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는 못 쓰면서 남 비난만 하는 직원, 어찌할까?

- 성대리와 마이클스콧이 보여주는 내로남불의 다른 이름, 베네팩턴스!!

by 오피스 사가Saga

한 문장으로 시작된 질문


"나는 입이 아니라 글로 말하는 사람이다."


문장 하나, 단어 하나에 책임을 담는 것.
그것이 글을 쓰는 사람의 최소한의 태도라고 믿어왔다.

그래서 더 놀랐는지도 모르겠다.

몇 해전, 한 직원의 이야기이다.
나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이름으로 온전히 완성된 보고서를 써본 적이 없었고,

늘 업무분장에 불만이 가득하고

대화 때마다 인상 쓰며 원색적인 욕설이 앞섰던 사람이었다.

처음 그의 말이 쉽게 믿기지 않았다.
자평에 비해서 결과물이 없으면서

어찌 저런 말을 할 수 있지?

그리고 나는 생각하게 되었다.

이 문제는 한 사람의 태도로 끝나는 것일까.
아니면 조직이 반드시 답해야 할 질문일까.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조직은 이러한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디까지 허용하며,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함께 생각해보고 싶어서다.



그는 늘 ‘글’을 말했지만, 글을 완성하지 못했다


그는 평소에도 늘
‘글’에 대해 말하던 사람이었다.

“나는 글로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그 말은 종종
다른 사람의 글을 평가하는 문장으로 이어졌다.

보고서를 보면
문장 하나하나를 지적했고,
때로는 원색적인 표현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그에게 직접 보고서를 써보라고 하면
대화의 방향은 늘 비슷하게 흘러갔다.

“내가 하고 싶은 건 이런 게 아니죠.”
“외부 자문비가 너무 낮아서 외부 전문가에게 일을 맡기기가 어렵습니다.”
“자문 맡긴 사람도 실력이 없고요.”
“컨설팅받아봤는데, 아무것도 모르면서 헛소리만 하더라고요.”

그리고 결국
보고서는 완성되지 않았다.

여기서 나는 한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가 정말 ‘쓰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끝까지 완성할 만큼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일까.

어느 쪽이든 결과는 같았다.

이유는 늘 있었고,
결과는 늘 없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비난만 점점 더 또렷해졌다.

그 순간 나는
이 문장을 떠올렸다.

그의 말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그의 결과에는 ‘자신’이 없었다.



‘익지 않은 벼’가 아니라, 다른 문제였다


처음에는 그를 보며
‘익지 않은 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생각이 바뀌었다.

익지 않은 벼는
시간이 지나면 익는다.

하지만
책임을 미루는 태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정교해진다.

그래서 나는 이 현상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해해보고 싶었다.

경영학과 심리학에서는 이를
베네팩턴스(Benefactance)라고 설명한다.

성공은 자신의 능력 덕분으로,
실패는 외부나 타인의 탓으로 돌리는 심리.

어쩌면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잘되면 내 덕, 안 되면 남 탓.”

그 단순한 문장이
조직 안에서는 훨씬 더 교묘하게 작동한다.



미국 드라마 '오피스'의 마이클 스콧


나는 약 14~5년 전 한 미국 드라마를 꽤 재미있게 봤다.

The Office.

2005년에 시작해 2013년에 종영된 이 드라마는
미국 직장인의 일상을 다큐멘터리처럼 담아낸
‘모큐멘터리’ 형식의 작품이었다.

과장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묘하게 현실과 닮아 있었다.

그 중심에는
지점장 마이클 스콧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스스로를
‘최고의 보스이자 직원들의 친구’라고 믿는다.

하지만 현실의 그는
끊임없이 사고를 치고,
부하 직원들이 그 뒷수습을 한다.

그의 가장 유명한 대사는
그 모든 모순을 한 문장으로 보여준다.

(내 기억이 맞다면 대사는 다음과 같다)


“I will be honest, I want all of the credit and none of the blame.”
(솔직히 말하면, 모든 공은 내가 갖고 싶고, 비난은 하나도 받고 싶다.)


당시에는 웃고 넘겼다.

하지만 지금 다시 떠올려보면
그건 단순한 코미디가 아니었다.

조직 안에서 반복되는
가장 불편한 진실 중 하나였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장면 ― 성대리의 ‘사라진 밤’


미생 속 성대리와 한석율을 떠올려보자.

신입사원 한석율은
밤늦게까지 남아
사업 제안서를 다듬는다.

숫자를 맞추고,
문장을 고치고,
다시 처음부터 검토한다.

그 시간 동안
성대리는 자리에 없다.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사적인 용무를 본다.

그리고 다음 날 보고 자리.

성대리는 말한다.

“이거 제가 기획안 잡느라 고생 좀 했습니다.”

그의 말 한마디로
밤은 사라진다.

그리고 문제가 생기는 순간,
그는 같은 입으로 이렇게 말한다.

“야, 기본이 안 돼 있으니까 보고서가 이 모양이지!”

공은 위로 올라가고,
책임은 아래로 떨어진다.

이 장면이 익숙한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는 이미
이 장면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조직이라는 거울이 비추어야 할 것


그 사람의 이야기가 계속 잔상처럼 남았던 이유는
그가 특별해서가 아니다.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는,
익숙하고도 피곤한 풍경이기 때문이다.

베네팩턴스!

하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실체는
훨씬 더 거칠고, 더 파괴적이다.

누군가는 밤을 새워 결과물을 만든다.
누군가는 그 위에서 평가만 한다.

이 불균형이 반복되면
조직은 조용히 무너진다.

성과가 나면 제 이름부터 얹고,
문제가 생기면 실무자의 ‘기본’을 운운하며 책임을 전가하는 사람들.

그들은 눈에 띄지 않게, 그러나 분명하게
조직의 신뢰를 갉아먹는다.

이제 조직은 이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이 불균형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조직은 어찌해야 하는가?


우리는 모두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시작한다.

동료의 도움을 받고,
실패를 겪고,
배우면서 성장한다.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그 이후다.

자기 이름으로 완성된 결과물은 단 하나도 없으면서
타인의 문장 위에 올라서 비난만 반복하는 태도.

그것은 단순한 성향이 아니라
무능을 가리는 방식이다.

그리고 조직은
이 방식을 더 이상 용인해서는 안 된다.

조직은 기준을 세워야 한다.

누가 더 잘 말했는지가 아니라
누가 실제로 만들어냈는지를 봐야 한다.

누가 더 날카롭게 비판했는지가 아니라
누가 끝까지 책임졌는지를 가려야 한다.

그 기준 위에서
공로는 정확히 나누고,
책임은 흐리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때로는
분명한 선택이 필요하다.

결과 없이 비난만 반복하는 사람에게
더 이상 ‘평가자’의 자리를 맡겨서는 안 된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의견이 아니라

자기 이름 석 자로 끝까지 책임진 단 하나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당신과
그리고 조직을 이끄는 사람들에게
조금은 불편한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말을 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결과를
이름으로 책임지고 완성했는가.

당신이 자랑하는 커리어에 남아 있는 프로젝트 중,

정말로 ‘당신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담긴 보고서는 몇 권이나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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