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종칠금(七縱七擒)이 말하는 마음을 얻는 리더십
조직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들을 반복해서 마주하게 된다.
요사이 부쩍 눈에 띄는 모습이 있다.
타 기관의 신입사원 채용 면접에 외부 평가위원으로 참여하고,
자문비를 받으며 어느새 ‘인사를 평가하는 사람’처럼 인식되는 보직자들이다.
그 자체가 문제라는 뜻은 아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그들 중에는 정작 자신의 일에는 무관심하면서도,
타인에 대한 평가는 누구보다 단호한 사람들이 있다.
보직에 오르기 전부터 그 징후는 보였다.
자신의 일보다는 남을 비난하고,
수틀리면 기관장실을 찾아가
부서 이동을 지속적으로 요구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반복된다.
보직에 오른 뒤에도 달라지는 것은 많지 않다.
누군가를 깎아내리고,
확인되지 않은 말을 퍼뜨리고,
은근히 사람을 고립시키는 방식.
그 모습은 오히려 더 정교해진다.
그 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은 과연 리더인가.”
더 아이러니한 것은,
그런 사람들이 조직 안에서 ‘화합’을 말한다는 점이다.
현실의 조직은 종종 이상하다.
갈등을 조정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협력을 말하는 사람이 가장 먼저 선을 긋는다.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을 내면 불편해하고,
자신의 말에 토를 달면 관계를 끊어버린다.
여기에 더해,
모함과 비난을 일삼고, 사람의 인성을 깎아내리며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를 사실처럼 굳히고,
결국 누군가를 고립시키는 데 앞장서는 모습도 적지 않게 본다.
더 씁쓸한 것은,
그런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다른 기관의 채용 면접위원으로 참여해
누군가를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남는 것은 하나다.
입안의 혀처럼 편한 사람만 곁에 두는 구조.
그 안에서 조직은 점점 좁아지고,
사람은 점점 적이 된다.
이런 장면들을 반복해서 보면서,
문득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소설 『삼국지연의』 속, 제갈량과 맹획의 이야기.
나는 그 이야기를 통해
조직과 사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싶었다.
이 글은 나의 경험을 모두 담지 않았다.
가능한 한 개인을 지우고, 상황을 일반화했다.
다만,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만큼은
남겨두기로 했다.
프롤로그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종종 설득하지 않고 사람을 규정해 버린다.
그리고 때로는,
사람을 이해하기보다 먼저 줄을 세우고
편을 나누는 방식으로 관계를 만들어간다.
이 질문은 결국 우리 자신을 향한다.
유비가 죽은 뒤, 촉나라는 안팎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북쪽에는 위나라가 있었고, 남쪽에서는 맹획이 이끄는 남만 세력이 반란을 일으킨다.
남만은 단순한 지방 반란이 아니었다.
지형은 험하고, 기후는 낯설며, 독과 함정, 게릴라 전술이 난무하는 지역이었다.
무력으로 제압하더라도 언제든 다시 들끓을 수 있는 곳이었다.
많은 이들이 빠른 토벌을 주장했지만, 제갈량의 생각은 달랐다.
그의 목표는 단순한 ‘진압’이 아니라, 다시는 흔들리지 않는 ‘안정’이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힘으로 눌러놓은 질서는 반드시 다시 무너진다.
프롤로그에서 보았던 조직의 모습처럼,
사람을 억누르고 배제하는 방식은
겉으로는 조용해 보일지 몰라도
결국 더 큰 갈등을 남긴다.
그래서 그는 서둘러 이기기보다, 완전히 끝내는 길을 선택했다.
남만 정벌 과정에서, 제갈량은 단순한 무력 충돌만 반복하지 않았다.
지형을 이용한 유인, 보급로 차단, 심리전까지 동원해
맹획을 포위하고 사로잡는다.
하지만 잡을 때마다 맹획은 승복하지 않는다.
"내가 조심하지 않아 길을 잘못 들어 복병을 만났을 뿐이다."
"너희가 비겁하게 기습을 해서 잡힌 것이다."
"내 부하가 배신해서 넘긴 것이지, 싸워서 진 게 아니다."
"너희의 요술(제갈량의 전략)에 당한 것이지 실력 차이가 아니다."
그는 매번 이유를 바꾸며, 끝까지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
제갈량은 그를 꾸짖지 않는다.
오히려 웃으며 풀어준다.
이후에도 맹획은 여러 부족과 연합하며 저항하지만
결과는 같았다. 다시 패하고, 다시 붙잡힌다.
잡고, 풀어주고, 다시 싸운다.
이 과정을 무려 일곱 번.
이것이 바로 칠종칠금(七縱七擒)이다.
겉으로 보면 비효율의 극치다.
하지만 제갈량의 기준은 명확했다.
“상대가 인정하지 않은 승리는, 끝난 전쟁이 아니다.”
프롤로그에서 말한 사람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멈춘다.
한 번 판단하면 끝이다.
상대가 납득했는지, 억울한지,
그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갈등은 반복된다.
일곱 번째 패배 후, 맹획은 더 이상 변명하지 않는다.
그는 스스로 무릎을 꿇는다.
“남인은 다시는 배반하지 않겠습니다(南人永不復反).”
이 순간이 중요하다.
이것은 굴복이 아니라 승복이기 때문이다.
제갈량은 이 장면을 만들기 위해, 일곱 번을 돌아왔다.
우리는 종종 이 과정을 생략한다.
설득 없이 결론을 내리고,
이해 없이 관계를 정리한다.
그 결과는 단순하다.
겉으로는 끝났지만,
속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이 이야기의 진짜 핵심은 여기서부터다.
제갈량은 맹획을 죽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를 남만 지역의 통치자로 인정하고,
그 지역에 대한 자치권을 부여한다.
이는 단순한 관용이 아니다.
적을 내 편으로 만들어 스스로 다스리게 하는, 가장 높은 수준의 리더십이다.
맹획 역시 더 이상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는 스스로 촉나라의 질서 안으로 들어와
그 지역을 안정적으로 통치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후 남만 지역은 안정되었고,
제갈량은 후방 걱정 없이 북벌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즉, 이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라
관계가 바뀐 것이다.
적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적이 아군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 지점에서 질문은 더 명확해진다.
우리는 왜 이렇게 쉽게 서로를 적으로 만드는가.
조직 안에서는 이런 일이 반복된다.
특별한 이유 없이 누군가를 배척하고
다른 의견을 냈다는 이유로 선을 긋고
확인되지 않은 말과 감정으로 사람을 판단한다
그리고 그 위에 이렇게 말한다.
“조직은 화합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 화합은 종종
‘같은 생각만 허용하는 상태’에 가깝다.
프롤로그의 장면들이 낯설지 않은 이유다.
마음을 설득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반대로 행동한다.
사람을 이기려 하고
말을 꺾으려 하고
관계를 통제하려 한다
그 결과는 명확하다.
이긴 것 같지만,
신뢰는 사라지고
관계는 무너진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또다시
‘화합’을 이야기한다.
칠종칠금(七縱七擒)은 비효율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가장 어려운 선택이다.
상대를 이해해야 하고
감정을 견뎌야 하며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빠르게 판단하고, 쉽게 선을 긋는다.
그리고 그 선택은
프롤로그에서 보았던 장면들을
계속 반복하게 만든다.
삼국지연의의 이야기일지라도,
그 안의 통찰은 지금도 유효하다.
사람은 논리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감정과 자존심, 그리고 신뢰로 움직인다.
제갈량은 그것을 알았고,
그래서 돌아갔다.
일곱 번이나.
그리고 결국, 적을 없애지 않았다.
적이 스스로 사라지게 만들었다.
이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정말로 화합하고 있는가,
아니면 화합을 말하면서 서로를 밀어내고 있는가.
리더십은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사람을 이길 것인가,
아니면 사람의 마음을 얻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