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능한 인재들이 모여 ‘멍청한 결정’을 내리는 이유

- 집단사고(集團思考, Groupthink)라는 조용한 재앙

by 오피스 사가Saga

3년 전이었다.

나는 한 대학의 대학원에서 특강 요청을 받았다.

주제를 고민하다가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야간 수업이라면
수강생 대부분이 직장인일 것이다.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공부를 이어가는 사람들.

그렇다면 그들이 가장 공감할 이야기는
아마 이것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특강을 이런 질문으로 시작했다.

“왜 똑똑한 사람들이 모인 조직이
가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어리석은 결정을 내릴까요?”

실제 회의실에는 전문가들이 모여 있고
데이터도 충분하며
경험도 풍부하다.

그런데도 조직은 때때로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을 내린다.

그날 강의의 중심에 있었던 개념이 바로
집단사고(集團思考, Groupthink)였다.

이 개념을 정리한 사람은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어빙 재니스(Irving Janis)다.

그의 정의는 간단하다.


" 응집력이 강한 집단이 갈등을 피하려다 보니

비판적 검토 없이
만장일치라는 이름의 잘못된 합의에 도달하는 현상"


강의를 준비하며 여러 사례를 살펴봤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망하는 조직은 놀라울 만큼 비슷하게 망한다.

1,800년 전 삼국지(三國志) 속
군벌 원소(袁紹)의 허베이 진영부터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Challenger) 폭발 사고까지.

시대도 다르고
조직도 다르지만

망하는 조직에는
소름 끼치도록 닮은 네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오늘,
3년이 지난 지금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내 보고 싶다.



“바른말하면 위험하다”, 조직이 망하기 시작하는 첫 번째 신호


망하는 조직은 대개
아주 조용하게 변하기 시작한다.

회의실에서 누군가 한 번
불편한 말을 했다가
차가운 공기를 경험하는 순간.

그다음부터 사람들은
조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회의는 점점 조용해진다.

조직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의 붕괴라고 부른다.


삼국지에서도 같은 일이 있었다.

원소(袁紹)의 참모 가운데
가장 냉정한 전략가로 알려진 인물이 있었다.

전풍(田豐)이다.

관도대전(官渡大戰)을 앞두고
전풍은 원소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지금 조조(曹操)와 정면으로 싸우는 것은 위험합니다.
지구전이 답입니다.”

당시 원소의 병력은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전풍은 상황을 냉정하게 보고 있었다.

그러나 원소는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오히려 분노했다.

그리고 전풍은
감옥에 갇힌다.

이 사건은 단순한 처벌이 아니었다.

조직 전체에
강력한 메시지를 남겼다.

“리더에게 바른말하면 위험하다.”

그 순간부터 참모들은
자신의 판단보다

리더가 듣고 싶은 말을 먼저 생각하기 시작한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자기 검열(Self-censorship)이라고 부른다.

틀린 것을 알아도
입을 닫는 조직.

그 순간 리더는
현장의 진짜 정보를 들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조직은
조용히 망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질 리가 없다”, 체급이 만든 위험한 착각


관도대전(官渡大戰)을 앞둔 상황을
숫자로 보면 그 이유가 조금 더 분명해진다.

원소(袁紹)의 군대는
대략 10만~11만 명의 대군이었다.

반면
조조(曹操)의 병력은

대략 1만~2만 명 수준으로 추정된다.

거의 10 대 1에 가까운 전력 차이였다.

이 정도의 격차라면
누구라도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

“이 싸움은 질 수가 없다.”

실제로 원소는
조조를 “환관의 후손”이라 낮춰 부르며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무적의 환상(Illusion of Invulnerability)이라고 부른다.

집단이 지나치게 자신감을 갖게 되면
위험 신호를 무시하기 시작한다.

전략적 경고는
괜한 걱정으로 취급된다.

그리고 조직은
현실보다 낙관적인 이야기를 더 믿게 된다.

관도대전(官渡大戰)에서 원소가 패배한 이유는
단순한 전술 문제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위험한 것.

“우리는 질 리가 없다”는 분위기.

그것이 조직의 판단력을
서서히 마비시키고 있었다.



리더의 귀를 막는 사람들, 조직을 무너뜨리는 ‘마인드가드’


망하는 조직에는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

리더 주변에
정보를 통제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마인드가드(Mindguards)라고 부른다.

원소 진영에서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곽도(郭圖)였다.

관도대전(官渡大戰)의 결정적 순간.

조조(曹操)의 군대는
원소 군대의 군량 창고가 있던

오소(烏巢)를 기습 공격한다.

이때 곽도는
치명적인 전략을 제안한다.

“조조의 본진을 공격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판단은 완전히 틀렸다.

오소(烏巢)는
원소 군대의 핵심 군량 창고였다.

결국 군량 고는 불타고
원소 군대는 보급을 잃는다.

그런데 더 심각한 일이 이어졌다.

곽도는 자신의 전략 실패를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현장에서 싸우던 장수에게 책임을 돌렸다.

그 장수가 바로

장합(張郃)이었다.

곽도는
“장합이 태만하게 싸웠다”라고
원소에게 보고했다.

이 모함은
장합에게 치명적인 위협이 된다.

결국 장합은
조조에게 투항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다.

장합은
적군인 조조가 무서워서 투항한 것이 아니었다.

아군인 곽도의 모함이 더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이 사건 이후
원소 진영의 전력은 급격히 붕괴된다.

마인드가드가 조직에 끼치는 피해는
이것이다.

능력 있는 사람들은
적에게 지는 것이 아니라

조직 내부의 정치에 지쳐 떠난다.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챌린저호가 폭발한 진짜 이유


이 이야기는
삼국사 이야기만이 아니다.

1986년
미국 항공우주국
나사(NASA)는
우주왕복선 발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 우주선이 바로
챌린저호(Challenger)였다.

하지만 발사 전날 밤
이미 심각한 경고가 올라오고 있었다.

로켓 부품을 제작한 회사의 엔지니어
로저 보졸리(Roger Boisjoly)를 포함한 기술진은

중대한 문제를 발견했다.

기온이 너무 낮으면
로켓 부스터의 O-링(O-ring)이
탄성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만약 이 부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고온의 연료 가스가 새어 나와
로켓 전체가 파괴될 수 있었다.

그래서 기술진은
발사를 연기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NASA 내부에는
이미 여러 차례 발사가 연기된 상황에 대한
압박감이 존재하고 있었다.

회의 중 한 관리자가
엔지니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제발 엔지니어 모자는 벗어던지고
관리자 모자로 갈아 쓰고 생각해 보게.
(Take off your engineering hat and put on your management hat.)”

그 순간
회의의 분위기는 바뀌었다.

기술적 위험을 논의하던 자리에서
조직의 일정과 체면을 고민하는 자리로.

그리고 결국
발사는 진행됐다.

1986년 1월 28일.

챌린저호(Challenger)는 발사됐다.

발사 후 73초.

우주왕복선은 공중에서 폭발했다.

승무원 7명 전원이 사망했다.

이 사건은 이후
집단사고(Groupthink)의 대표적 사례로 분석된다.

처음에는 반대 의견이 존재했다

그러나 조직의 압박 속에서 목소리가 약해졌다

결국 반대 의견은 사라졌다

그리고 조직은 만장일치라는 착각 속에서 결정을 내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문제가 기술이 아니라 조직이었다는 점이다.

문제는 이미
알려져 있었다.

다만
그 사실을 끝까지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사라졌을 뿐이었다.

1,800년 전
원소(袁紹)의 막사에서 벌어졌던 침묵의 비극은

첨단 과학의 정점이라 불리던
NASA의 회의실에서도

똑같이 반복되었다.

기술의 수준은 달라졌지만
인간의 아집이 눈을 가리는 방식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한 조직의 차이는 능력이 아니라 '분위기'다.

- 조조 진영이 달랐던 이유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다.

같은 전쟁을 치르던
조조(曹操)의 조직은
달랐다.

조조의 진영에서는
참모들 사이의 격렬한 논쟁이 허용되었다.

서로의 전략을 비판하거나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이
조직의 질서를 해치는 행동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대표적인 장면이
관도대전(官渡大戰) 당시였다.

당시 조조 군 내부에서는
의견이 크게 갈렸다.

한쪽에서는
“병력 차이가 너무 크니 퇴각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고,

다른 쪽에서는
“지금 물러나면 다시 기회가 없다. 끝까지 버텨야 한다”는 의견이 맞섰다.

조조는 이 논쟁을
억누르지 않았다.

참모들의 토론을 그대로 두었고
마지막까지 의견을 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참모 순욱(荀彧)이 보낸 서신을 읽은 뒤
최종 결단을 내린다.

이 과정은 단순한 전략 선택이 아니었다.

리더가 조직의 토론을 억압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 자체가 중요한 문화였다.

조조에게는
서로 다른 역할을 하는 뛰어난 참모들이 있었다.

먼저 순욱(荀彧).

그는 조조 진영의
정신적 지주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조조가 흔들릴 때마다
전략적 중심을 잡아주었고,

때로는
조조의 판단을 강하게 만류하기도 했다.

또 한 명의 핵심 인물이
천재 전략가로 불리던 곽가(郭嘉)였다.

곽가는 조조와
격의 없이 토론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었다.

그는 유명한
십승십패론(十勝十敗論)을 통해

원소(袁紹)와 조조(曹操)의 차이를 분석했다.

그 분석의 핵심은
병력의 숫자가 아니었다.

리더의 도량(度量)과
결단력이었다.

곽가는 이렇게 말했다.

원소는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결단이 늦다.

반면 조조는
사람의 말을 들을 줄 알고
결단을 내릴 줄 안다.

이 분석은
조조에게 큰 자신감을 주었다.

그러나 조조 진영의 진짜 차이는
패배 이후의 태도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조조 역시
큰 패배를 경험했다.

바로
적벽대전(赤壁大戰)이었다.

이 전투에서 조조는
대패한다.

하지만 그 이후의 태도는
원소와 달랐다.

조조는 패배의 책임을
참모들에게 돌리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곽가(郭嘉)가 살아 있었다면
나를 이런 상황에 이르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죽은 참모를 그리워하며
자신의 실책을 인정한 것이다.

이 한마디는
조직에 강력한 메시지를 남겼다.

실패해도 리더가 남 탓을 하지 않는다.

이 신뢰는
조직의 분위기를 바꾼다.

사람들이
실패를 숨기지 않게 되고
문제를 솔직하게 말할 수 있게 된다.

어쩌면
강한 조직의 차이는

사람들의 능력 차이가 아니라
사람들이 얼마나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인가에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내고
리더가 그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조직.

조조(曹操)의 조직이
바로 그런 조직이었다.



에필로그


조직을 살리는 사람은 가장 불편한 질문을 하는 사람이다


삼국지 속
원소(袁紹)의 허베이 진영부터

현대의
챌린저호(Challenger) 폭발 사고까지

망하는 조직에는
놀라울 만큼 비슷한 패턴이 있다.


1. 심리적 안전감의 붕괴
2. 무적의 환상
3. 마인드가드의 등장
4. 침묵 속에서 만들어지는 만장일치


이 네 가지가 모이면
조직은 이렇게 운영된다.

“답정너.”

답은 이미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라는 조직.

그 순간
리더의 아집(我執)은
집단의 지능을 갉아먹기 시작한다.

어쩌면 조직을 살리는 사람은
회의실에서 가장 불편한 질문을 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때
조용히 손을 드는 사람.

그 사람이 사라진 순간
조직은 이미

조용히
무너지기 시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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