와의 만남이 처음이 아니었다. 중국에서 어학연수 하던 시절, 첫 룸메이트가 카자흐스탄에서 온 ‘아셋’이라는 친구였다. 그는 무슬림이지만 다른 외국인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단지 돼지고기를 안 먹고 기도를 참 열심히도 한다는 점이다.

칭다오에는 외국인 유학생이 굉장히 많았는데 그중 모로코, 카자흐스탄, 인도네시아 등 무슬림 신자들도 꽤 있었다. 처음에는 몰래, 이후에는 대놓고 술을 먹고 알라에게 회개하면 괜찮다는 몇몇 무슬림들을 보며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지르는 함께 지내는 며칠간 무슬림에 관한 이야기를 거의 꺼내지 않았다. 오히려 의도치 않게 선반 위 화려한 무늬의 책을 보고 내가 질문했다.


“저 책은 뭐야?”

“아.. 이건 코란이야. 이 책은 함부로 만져서는 안 돼”

다시 보니 책은 보자기 위에 곱게 올려져 있었다. 갑자기 할 말을 잃었지만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오 이게 코란이구나. (정적) 그럼 코란을 볼 때는 보자기에 싸서 읽어?”     

“코란을 만지기 전에는 반드시 손을 씻어야 해.”

나지르는 코란에 대해 이야기하며 사뭇 진지하기도 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것도 같았다. 다행히 코란 이야기는 이쯤에서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내 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코란이라는 책의 하드커버를 본 날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코란의 화려한 하드커버에 손도 대지 않았다.

나지르와 잠식
호스텔 정문까지 찾아와 준 나지르. 햇빛 때문에 찡그린 표정이니 오해하시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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