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의 함정
우리 회의실에도
위플래쉬의 플렛처 교수(제자를 극한으로 몰아붙이며 자신의 방식만을 강요하는 지휘자)가
살고 있지는 않은가.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성격이 나쁜 동료를 비난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일 잘하는 방식의 차이를 논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과거의 경험’에 발목 잡힌 사람들이
어떻게 조직의 미래를 스스로 갉아먹는지를
경고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 문장이 있다.
"제 경험상 이건 이렇게 하는 게 맞고요."
"원래 이게 정답입니다."
회의실의 공기를 단숨에 얼어붙게 만드는 문장들이다.
"이게 맞다", "원래 이런 거다" 이 말을 반복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경험 많은 조언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변화가 두려워 과거에 숨어버린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환경과 고객이 바뀌면 해답도 달라지고
여로 동료들의 경험과 지식을 모으려다 보면
자신의 전문성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그 불안을 인정하지 않고
“이게 맞다”는 확신으로 방어하는 것이다.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이란
과거에 만들어진 구조나 습관이 현재의 결정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말한다.
"늘 이렇게 해왔으니까"라는 논리는
변화를 거부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는 점이다.
경로의존성은 일종의 마약이다.
과거의 경험은 달콤할 수 있다.
그래서 더 집착하게 된다.
하지만 환경이 바뀐 순간,
그 방식은 더 이상 자산이 아니라 독이 된다.
그럼에도 그것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전문성이 아니라
지적 태만에 가깝다.
하지만 직장은 정답을 맞히는 시험장이 아니다.
조직은 화합과 토론, 소통을 통해
‘같이의 가치’를 실현하는 유기체다.
내가 가진 경험은 참고서일 뿐,
결코 절대적인 교과서가 될 수 없다.
자신의 경험만을 유일한 정답으로 믿는 순간,
우리는 ‘확증편향’이라는 좁은 방에
스스로를 가두게 된다.
조직 내에서 소위 ‘프로 불평러’라 불리는 이들의 화법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경로의존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익숙한 패턴을 반복한다.
과거 영광의 재방송
“내가 예전 회사에 있을 때는...”이라며
검증되지 않은 성공 사례를
현재의 복잡한 문제에 무리하게 대입한다.
답정너식 피드백
새로운 기획안이 나오면
본질보다 “우리 매뉴얼엔 이게 맞다”며
절차만 따진다.
비난을 위한 비난
새로운 시도가 실패하면
“거봐라, 내 말이 맞지 않느냐”라고 말한다.
하지만 대안은 없다.
이들은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성공은 자신의 공, 실패는 남의 탓으로 돌리는
‘베네팩터스(Benefectance)’,
즉 자기 고양편향(Self-serving bias-결과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려는 인지편향) 성향을 보인다.
내가 맞아야만 하기 때문에
다른 방식은 모두 틀린 것이 된다.
진정한 조직의 건강함은
‘조용함’이 아니라 ‘살아있는 소음’에서 나온다.
회의 중에는 고성이 오갈 수도 있다.
틀린 의견이 나올 수도 있다.
괜찮다.
문제는 틀리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이다.
참모의 역할은
리더가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끊임없이 안을 제출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보이스 비헤이비어(Voice Behavior)이다.
조직 구성원이 개선을 위해 의견, 제안, 문제 제기를 하는 행동을 의미한다.
단순히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발전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행동이다.
이것은 ‘도전’이 아니라
조직을 위한 의무다.
침묵하는 참모는
리더의 실패를 방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경로의존성에 빠진 사람들은
이 목소리를 가로막는다.
“그건 아닌데요”
“그건 우리 방식이 아닌데요”
이 한마디가
조직의 스피커를 꺼버린다.
이 장면은 결코 특별하지 않다.
어느 조직에서나,
어느 회의실에서나 반복된다.
누군가는 말하려다 멈추고,
누군가는 이미 결론이 정해진 듯 말한다.
그렇게 토론은 사라지고
결정만 남는다.
그리고 그 순간,
조직은 서서히 생각을 멈춘다.
다음에서는
이 문제가 어떻게 리더십의 문제로 이어지는지,
그리고 이 ‘정답의 함정’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