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나는 ‘디지털 역량과 조직의 회복탄력성 간 관계’를 연구하고 논문을 게재했다.
위기 속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조직들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기술이 많은 조직이 아니었다.
기술을 다룰 사람을 믿고, 기다리고, 키울 줄 아는 조직이었다.
시간이 흘러 AI가 일상이 됐다.
문득 예전 연구를 다시 꺼내 보게 됐다.
그리고 뜻밖의 장면이 떠올랐다.
바로 삼국지의 적벽대전이었다.
천재를 곁에 두고도 무너진 사람.
천재를 시기하다 스스로를 갉아먹은 사람.
외부의 천재성까지 끌어안아 승리를 만든 결정권자.
그들의 선택은 전쟁의 승패를 갈랐다.
지금의 AI 인재 전쟁과도 놀라울 만큼 닮아 있었다.
이 글을 쓰기위해 적벽대전을 다시 한번 더 읽었다.
그리고, 전쟁 속 장면을 빌려,
AI 시대 리더가 경계해야 할 태도를 말하고 싶었다.
서기 208년. 장강 위에 전운이 감돌았다.
조조의 대군이 남하했고, 오나라의 운명이 걸린 적벽대전이 시작됐다.
오나라 수군 총사령관은 주유(周瑜).
젊고, 잘생기고, 음악과 전략에 모두 능한 명장이었다.
그의 곁에는 동맹군 참모 제갈량(諸葛亮)이 있었다.
유비 진영의 책사였다.
처음 주유는 그를 크게 경계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쟁 준비가 진행될수록 직감했다.
‘이 사람… 나와는 다르다.’
제갈량이 자신과 결이 다른 천재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순간부터 비극이 시작됐다.
주유는 제갈량을 시험한다.
“열흘 안에 화살 십만 대를 만들어라. 못 하면 군법으로 다스리겠다.”
불가능한 명령이었다.
하지만 제갈량은 웃으며 말한다.
“사흘이면 충분합니다.”
짙은 안개가 낀 새벽, 그는 짚 허수아비 병사를 배 위에 세우고 조조 진영으로 접근한다.
적군은 화살을 퍼붓고, 수만 발의 화살이 허수아비에 꽂힌다.
제갈량은 싸우지 않고 화살을 ‘빌려’ 돌아온다.
주유에게 전략은 계산이었다.
제갈량에게 전략은 흐름을 읽는 일이었다.
이때부터 주유의 마음에 감정이 싹튼다. 존경, 경계, 그리고 질투.
또 하나의 승부수는 방통(龐統)의 연환계였다.
북방 출신 조조군은 수전에 익숙하지 않아 배 멀미로 쓰러졌다.
방통은 제안한다.
“배들을 쇠사슬로 서로 묶으십시오.”
배가 안정되자 군사들은 안정을 되찾고, 조조는 기뻐한다.
하지만 그것은 ‘효율’이라는 이름의 함정이었다.
배들이 묶이자 도망도 분산도 불가능해졌다.
불이 붙으면 전 함대가 함께 타버리는 구조가 된 것이다.
작은 불씨 하나가 대군 전체를 삼킬 수 있는 상태.
연결은 강력하지만, 유연성을 잃는 순간 치명적 약점이 된다.
이 장면은 지금의 AI 생태계와 닮아 있다.
클라우드, 데이터, 플랫폼으로 모든 것이 연결되며 효율은 극대화됐다.
하지만 하나가 무너지면 전체가 흔들린다.
연결은 힘이자 리스크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조조의 배는 연환계로 묶였고, 주유의 화공선도 출격 대기 중이다.
하지만 결정적 문제가 남았다.
바람의 방향.
겨울 장강에는 서북풍이 불었다.
불을 지르면 오나라 군대가 먼저 타 죽을 상황.
주유는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하늘이 나를 돕지 않는구나…”
그때 제갈량이 나선다.
제단을 쌓고 말한다.
“동남풍이 불 것입니다.”
며칠 뒤, 바람의 방향이 바뀌고 불길은 조조군을 덮친다. 전쟁의 승패가 갈린 순간이었다.
동남풍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다. 시대의 흐름이다.
지금 우리 시대의 동남풍은 AI다.
과거 리더가 ‘노력’으로 조직을 움직였다면,
지금 리더는 ‘기술의 흐름’을 탈 줄 알아야 한다.
바람이 없다고 좌절하면 주유가 된다.
바람을 예측하고 준비하면 제갈량이 된다.
주유는 점점 불안해진다.
제갈량을 제거하려는 시도까지 한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끝내 ‘경쟁자 제거’에 머문다.
제갈량의 시선은 달랐다. ‘어떻게 이 전쟁을 이길 것인가.’
목적의 크기가 달랐다.
결국 주유는 절규한다.
“하늘은 이미 주유를 낳으셨으면서, 어찌하여 제갈량을 또 낳으셨습니까.”
패자의 변명이 아니다.
나보다 뛰어난 존재를 품지 못한 리더의 비명이다.
질투는 판단을 흐리고, 감정은 전략을 무너뜨린다.
지금 기업들은 ‘제갈량’을 모시기 위해 전쟁을 벌인다.
AI 핵심 인재 한 명이 회사의 미래를 바꾸기 때문이다.
연봉, 연구 환경, GPU 인프라, 자율성. 모든 조건이 인재 중심으로 재편된다.
과거 유비가 제갈량을 얻기 위해 세 번 찾아갔듯,
지금의 리더들도 인재 앞에서 몸을 낮춘다.
여기서 리더의 자격이 갈린다.
천재를 시기하는 사람인가.
천재가 뛰놀 무대를 만들어주는 사람인가.
주유는 제갈량을 위협으로 보고 제거하려 했다.
하지만 질투는 끝내 전략이 되지 못했다.
반면 손권은 달랐다.
그는 알았다.
제갈량이 비록 유비의 신하일지라도, 그의 지략이 전쟁의 승패를 가를 핵심 변수라는 사실을.
주유가 ‘위협’을 볼 때, 손권은 ‘자산’을 봤다.
주유가 감정에 흔들릴 때, 손권은 동맹이라는 큰 판을 선택했다.
외부의 천재성을 배척하지 않고 조직의 승리로 연결한 결정권자.
결국 역사가 기억하는 승자는 가장 똑똑한 참모가 아니다.
천재들을 품을 줄 알았던 리더다.
이 장면은 역사 속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늘 자신보다 뛰어난 인재를 찾아다녔다.
그는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경영자가 아니라, 인재가 능력을 펼칠 수 있는 판을 만드는 사람에 가까웠다.
반도체처럼 당시엔 무모해 보이던 선택도 결국 ‘사람’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했다.
메타의 CEO 마크 저커버그 역시 다르지 않다.
그는 회사를 키운 핵심 동력으로 ‘최고 인재 밀집 전략’을 꼽는다.
뛰어난 개발자와 연구자들이 서로 자극하며 폭발적인 성과를 내도록 환경을 설계하는 방식이다.
리더가 모든 답을 아는 조직은 오래가지 못하지만,
뛰어난 인재들이 답을 찾는 조직은 계속 진화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시대를 바꾼 리더들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천재를 이기려 하지 않았다.
천재를 곁에 두려 했다.
통제하려 하지 않았다.
마음껏 뛰도록 무대를 만들었다.
오늘날도 같다.
기업은 내부 인재만으로 성장하지 못한다.
외부 전문가, 파트너, AI 기술과의 협력이 필수다.
리더의 역할은 경쟁자를 제거하는 게 아니다.
뛰어난 사람들이 마음껏 역량을 발휘하도록 판을 설계하는 것이다.
질투는 조직을 소모시키고, 포용은 조직을 성장시킨다.
적벽에서 갈린 것은 전략의 차이만이 아니었다.
리더의 ‘그릇’ 크기였다.
지금 당신 곁의 제갈량은 누구인가.
당신은 이렇게 묻고 있지 않은가. “왜 하필 나와 같은 시대에 태어났는가.”
아니면 이렇게 말하고 있는가.
“당신의 재능이 우리를 다음 시대로 이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