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
개성 만점, 캐릭터 소개
저희는 각자 너무 다른 개성을 가진 네 명이에요. 2009년 철도노조 대창지방본부 23대 집행부 간부를 할 때는 서로 불협화음도 있고 빨리 임기 마치고 현장으로 가서 각자 볼일 없을 줄 알았어요. 워낙 캐릭터들이 공통점도 없고, 개성도 강하고, 고집도 세고 한마디로 임기를 제대로 마칠 수 있나 싶었죠. 초기에는 술자리에서 싸움하고 사표 쓴다고 하고 내일부로 쫑내자고 하기도 했어요. 다들 신뢰는 고사하고 불신만 가득했답니다. 하지만 긴 시간을 함께하며 이제는 필터 없는 대화가 가능한 사이가 되었답니다.
* 김영의 형 (67년생, 철도노조 대창지방본부 23대 집행부 부본부장):
파면되었으나 행정소송에서 승소해 3년 해고 생활 후 복직했어요. 올해 7월 1일부터 임금피크제에 들어가서 월화수만 출근하고 있답니다. 무협지와 게임을 좋아하는 걸 넘어서 제가 보기엔 마니아 수준이에요. 모든 지식은 무협지에서 시작해서 그의 세계관도 강호의 세계랍니다. 그 세계관으로 게임도 하는 듯해요. 키는 180이 넘고 호인형이며 술 담배는 건강이 허락하지 않아도 과감히 한답니다. 한번 말하면 아무리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번복은 없다고 보면 돼요. 현장에서 큰소리치는 강경파 중에 지방본부 상근 간부로 올라와서 노조 회의 때는 큰소리치다가 실제로 사측과 마주 앉아 협상을 하거나 논쟁을 하라고 하면 아무 말도 안 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경우가 99프로예요. 그런데 영의 형은 강경파도 온건파도 아니에요. 아무리 큰일이든 적은 일이든 자신에게 불리하든 따지지도 묻지도 않고 옳다고 생각하거나 결정 사항이면 덤덤하고 간결하게 단호하게 사측이건 노측이건 가리지 않고 말한답니다. 그리고 번복은 없어요. 미혼이고요.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는 어버버 하는 숙맥이고 연애에는 젬병이에요. 하지만 결혼 안 해서 영의 형을 동정하거나 안쓰러워할 필요는 없어요. 혼자서 너무 잘 산답니다. 남자인 제가 보기엔 이런 남자를 못 꼬신? 여자분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표합니다. ㅋㅋ
* 고태선 형 (68년생, 철도노조 대창지방본부 23대 본부장):
파면되어 10년 동안 해고 생활을 견뎌냈어요. 공고 나와서 어영부영 살다가 놈팽이 될 것 같아서 공부해서 철도에 입사했다고 해요. 군 생활은 저와 같은 전경 출신인데 사복조, 일명 백골단으로 대학교나 시위 현장에서 빨갱이 잡는 거에 맹활약했었답니다. 고집불통에 욕망 덩어리예요. 한번 고집을 부리거나 심통을 부리면 엉뚱한 데서 폭발하거나 사람일 경우 두고두고 뒤끝 작렬이랍니다. 지방본부 본부장도 보통은 지부장이나 선배들의 추천에 의해 추대되어 본인이 결심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태선 형은 본인이 하고 싶어서 여기저기 다니면서 다음엔 본인이 하겠다고 자신의 욕망을 솔직? 하게 드러냈어요. 그래서 여러 반대나 우려에도 꿋꿋하게 출마하여 당선되고 간부를 본인이 섭외하고 구성했답니다. 아주 특이한 경우예요. 노조 활동 이외에 평가는 좋지 않을 때가 많아요. 그러나 위기에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때 사측과 논쟁이 붙거나 물리력을 행사할 때 보면 탁월함을 보인답니다. 같은 편인 게 정말 다행이다 싶지요! ㅎㅎ 단점만큼 딱 그만큼 장점이 있어요. 저는 그의 장점을 인정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하나이며 그래서 똑같은 얘기라도 다른 사람이 이야기하면 무시해도 제가 말하면 수긍해 줘요. 그래도 안 되는 것도 있답니다. 해고 시절에 외제차를 산다고 하길래, 해고자가 외제차 타는 건 조합원들 눈에 거슬릴 수 있다고 조언했는데, 무시하고 한 달 뒤에 차 나왔다고 대청댐 드라이브 가자고 나오라는 거예요. 번쩍번쩍한 외제차를 기어이 산 거죠. 자신의 욕망에 너무 솔직해요. 제가 그러지 못해서 그런지 부러워서 질투가 날 때도 종종 있답니다. 공부 못해서 한밭대 나왔지만 서울대 나온 사람이 별로 부럽지 않은데 자신의 욕망을 거침없이 말하고 실행하는 뻔뻔하고 당당한 태선 형은 부러울 때가 자주 있어요. 그러다가도 해고 생활이 서러울 때면 저한테 종종 전화 걸어서 울거나, 술 마시다가도 자신이 무시당하는 거 같다며 풀이 죽어 있을 때가 있답니다. 외적으로는 강한 듯 보여도 내심 여린 구석이 있어요. 어릴 적 애정결핍 비슷한 것이 있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느껴질 때가 있답니다.
* 정승의 (75년생, 23대 집행부 교선국장):
해임되어 중노위에서 복직되었으나 행정소송에서 패소해서 다시 해고, 9년 동안 해고 생활을 겪었어요. 간부 중에 나이도 어리고 직급도 7급 무기계약직이었답니다. 징계 사유서도 별거 없이 징계 사유도 제일 적었지만, 저와 영의 형이 재판부가 같았고, 승의가 다른 재판부에서 재판을 받다 보니 재판관의 성향 때문인지 징계 사유서의 양도 적고 중노위에서 승소했는데도 불구하고 행정소송에서 패소했어요. 지방본부 간부 하면서, 저하고 한 약속을 두 번이나 어겨서 제 눈 밖에 났었답니다. 저도 잘 화내는 성격은 아닌데 정말 뚜껑 열렸었어요. 승의를 다시는 안 본다고 생각하고 투명 인간 취급한 적이 있었죠. 그러나 승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잘못했다, 그때는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다, 한 번만 봐달라, 정말 이 녀석은 자존심도 없나 싶을 정도로 한 달가량을 계속해서 들이대는 친화력을 보였어요. 결국 삐돌이 진용이도 두 손 들었답니다. 승의의 붙임성과 뒤끝 없이 깔끔함, 그리고 능글맞음? 은 내가 본 사람들 중 최고입니다. 행정소송에서 패소해서 해고자가 되면서 녀석이 걱정이 됐어요. 해고 기간 동안 조합 활동을 해야 조합에서 봉급이 나오는데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그러나 그건 저의 기우였답니다. 대전지방본부로 자리를 옮겨 교선국장과 총무국장을 하며 지방본부 숨은 실세가 되었어요. 승의의 친화력과 실무 능력은 제가 기대한 것 이상으로 잘 해냈답니다. 조합일로 늘 바빠서 모임을 승의가 남는 시간에 맞춰야 했어요. 해고자 신분으로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아 책임감 있는 남편이자 아버지가 되었답니다.
* 신진용 (나, 71년생 , 총무국장, 이 글의 작가):
대학 때부터 학생 운동을 했으나 구치소를 한 번도 가지 않았어요. 입만 살았다는 소리를 듣는답니다. 딸은 아빠가 '방구석 여포'라고 해요. 저는 처음 들었을 때는 그게 칭찬인 줄 알았어요. 세상 모든 일에 호기심이 있지만 깊지 않고 얕고 넓게 아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답니다. 요즘에는 만사 귀찮아서 책도 여행도 별 흥미가 없어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이 목표랍니다. 술, 담배, 당구, 골프, 낚시 등 취미가 없는 저에게 이들 4명과의 필터 없는 수다는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해방감을 준답니다.
김영의, 나(신진용), 정승의, 고태선
우여곡절 많았던 우리의 해고 생활
2009년, 저희 23대 집행부 간부들은 파업에 돌입했고, 모두 해고되는 황당한 상황을 맞이했어요. 태선 형과 영의 형은 파면, 저와 승의는 해임되었죠. 영의 형은 행정소송에서 승소해 복직했지만, 승의는 패소하면서 9년이라는 긴 해고 생활을 하게 되었어요. 저는 1년 6개월쯤, 영의 형은 3년쯤, 승의는 9년쯤, 태선 형은 10년쯤 해고 생활을 했답니다.
23대 집행부 간부를 할 때는 서로 불협화음도 있고 빨리 임기 마치고 현장으로 가서 각자 볼일 없을 줄 알았어요. 워낙 캐릭터들이 공통점도 없고, 개성도 강하고, 고집도 세고 한마디로 임기를 제대로 마칠 수 있나 싶었죠. 그래도 어찌어찌 꾸역꾸역 10개월 보내고 파업에 돌입했는데 모두 해고되었어요. 황당 그 자체였죠. 그러고 나서도 한참을 티격태격하면서 지내다가 한두 명씩 현장에 복귀하다 보니 자연스레 2년 임기를 마쳤답니다.
그런데 행정소송1심에서 막내 승의가 패소하면서 해고되었어요. 다들 위로하기 위해 모이고, 2심이나 대법원에서 이겨서 다시 돌아올 거라고 살살 달랬죠. 그사이 지방본부 간부로 조합 활동도 열심히 했답니다. 그러나 2심에서도 패소, 대법원에서도 패소해서 해고가 확정되었어요. 본부장이었던 태선 형은 해고를 어느 정도 각오했던 반면, 승의는 저보다도 징계 사유도 적고 직급도 낮았는데 해고된 것이라서 다들 어찌할 바를 몰랐답니다.
그 뒤로 승의는 저녁 10시나 11시쯤 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지금 혼자 술 마시고 있으니 형들 데리고 오라는 거예요. 한번 퇴근하고 집에 가면 절대? 집 밖으로 나오는 적이 없는 영의 형도, 성질머리 장난 아닌 태선 형도 내 전화에 투덜거리면서도 나와서 제 차로 승의가 있는 술집으로 간답니다. 그런 날은 술집, 커피숍, 노래방을 술 안 먹은 제가 운전을 해서 이리저리 다니다가 미혼인 승의와 영의 형을 모텔 방에 데려다주고 끝이 나요. 집에 들어오면 2시, 3시쯤 된답니다. 휴!
승의는 두어 달에 한 번 꼴로 그랬어요. 행정소송 2심에서는 이길 줄 알았는데 패소, 대법원에서 다시 패소! 3년 정도 걸리는 동안 승의 술시중?을 세 명은 투덜거리면서도 들어야 했답니다. 대법원에서 해고가 최종 확정되고 녀석은 현실을 받아들이는 듯했어요. 그러던 중 저에게 결혼 상담을 했답니다. 연애하는 애인이 있는데 해고돼서 결혼하기가 힘들다는 거였어요. 저는 애인이 승의 너랑 결혼하는 거지 철도공사랑 결혼하는 게 아니라면 마흔 넘기지 말고 결혼하라고 했어요. 제 조언이 먹힌 건지는 몰라도 녀석은 해고자 신분으로 39살에 결혼을 했고 철도 해고자와 노조 간부들로 가득 찬 결혼식장에서 결혼했답니다. 기특한 녀석! ㅋㅋ
결혼 후 승의는 마음을 잡고 노조 활동도 안정적으로 하고 혼자 술 먹고 형들 불러내는 일도 거의? 없어졌어요. 딸이 생긴 뒤로는 더 착실해지는 듯하답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전대협 의장 출신의 오영식 사장이 철도공사 사장으로 취임. 우여곡절 끝에 그간의 해고자가 전원 복직되었답니다. 파면되었던 태선 형도 해임되었던 승의도 복직되었죠. 다들 기뻤어요.
그간 네 명은 서로 간의 성격 차이도 경제적 차이도 숨기는 일 없이 아무 말이나 막 해도 별로 기분 나쁘거나 오해하는 것이 없는 사이가 되었답니다.
대천 여행, 계획 따윈 버려!
영의 형 임금피크제 기념 여행은 태선 형의 제안으로 시작되었어요. 저는 요즘 '만사 귀차니즘'에 빠져 당일치기를 주장했지만, 2박 3일 대천해수욕장으로 가기로 했죠. 제가 대천 출신이라서 총무인 승의가 숙소와 일정을 잡아달라고 부탁하더라고요. 그래서 적당한 펜션을 예약하고 인공지능에게 물어봐서 일정을 단체 톡방에 올렸어요.
7월 18일 금요일
오후 2시, 반차를 쓰고 태선 형 집 앞으로 집결! 영의 형의 새로 뽑은 기아 K8 차를 타고 출발했어요. 저는 출발하고 잠이 들었다가 눈을 뜨니 어느 시골길을 달리고 있더라고요. 고속도로를 타고 가면 이런 길이 안 나오는데 이상하다 싶었죠. 그래도 내비 찍고 가는 길이니 맞겠거니 했는데 10분쯤 후에 내비에서 도착했답니다. 근데 예산 시골의 '한아름마트'였어요. 저희가 가야 할 곳은 '한아름펜션'인데 말이죠! 다들 내리더니 "내비 잘못 찍었네!" "그럴 수 있지!" 하면서 차에서 나가서 다들 담배 한 대씩!
네비를 다시 찍고 대천 '한아름펜션'으로! 도착해서 보니 101호가 1층이 아니라 반지하, 비가 와서 습한 기운이 확 올라온답니다! 뭐 그럴 수 있지! 다들 나가서 담배 한 대씩 태우고 와요. 펜션에 들어와 짐을 풀고 보고, 쉬면서 인터넷에서 일정을 확인해 보니 개장일이 올해는 작년보다 한 주 늦게 다음 주에 한대요! 비가 와서 그런가? 원래 대천해수욕장으로 여행 온 것이 영의 형이 개막식에서 나오는 가수들 보고 싶다고 해서 온 건데! ㅠㅠ 그래도 아무도 구시렁거리지 않는답니다.
예산 한아름마트 갔다가 오느라 다들 피곤했는지 낮잠 자고... 일어나서 저녁 먹으러 펜션 밖으로 나옴! 비 온 뒤라서 그런지 밤바다는 선선합니다. 한참을 걷다가 삼겹살집에 들어가서 저녁 먹으며 수다. 다들 소맥 말아서 한 잔 두 잔 ㆍ나는 콜라.
밖에 나와서 승의가 노래방 가자고 합니다. 막내승의가 가자고 하니 어쩔 수 없죠! 노래방 가서 다들 다시 맥주에 노래 음주가무를 즐기고 펜션으로 돌아왔죠!
영의 형과 태선 형은 피곤했는지 씻고 바로 취침. 승의는 노래를 불러서 배고프다며 라면 하나 끓여 먹고 취침! 저는 오는 차 안에서 자고 술도 안 먹은 탓인지 잠이 안 와서 이렇게 오늘 하루를 적어본답니다. 늦게 취침.
7월 19일 토요일
영의 형 일찍 일어나서 담배 피우러 밖으로 나간답니다. 비가 온다며 다시 들어와 우산 가지고 나가서 산책하고 와요! 일기예보를 보니 오늘은 하루 종일 비랍니다. 영의 형이 돌아오자 다들 일어나서 커피 한잔 마시며 수다. 남자들의 수다는 계속된답니다. 저는 보통 말할 때 필터를 끼운답니다. 상대방의 나이나 직위, 지적 수준, 기분 상태, 예의 등등. 그러나 네 명이 수다를 떨 때는 모두 필터라는 것이 없어요. 성역도 없고 금도도 없답니다. 15년 정도를 만나면서 서로의 단점이 뭔지 바닥이 어딘지 다들 알기 때문인지 아무 말 대잔치를 해도 그냥 넘어간답니다. 네 명을 다 아는 사람들은 저희 네 명이 어울리는 것이 도무지 상상이 안 간다고들 한답니다. 제가 생각해 봐도 그렇답니다. 그래도 저는 이 사람들이 제일 편할 때가 있어요. 필터 없는 아무 말 대잔치가 술, 담배, 취미가 없는 저에게는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느낌이 들어서인지도 모르겠어요. 아침은 영의 형과 승의는 해물뚝배기, 저랑 태선 형은 빵에 차 한잔 각자 헤어져서 만났답니다. 아침부터 내리는 비가 그치질 않아요.
비 오는 바닷가를 남자 네 명이 어슬렁거리며 걷다가 펜션으로 돌아왔답니다. 다들 어제 숙취가 있는지 낮잠! 느지막하게 일어나서 태선 형이 추천하는 갈치조림을 먹으러 갔어요. 갈치조림에 시원하고 깔끔한 조개탕이 맛있었답니다. 대천항에 가면 한번 가보시라!
이제 어디 가냐고 저에게 추천해 보라고 해서 성주사지로 가자고 했어요. 비가 오니 해수욕장보다는 낫겠다 싶었죠. 가면서 유홍준 씨가 부여에 사는데 강남 아줌마들을 버스 대절해서 성주사지로 와서 문화 해설 하는 걸 예전에 대천 지나가다가 성주사지 들렸다가 보았다부터 문화유적 답사의 고수들은 폐사지를 보면서 고즈넉함과 1000년 전의 절의 위용을 상상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썰을 한참 풀고 있는데, 영의 형이 유홍준 씨가 그런 일도 하냐고 묻는 겁니다. 그래서 저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유홍준 모르냐고 했더니 셋이 우리 회사의 동명이인 유홍준 팀장밖에 모른다는 거예요. 이런 된장!
여기서 썰은 멈추고 폐사지 성주사지를 비 오는데 거닐었답니다. 뭐 다들 볼 것도 없는 폐사지를 여기저기 둘러봐요. 여행의 고수들인가? 정작 저는 별 감흥이 없어요. 저는 책으로 텍스트로 읽을 때가 느낌이 더 오는 스타일, 셋은 그냥 직관적으로 느끼는 스타일... 지루해할 줄 알았는데 다들 만족스러운 것 같아요.
비 안 오면 계곡에 발도 담가보고 싶다는데 비가 와서 다시 펜션으로... 그렇게 돌아오니 비가 그치고 해변 나들이 가서 사진 몇 장 찍고 저녁 먹고 밤바다를 구경하다가 들어와서 새벽까지 아무 말 대잔치 수다를 떨고 취침!
그리고 다음 날 귀가!
계획 따윈 중요치 않아!
이번 여행에서 계획대로 된 것은 하나도 없었어요. 그런데 아무도 문제 제기를 하거나 불만을 토로하지 않는답니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게 없다는 것은 15년 넘게 만나면서 알게 된 것 같아요. 그냥 적응하고 상황에 맞게 대처할 뿐이라는 걸 말이죠.
이번여행은 소소한 에피소드입니다ㆍ 어떤 기상천외한 에피소드들이 저희를 기다리고 있을지? 나이 먹어서 이젠 그런 일은 없을지?
그래도 인생 모르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