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감빵생활"이 주는 위로

- 그래도, 우리는 결국 사람 때문에 버틴다.

by 오피스 사가Saga

조직생활을 23년을 넘게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좋은 사람도 있었고,

아픈 사람도 있었고,

나를 아프게 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물론 내가 아프게 한 사람도 있을 겁니다.)


지금이 가장 힘든 시기인 것 같습니다.

나이를 먹어도 아픈 건 마찬가지입니다.
상처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시간이 지난다고 자동으로 낫지 않더군요.


얼마전,
아내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이거 같이 보자.”

그리고 넷플릭스를 켰습니다.

그렇게 저는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그 드라마를 보며 받은 위로를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어서 씁니다.

혹시 지금
저처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글이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솔직히
저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쓰는 글이기도 합니다.


감옥 이야기인데, 사람 냄새가 난다


'슬기로운 감빵생활' 은

말 그대로 교도소 이야기입니다.

김제혁(박해수)은 여동생을 구하려던 정당한 행동이

법정에서 '과잉방어'로 판결받으며,

메이저리그 진출을 앞둔 슈퍼스타에서

하루아침에 범죄자가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김제혁이 만난 다양한 재소자들과
교도관들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배경만 보면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일 것 같지만
막상 보면 전혀 다릅니다.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실수한 사람도 있고
억울한 사람도 있고
어쩌다 길을 잘못 든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누군가는 서로를 도와주고
누군가는 누군가의 편이 되어 줍니다.

그래서 이 드라마를 보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아… 결국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구나.”



친구라는 이름의 기적


이 드라마에는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도관 이준호(정경호)입니다.

그는 김제혁(박해수)과
초등학교 시절부터 함께 야구를 했던
둘도 없는 친구입니다.

보통 친구가 감옥에 가면
어색해지거나 거리를 두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준호는 달랐습니다.

겉으로는 원칙을 중시하는
차가운 교도관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제혁이 다시 마운드에 설 수 있도록
진심을 다합니다.

교도소 소장의 허가로 만들어진
야구 연습장.

그곳에서 준호는
제혁이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곁을 지키는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줍니다.

야구공 하나, 배트 하나가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는
인생의 마지막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준호는
제혁의 여동생 김제희(임화영)를 지켜주다
결국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친구의 인생을 끝까지 지켜준 사람이
이제는 친구의 가족이 되는 이야기.

이 장면을 보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인생이 무너질 때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건
거창한 기회가 아니라

곁에 남아 있는 친구 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형, 그냥 운이 없었던 거예요”


김제혁이 교도소에 들어와
모든 것을 자책하고 있을 때
옆에서 묵묵히 도와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법자 김영철(김성철)입니다.

본명은 김영철이지만
교도소를 너무 자주 드나들어
사람들이 “법무부의 자식”이라는 뜻으로 "법자"라고 부르는 인물입니다.

어느 날
자책하는 김제혁에게
법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형, 형이 뭘 잘못해서 여기 온 거 아니에요.
그냥 운이 없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이 장면을 보면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종종
모든 실패의 이유를
자기 자신에게서 찾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운이 안 좋았던 날도 있습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
그저 비바람이 거셌던 날이었을 뿐입니다.


거칠지만 결국 사람인 상사, 팽 부장


교도소에는
무섭게 보이는 교도관도 있습니다.

바로 팽 부장(정웅인)입니다.

그는 항상 이렇게 말합니다.

(정확한 대사인지는 기억이 명확하진 않지만)

“야, 이 새끼야!”
“정신 안 차려?”

말투만 보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입니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다 보면
가장 사람다운 사람이 바로 팽 부장입니다.

재소자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몰래 챙겨주고

위험한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뛰어갑니다.

겉으로는 거칠지만
속은 누구보다 사람을 지키는 공무원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회사에도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표현은 서툴지만
결국 내 편인 사람.



피보다 더 진한 관계도 있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깊은 울림을 주는 이야기는
무기수 김민철(최무성)과
젊은 재소자 장발장 안동호(강승윤)의 관계입니다.

김민철은 20년 넘게 복역 중인 장기수입니다.

겉으로 보면 거칠고 무뚝뚝하지만
감옥 안에서 만난 장발장을
아들처럼 아끼며 챙깁니다.

밥을 챙겨주고
바르게 살라고 잔소리를 하고
아버지처럼 걱정합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그 어떤 부자보다 진한 유대가 생깁니다.

시간이 흐른 뒤
장발장은 다시 교도소를 찾아옵니다.

죄수가 아니라
면회객으로 말이죠.

그리고 울먹이며 말합니다.


“아부지… 저 왔어요.
저 이제 나쁜 짓 안 해요.
열심히 살고 있어요.”


그 장면에서
울었습니다.

진심 어린 믿음이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건 때로 웃음이다


눈물만 있는 드라마는 아닙니다.

가끔은
정말 웃기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장면이
문래동 카이스트(박호산)와
해롱이 유한양(이규형)의 대화입니다.


“야! 나 문래동 카이스트야!
내가 못 만드는 게 어딨 어!”


그러자 해롱이가 말합니다.


“아저씨… 카이스트 안 나왔잖아요.
한양공고 나왔잖아요.”


그리고 마지막 한마디.


“그러면 뭐해효…
지금 여기 갇혀 있는데…”


이 장면을 보면
정말 크게 웃게 됩니다.

생각해 보면
직장에서도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엉뚱한 농담 한마디로
무거운 분위기를 깨는 사람.

사람을 살리는 건
거창한 위로가 아니라

이런 웃음일 때도 있습니다.


당신의 옆자리에는 누가 있나요


오늘 하루도
‘조직’이라는 이름의 창살 안에서
숨 가쁘게 달려온 당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의 곁에는
팽 부장(정웅인) 같은 사람이 있나요?

거친 말투로
“야 이 새끼야!” 하면서도
결국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


무너질 때
“형, 그냥 운이 없었던 거예요”
라고 말해주는
법자 같은 동료는요?


아니면
엉뚱한 농담으로
어떻게든 웃게 만드는
해롱이 같은 사람은요?


만약 이런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곳이 감옥이든
회사든
세상이든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 사람들 덕분에
오늘도 버티고 있습니다.


에필로그

- 그래도 우리는 사람 때문에 다시 일어납니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저는 많이 힘듭니다.

너무나 힘듭니다.

조직 생활 23년.

지금은 사람 때문에 무너진 날들의 연속입니다.

그래도
이 드라마를 떠올리며 다시 느낍니다.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지만
결국 사람 때문에 다시 일어난다는 것을.

살다 보면
누군가의 이준호(정경호)가 되어주는 날도 있고
누군가가 나의 이준호가 되어주는 날도 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 너무 힘들다면

오늘 하루만큼은
이렇게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래도 아직
사람 때문에
버틸 수 있다.”

오늘은 그렇게
하루를 버텨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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