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의 질서'의 발견
나를 지적인 충격과 성찰의 구렁텅이로 빠뜨린 유발 하라리 교수님의 역작, 『사피엔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특히 책을 읽으면서 제 삶의 특정 경험들이 퍼즐 조각처럼 맞춰지는 신기한 경험을 했고, 이 통찰들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책에서 하라리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이야기들은 우리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1. 나의 혼란, 그리고 '상상의 질서'의 발견
나는 고등학교까지 12년간 "철저한 반공교육"을 받았어요. 사회주의는 악이고 자유민주주의만이 선이라는 가르침 속에서 자랐죠. 그런데 대학에 들어서 3개월 만에 사회주의에 묘한 호감을 느끼게 됩니다.
사실 이때 제 머릿속은 큰 혼란에 빠졌어요. 학교 다닐 때는 기독교와 사회주의가 상극이라고 배웠고, 대학에서는 마르크스의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는 말 때문에 이 둘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다는 것 자체를 인지조차 하지 못했거든요. 사회주의는 유물론에, 기독교는 신에 기반하니 완전히 반대라고 굳게 믿고 있었죠. 그런데 난데없이 사피엔스를 읽고 이 둘 사이에서 공통의 '평등'과 '나눔'을 느끼다니, 기존의 모든 믿음 체계가 흔들리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유발 하라리 교수의 "상상의 질서" 개념을 만났고, 이 개념은 이 혼란을 명쾌하게 해소해 주었습니다. 『사피엔스』를 읽으면서 비로소 제가 이 둘 사이의 유사성을 깨달을 수 있었던 거죠. 그래서 쉽게? 사회주의에 내가 매료될 수 있었구나 하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ㆍ
2. '상상의 질서'의 작동 방식과 인간의 본능적 한계
하라리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돈과 신, 그리고 국가라는 거대한 신화 속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인간은 지능이 뛰어난 동물일 뿐만 아니라, 집단적으로 상상하는 동물이다." 인간이 얼굴과 이름을 익히며 친밀하게 교류할 수 있는 최대 인원은 약 100명 정도라고 해요. 이 한계를 넘어서면 서로의 공통점이나 협력이 어려워지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종교와 이데올로기입니다.
군대, 노동조합, 종교, 정치 조직 등 거대한 규모의 집단들이 실제로는 100여 명 정도의 작은 단위로 묶여 관리되는 것도 이러한 인간 본연의 한계를 극복하고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통찰에서 비롯된다고 하니, 정말 놀라웠습니다. 결국, 종교든 사회주의든 현실을 초월하는 "진리"나 "가치"를 제시하며 사람들에게 도덕적 규범과 행동 지침, 그리고 이상향을 약속한다는 점에서 공통의 '이야기'가 됩니다. 하라리는 "인간은 진실을 추구하는 것보다 이야기를 믿는 것을 더 선호한다"고도했죠.
이러한 공통의 "이야기"와 "믿음"은 수많은 사람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 강력한 연대 의식을 만들고, 자신의 믿음을 전 세계로 확산하려는 의지까지 갖게 합니다. 제 경우처럼, 성당에서 배운 보편적 가치가 사회주의 이상과 내용은 다르지만 형식이 비슷하게 느껴지면서, 이전까지 주입받았던 반공 이데올로기 외에 다른 "상상의 질서"에 눈을 뜨는 경험을 한 것이죠.
이는 '이집트 탈출과 십계명' 그리고 '사회주의 고난의 행군과 강령'을 비교하며 이야기했던 것과도 연결됩니다. 극한의 고난 속에서 새로운 지도자와 이념, 그리고 그에 따른 규칙들이 생겨나고, 이는 공동체를 지탱하는 강력한 '상상의 질서'가 되며, 우리가 함께 믿기로 한 이 '이야기'가 현실을 만드는 강력한 힘이 되는 것입니다.
3. 인류 최악의 실수, 농업혁명
『사피엔스』를 읽으면서 가장 강력한 지적 충격으로 다가온 부분은 바로 농업혁명에 대한 시각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농업이 인류의 위대한 진보이자 문명의 시작이라고 배우곤 하죠. 하지만 하라리 교수는 이를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기다"라고 평가합니다. 그는 역설적으로 "인간이 쌀과 밀을 재배한 것이 아니라, 밀과 쌀이 인간을 길들였다"라고 주장합니다.
농업혁명 이전 수렵채집인들의 삶은 생각보다 훨씬 건강하고 여유로웠다고 해요. 하지만 밀과 쌀이 '인간'을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인간은 단조로운 식단, 극심한 노동, 정착 생활로 인한 질병, 계층화와 불평등, 그리고 미래에 대한 끊임없는 불안에 시달리게 되었죠. 농업은 인류를 '돌아갈 수 없는 덫'에 가둔 셈이고, 그 결과 밀과 쌀은 지구에서 가장 성공적인 생물종이 되었지만, 인간의 삶의 질은 오히려 떨어졌다는 것이 하라리 교수의 냉철한 통찰입니다. 그는 "인류는 지구를 지배하게 되었지만, 그 대가로 모든 것을 잃었다. 모든 종을 멸종시키고, 모든 생태계를 파괴하고, 그 자신마저 파괴했다"라고 일침을 놓습니다. 이 말처럼, 우리는 지구의 지배자가 되었지만, 과연 우리는 행복해졌을까요?
4. 종교인가 이데올로기인가: 불교를 통해 본 새로운 시각
하라리 교수의 시선이 특별했던 또 다른 부분은 불교에 대한 해석이었어요. 그는 불교를 '종교'가 아닌 "이데올로기" 범주에 가깝게 해석하는 점이 특히 흥미로웠습니다. 하라리는 종교를 '초인적인 질서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의 규범과 가치 체계'로 정의하며, 신을 숭배하지 않는 체계도 포함한다고 설명합니다.
불교는 신 대신 고통의 원인과 해결책에 대한 "보편적인 '자연법칙'"을 설파하고, 인간 스스로의 노력과 통찰을 강조합니다. 이는 인간의 의지를 중시하는 이데올로기적 특성과 연결되며, 하라리는 "인본주의라는 이 새로운 종교는 인류를 숭배하고,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에서 신이 맡던 역할, 불교와 도교에서 자연법이 맡던 역할을 인류에게 요구한다"라고 언급합니다. 불교가 보편적인 가르침을 통해 수많은 사람을 결속시키고 사회 질서를 형성하며 적극적으로 전파하려는 선교적 속성도 보인다는 것이죠. 이 점에서 불교는 특정 신앙 체계를 넘어선 사회적, 문화적, 심지어 정치적 기능을 수행하는 "이데올로기"의 특성을 지닌다고 하라리는 설명합니다. 결국 모든 것은 사회를 구성하고 사람들을 움직이는 '상상의 질서'라는 큰 틀에서 이해될 수 있는 거죠.
부처는 생전에 자신은 신이 아니며 자신에게 기도하지 말라고 가르쳤는데 보통의 인간은 불상을 세우고 기도하며 부처님을 따르는 것이라고 하니 이런 이이러니가 없네요!
5. 과학과 행복, 그리고 미래의 물음
20대 초반, 저는 과학이 발전하면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거나 천국과 지옥 같은 개념은 사라질 것이라고 확신했어요.
하지만 하라리 교수는 "과학 기술의 발전이 반드시 종교적 믿음의 소멸로 이어지지 않는다"라고 역설합니다. 오히려 농업혁명이 유신론적 종교를 낳았듯, 과학혁명은 신을 인간으로 대체한 "인본주의 종교"를 탄생시켰다고 말하죠.
"우리는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가 되었지만, 여전히 행복을 찾고 있다."
즉, 우리는 과학을 통해 엄청난 힘을 얻었지만, 여전히 우리를 묶어줄 "의미"나 "이야기"를 갈구하고 있다는 겁니다. 힘은 가졌지만, 그 힘으로 얻는 행복은 별개라는 하라리 교수의 통찰은 가슴에 깊이 와닿습니다. 그는 "우리는 미래를 통제할 수 없으며, 미래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다"라고 말하며, "역사는 정의롭지 않다"는 냉철한 인식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미래조차 통제할 수 없다는 그의 말은 우리에게 겸손함을 일깨워주죠.
하지만 하라리는 동시에 희망적인 메시지도 던집니다. "우리는 앞으로 수십 년 안에 인공지능과 생명공학 기술을 통해 우리의 진정한 잠재력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는 우리가 마주할 새로운 '상상의 질서', 새로운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의미겠죠.
6. 결론
6. 『사피엔스』는 단지 과거의 역사를 나열하는 책이 아니었습니다. 저에게는 제가 믿고 있던 세상의 당연한 질서들이 사실은 "집단적 상상"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게 해 준 충격적인 자기 성찰의 도구였죠.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갈 세상도 결국은 어떤 '이야기'를 집단적으로 믿고 따라가느냐에 따라 달라질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글을 통해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이야기'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과연 어디로 이끌고 갈지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상상의 질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도 의미 있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