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세조'가 아닌 ‘수양대군’을 기억하는가

- 조용해진 권력은 능력인가? 생존인가?

by 오피스 사가Saga

프롤로그 ― “요즘은 조용하네”라는 말이 시작이었다


이 글은 단순한 역사 이야기나 비유가 아니다.

내가 실제로 목격한 한 조직의 장면에서 시작된 질문이다.

어느 조직에서 특정 세력이 빠르게 권력을 장악해 나갔다.

(조직을 '화합'이 아니라 '세력'으로 표현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그 과정은 결코 조용하지 않았다.

자신과 뜻이 다른 사람에게 프레임을 씌우고,

근거 없는 의혹과 소문을 퍼뜨리며,

특정 인물들을 문제 인물로 낙인찍었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은 단순한 말에 그치지 않았다.

각종 제보와 문제 제기가 이어졌고,

이른바 ‘먼지털이식 감사’가 가능해졌으며,

결국 일부 인물들은 자리를 잃었다.

그리고 그 자리는 권력을 만든 사람들이 차지했다.

즉, 권력을 만든 사람들이 그 권력의 결과를 가져간 구조였다.

그렇게 조직은 한 방향으로 정리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권력에 대한 욕망이 인사평과와 승진제도에 이르고

여기에 거짓말이 더해지자, 조직에 노조가 출범했다.

그 이후, 그토록 강하게 움직이던 권력이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권력의 사유화된 모습은 여기저기 흔적을 남겼지만,

개입이 줄어들고,

발언이 줄어들고,

존재감이 이전보다는 약해졌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조직 안에서는 이런 말이 돌기 시작했다.
“요즘은 조용하네.”
“그래도 관리 역량은 있는 거 아니야?”

그러나 동시에 더 본질적인 평가는 여전했다.
“업무는 못하잖아."

"자기 이름의 보고서도 없잖아.”

즉, 성과에 대한 인정은 없고,

업무 능력에 대한 신뢰도 부족한 상황에서,

단지 ‘조용해졌다’는 이유가

관리 역량이 있는 것으로 해석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나는 이 지점에서 근본적인 질문에 도달하게 되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능력’이라고 부르고 있는가

조용해졌다는 이유만으로 능력을 인정하는 순간,
과정은 사라지고 결과만 남는다
기준은 흐려지고 판단은 왜곡된다

그래서 나는 묻고 싶었다.
이 조용함은 능력의 결과인가
아니면 상황 변화 속에서 선택된 생존 전략인가

그리고 그 순간 떠오른 인물이 있었다.
수양대군, 그리고 세조



왜 반복되는가 ― 영화가 증명한 ‘권력 쟁취'의 민낯


영화 '관상'과 '왕과 사는 남자'는 단순한 사극 영화가 아니다.

두 작품 모두 국민적 흥행을 기록하며,

권력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강렬하게 각인시켰다.

'관상'은 계유정난이라는 권력 장악의 순간을 대중에게 강하게 전달했고

'왕과 사는 남자'는 1,5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급 흥행을 기록하고 있다.

세대를 넘어 회자되는 작품이 되었다.

이 두 작품이 널리 소비된 이유는 단순히 재미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이 이야기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반복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들이 공통적으로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권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 과정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조’보다 ‘수양대군’을 먼저 떠올린다

왕이 된 이후의 이름보다,

왕이 되기 전의 행위가 더 강하게 기억되기 때문이다.

대중은 이미 알고 있다.

권력은 결과보다 과정으로 평가된다는 사실을.



권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수양대군의 선택


수양대군은 왕위 계승자가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 권력을 만들어낸 인물이었다.

그 과정은 매우 분명하다.

자신의 조카인 어린 '단종'을 몰아내고

왕권을 지탱하던 핵심 대신인 '김종서'를 제거했으며

가족을 포함한 수많은 정적들을 숙청했다

이 과정은 우연이 아니었다.
'한명회'라는 설계자가 있었고
치밀하게 기획된 권력 장악이었다

이른바 계유정난은 단순한 권력 이동이 아니라,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고 권력을 탈취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단종은 왕위에서 밀려난 뒤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은 지금도 정당화되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세조’보다 ‘수양대군’을 먼저 기억한다



그럼에도 반복되는 말, “그래도 유능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왕이 된 이후의 수양대군은 분명히 다른 평가를 받는다.

왕권을 강화하고

치 체계를 정비하며

경국대전 편찬 기반을 마련했다

이러한 점은 역사적으로 일정 부분 ‘업적’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늘 같은 문장을 반복한다.
“그래도 유능했다”

그러나 반드시 짚어야 할 질문이 있다.

그가 강화한 왕권은 무엇이었는가
그가 정비한 질서는 어떤 과정 위에 세워진 것인가

스스로 무너뜨린 질서를 다시 세운 것이 과연 업적인가,
아니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는가.

(역사학자가 아닌 나로서는 단정할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질문은 남는다.

그것이 진정한 업적이었는가,
아니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는가.

나는 후자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조심스레 말하고싶다.)



지금 조직에서는 ‘조용함’이라는 신호의 '오해'


이 구조는 지금 조직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과정에는 분명 문제가 있었지만,

어느 순간 조용해지자 사람들은 말한다.
“그래도 관리 역량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더 명확하다.

업무 역량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없다
성과에 대한 인정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용해졌다’는 이유만으로
관리 역량이 있는 것처럼 해석된다

마치 조직의 갈등이 사라졌기 때문에
안정을 만들어낸 것처럼 평가하는 흐름이다.

이것은 단순한 판단의 문제가 아니다.

과정의 문제를 결과로 덮으려는 심리
불편한 사실을 회피하려는 조직의 경향

이 함께 작동하고 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갈등은 사라진 것인가 ― 보이지 않게 된 것인가



조직에서는 종종 이렇게 해석되곤 한다.

갈등이 보이지 않으면
조직이 안정된 것이라고

그러나 다른 가능성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갈등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게 되었을 수도 있다

특히 권력 구조가 변화하거나
견제 장치가 작동하기 시작한 시점에서 나타나는 ‘조용함’은

안정의 신호일 수도 있지만
일정 부분 조정되거나 억제된 상태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능력인가, 아니면 상황 속 대응인가



이러한 상황에서 나타난 ‘조용함’은

관리 역량의 결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환경 변화 속에서 선택된 대응일 가능성도 존재한다

즉,

할 수 있어서 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하기 어려운 조건 속에서 멈춘 것인지

이 부분은 신중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현재로서는 후자의 가능성도 함께 고려하는 것이
보다 균형 있는 해석에 가까워 보인다.



역사와 조직이 만나는 지점 ― 수양대군과 세조의 간극


수양대군의 경우도 이와 유사한 구조로 볼 수 있다.

권력을 얻는 과정
권력을 유지하는 과정

이 둘은 분명 다른 영역이다.

그리고 우리는 알고 있다.

사람들은 ‘세조의 업적’을 이야기하지만
기억 속에는 ‘수양대군의 과정’이 더 강하게 남는다

이 지점에서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평가하고 있는가

결과인가, 과정인가.

이 질문은
오늘의 조직에도 그대로 연결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준'이다 ― 새로운 리더십에게



지금 이 조직은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

기관장이 공석이며
새로운 리더십이 들어올 예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평가가 아니라 기준이다.

첫째, 정보의 오염을 걷어내야 한다.
조직 내 정보는 항상 중립적이지 않다. 특정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왜곡될 수 있다. 이 상태에서 내려지는 판단은 필연적으로 방향을 잃는다.
잘못된 정보를 신뢰하는 순간
리더십은 스스로 권위를 약화시킨다

둘째,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운영해야 한다.
특정 개인에게 인사권과 영향력이 집중되는 순간, 조직은 효율을 얻는 대신 공정성을 잃는다.
단기적 성과는 가능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반드시 균열이 발생한다

셋째, 성과와 행위를 분리해야 한다.
성과는 평가의 대상이지만, 행위는 책임의 대상이다.

특히 이 조직의 경우는 더 명확하다
성과도 부족하고 행위도 문제였다면
기준은 더욱 엄격해야 한다

이 둘이 섞이는 순간
조직의 기준은 무너진다



결국 조직은 선택해야 한다



조직은 선택해야 한다.

조용해졌다는 이유로 덮을 것인가

아니면 기준을 세울 것인가

그리고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잘못이 드러났다면
그것은 ‘과거’가 아니라 ‘기준’의 문제다

업무 역량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존재하고
동시에 문제 행위가 있었다면

이것은 더 이상 해석의 문제가 아니다.

조직이 어떤 기준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다



결론 ― 우리는 무엇을 ‘능력’이라 부를 것인가


“그래도 관리역량은 있다”

이 문장은
위험한 판단일 수 있다.

과정이 왜곡되어도
방식이 잘못되어도
결과만 나오면 인정하겠다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더 분명하다.

성과도 없고
과정도 문제였다면

그것은 능력이 아니다.
단지 상황 속에서 살아남은 결과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정의해야 한다.

능력이란 무엇인가

진정한 관리 능력은
사람을 누르고 조직을 장악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절차 속에서
신뢰를 기반으로
지속 가능한 성과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세조’를 기억할 것인가
아니면 ‘수양대군’을 기억할 것인가

조직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평가할 것인가

그 선택이
조직의 수준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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