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찾아서, 가드너처럼…
쉰 살에 다시 묻다

by 오피스 사가Saga

조직에서 거칠고 낯선 시간을 만났다.


23년을 일했다.
요란하지는 않았지만 나름 성실하게 살아왔다.
현장에서 버텼고, 공부를 이어갔고, 결국 박사학위도 마쳤다.

자랑이라기보다
그저 긴 시간을 통과해 왔다는 하나의 증명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은 단단해졌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쉽게 흔들리지는 않겠지,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리되었다고 느낀 그 무렵부터 모든 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쉰 살.
괜찮은 궤적 위에 서 있다고 믿던 시기에
가장 거칠고 낯선 시간을 만났다.



은근함이라는 이름의 폭력


처음엔 아주 미묘했다.

회의 자리에서 시선이 살짝 비껴가고,
설명은 했지만 듣지 않은 사람처럼 반응하고,
묘하게 무시하는 분위기가 공기처럼 깔렸다.

곧 알게 됐다.
그게 우연이 아니라 의도라는 걸.

본부장이 직접 나섰다.
둘만 있는 장소에서는 대놓고 소리를 지른 적도 있었고

공식석상에서도 인격무시성 행동과 눈치 주지가 잦았다.

그리고,

은근히 소문을 흘리고,
은근히 배제하고,
은근히 모함했다.

공개적인 폭력은 기록이라도 남는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남지 않는다.
증명하기도, 반박하기도 어렵다.

그 3년 동안
나는 서서히 말라갔다.

한 번은 정말
피를 토할 것 같았다.

분노라기보다는
억울함이 몸 안에서 맴돌다
빠져나가지 못한 느낌이었다.

그의 이름은 남기지 않겠다.
내 인생에서 언급할 가치도 없다.

다만
그 시간이 내 안을 검게 태웠다는 사실만 남는다.



나도 한때는, 희망을 믿었다


20년 전, 결혼을 앞두고
지금의 아내와 함께 영화 "행복을 찾아서"를 봤다.

영화 속 크리스 가드너는
처음부터 절망 속에 있던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아내와 밝은 미래를 꿈꾸던 사람이었다.
고가의 의료기기 스캐너를 팔면
곧 안정된 삶이 열릴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 스캐너는 팔리지 않았다.
집세는 밀렸고,
차는 압류됐고,
결국 아내는 떠났다.

아들을 데리고 노숙을 하며
지하철 화장실에서 밤을 보내는 장면까지
그의 추락은 잔혹할 만큼 사실적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그 시간들이
단순한 영화의 장면이 아니라
한 인간이 견뎌낸 현실이라는 점에서
오래 마음에 남았다.



큐브의 기적


그러던 어느 날,
가드너는 증권사 인사 담당자와 우연히 같은 택시에 오른다.

짧은 이동 시간.
자신을 증명할 기회는 단 몇 분뿐이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아무도 풀지 못하던 루빅스 큐브를 집어 든다.

뒤섞인 색을 빠르게 맞춰가고,
도착 직전 완성된 큐브를 건넨다.

그 한 장면이 통로가 되어
그는 딘 위터 증권사의 무급 인턴 면접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기회는 시작일 뿐이었다.
20명 중 단 한 명만이 살아남는 경쟁.
급여는 없고, 생존은 오롯이 그의 몫이었다.



그는 괴롭힌 사람을 말하지 않았다


인턴 기간 동안 그는
동료들보다 더 빨리 움직였고,
더 많이 전화를 돌렸고,
더 적게 쉬었다.

누군가는 그를 시험했고,
누군가는 은근히 무시했고,
누군가는 주차 심부름, 도넛 심부름까지 시켰다.

그런데 영화는
그를 괴롭힌 사람을 길게 다루지 않는다.

가드너 역시
그들을 원망하는 장면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그의 시선은 늘
‘다음 기회’와 ‘아들’에게 가 있었다.

나는 그 점이 오래 남았다.



그날, 그는 자신을 통과했다


6개월의 고단한 인턴 과정이 끝날 무렵,
그는 알고 있었다.
20명 중 단 한 명만이 그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마지막 날, 회의실로 호출된다.
파트너들이 앉아 있고
긴장감이 흐른다.


마틴 프롬이 묻는다. (내 기억이 맞다면 아래의 대화였다)


“Was it as easy as it looked?”
보기만큼 쉬웠나?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답한다.


“No, sir. It wasn't easy.”
아닙니다. 쉽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그가 덧붙인다.


“Good. Take it. Wear it tomorrow, okay?
Because tomorrow’s going to be your first day.
If you’d like to work here as a broker.”


내일도 그 셔츠를 입고 오게.
내일이 자네의 첫 출근일이 될 테니까.


그는 울음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인다.
울먹이면서 악수를 나누는 그 짧은 순간,
수많은 밤의 노숙과
지하철 화장실에서의 눈물이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회의실 문을 나와
복도를 지나
건물 밖으로 나온다.

그는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환호하지도 않는다.

수많은 인파 속으로 걸어 들어가
하늘을 향해 조용히 박수를 보낸다.
붉어진 눈으로
자기 손을 꼭 쥔다.

그는 누군가를 이긴 것이 아니었다.
자신을 짓누르던 운명의 파고를
기어이 통과해 낸 것이었다.

나는 그 장면을
내 인생의 한 장면처럼 오래 품고 있다.



상황은 지나가고, 존재는 남는다


그 3년은 지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사람이 내 인생을 대표하게 두지는 않겠다.

나도 누군가를 이기고 싶은 게 아니다.
그저
내 시간을 통과하고 싶을 뿐이다.

나에게는 나를 바라보는

아내와 두 딸이 있다.

행복은 환희가 아니라
끝내 무너지지 않는 중심일지도 모른다.


쉰 살이 되어 묻는다.


나는 지금
상황에 붙잡혀 있는가,
아니면 그것을 통과하고 있는가.


피를 토할 것 같았던 시간도
결국은 지나가는 한 구간일지 모른다.


그날 거리에서
조용히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던 가드너처럼,


나도 언젠가
아무 말 없이
나 자신에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아직,
나를 통과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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