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에서 사람답게 살아남는 법 - 첫 번째 이야기
관도대전 직후, 조조의 군사들은 적진에서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그 안에는 충격적인 비밀이 담겨 있었다.
조조의 부하들이 적장 원소와 몰래 주고받은 내통 편지들이었다.
당시 원소의 세력은 압도적이었다.
승패를 확신할 수 없던 상황에서, 많은 부하가 혹시 모를 패배에 대비해 미리 '보험'을 들어두었던 것이다.
이 사실이 공개됐다면 수많은 이가 반역자로 처형당했을 테고, 조조의 진영은 순식간에 붕괴했을 것이다.
하지만 조조는 전혀 다른 길을 택했다.
그는 편지를 단 한 장도 읽지 않고 모두 불태워버렸다.
그리고 담담히 말했다.
“그때는 나조차도 내 한 몸 보존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하물며 다른 사람들은 오죽했겠는가.”
그 순간 부하들이 느낀 것은 안도감 그 이상의 신뢰였다.
이 이야기는 훗날 ‘분서안반(焚書安攀)’이라 불리며, 반대 세력까지 품어 안는 리더십의 상징이 되었다.
나는 삼국지에서 이 장면을 처음 만났을 때 가슴이 뛰었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다짐했다.
'언젠가 리더가 된다면, 나도 사람을 품는 사람이 되리라.'
나는 올해 쉰 살이다.
그리고 지금, 보직에서 물러난 지 2년째를 지나고 있다.
나는 23년 동안 직장을 다녔다.
대기업에서 시작해 중앙정부, 지자체 산하기관을 거쳐 지금의 직장에 이르렀다.
이른 나이에 특별승진을 했고, 빠르게 보직에 올랐으며 기관장 비서라는 요직도 맡았다.
칭찬의 달콤함도, 시기의 씁쓸함도 모두 맛보았다.
그리고 지금, 나는 보직에서 해임된 지 2년째다.
‘보직 해임’이라는 단어의 무게는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다.
아내와 고등학생 딸은 아직 이 사실을 모른다.
혹시라도 이 글을 보게 될까 두렵지만, 그럼에도 나는 쓴다.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리고 나와 비슷한 처지의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라도 전하고 싶어서다.
이 글은 내 23년 직장생활의 기록이자, 처절한 복기(復棋)의 시작이다.
우리는 보통 ‘집단사고’를 거창한 경영실패에서나 등장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목격한 집단사고는 훨씬 일상적이고 비열한 행동이었다.
흡연실, 휴게실, 정수기 옆. 늘 같은 이들이 모여 누군가의 이름을 올린다.
시작은 가벼운 험담이지만, 말은 몸집을 불리며 사실을 왜곡한다.
결국 인격 살인으로 치닫고, 타깃이 된 한 사람을 조직에서 철저히 고립시킨다.
나는 그 잔인한 과정을 여러 번 목격했다.
그리고 어느 시점부터 그 화살이 나를 향했고 지금도 가슴에 박혀있다.
나의 부서에는 영향력이 큰 몇몇 구성원들이 있었고,
그들을 중심으로 여러 직원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흡연장 등에 모여 대화를 나누곤 했다.
어느 날 보니 나의 상사와도 가까운 관계였기에
그들이 나누는 평가가 조직 분위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느껴졌다.
이후 여러 경로를 통해 그 대화가 나의 업무 능력에 대한 비판에서
인격 평가까지 확장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사실과 다른 이야기들이 덧붙여지며
나는 어느 순간 ‘인성까지 문제가 있는 상사’라는 이미지로 굳어져 있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한 계약직 직원의 계약 종료 문제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기간을 조금 더 연장할 수는 없는지 의견을 냈지만 최종 결정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직원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전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내가 일방적으로 그 직원을 내보냈다는 이야기가 조직 안에서 사실처럼 퍼져 있다는 말을 들었다.
소문은 악의적인 상상력을 더해 점점 괴물이 되어 갔다.
사실과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 덧붙여졌고,
나의 이직 과정마저 마치 전 직장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떠나온 것처럼 왜곡되어 전해지고 있었다.
어느 순간 나는 내가 아닌 누군가의 이야기 속에 살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은 단 하나도 사실이 아니었다.
이렇듯 조직에서 거짓말은 사실보다 훨씬 빠르게, 그리고 훨씬 강하게 사람을 규정해 버린다.
몇몇 직원들로 인해 내가 주재하는 회의 분위기는 어색해졌고
직접적인 소통이 줄어드는 변화를 점차 느끼기 시작했다.
상당수의 보고는 상사에게 보내는 메일의 참조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나는 점점 조직의 구석으로 밀려났다.
그때까지도 나는 그것이 의도된 고립인지를 분명히 알지 못했다.
뒤늦게 여러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동안 상당히 고립된 상태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지키려 했던 ‘조직에 대한 예의’와 ‘참음’이
오히려 나를 더욱 침묵하게 만들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아직 답을 모른다.
직장에서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사람을 끝까지 믿어야 하는지, 아니면 철저히 거리를 두어야 하는지.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조조가 불태운 것은 부하들의 배신이 담긴 편지가 아니라 그들의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조직은 편지가 아니라 '사람이 타고 있다.
이 기록은 그 뜨거운 불길 속에서 내가 어떻게 타 들어갔는지,
어떻게 살아남으려고 하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연재의 끝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묻고 싶다.
“직장에서의 사람답게 살아가는 방법이 무언인지?”
그 답을 찾기 위한 긴 여정을 오늘부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