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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그리고 달라진 나의 시선

이념과 현실, 그리고 대한민국 이야기

by 자유로운영혼

오랜만에 조정래 작가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을 다시 읽었다. 대학 시절 감명 깊게 읽었던 소설이지만, 십수 년이 흐른 지금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다. 특히 대한민국의 토지 개혁에 대한 나의 인식이 바뀌면서, 소설의 내용이 더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1. 《태백산맥》이 그린 토지개혁과 대한민국 실제 역사의 간극


대학 때 《태백산맥》을 읽으면서는 소설 속 염상진의 고뇌와 이상에 매료되었다. 당시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주로 담아 토지 개혁이 마치 엉망진창으로 진행되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지주들의 편법, 관료들의 부패, 그리고 이념 대립 속에서 힘없는 농민들이 겪는 혼란과 비극이 너무나도 생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나라의 토지 개혁을 다시 공부해 보니, 실제 역사에서는 봉건적 지주제를 해체하고 농민들에게 토지를 분배함으로써 사회의 민주화와 농업 생산성 증대에 크게 기여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임을 알게 되었다. 물론 부족한 점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의 근간을 다지는 중요한 정책이었던 것이다.


2. 무상몰수 무상분배, 그리고 사회주의의 역설


《태백산맥》은 필연적으로 사회주의 이념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공산주의 국가들이 내세웠던 '무상 몰수 무상 분배'는 겉보기엔 농민들에게 엄청난 혜택처럼 보였다. 하지만 역사를 돌이켜보면, 결국 그 토지들은 국가에 의해 다시 몰수되어 거대한 '집단 농장' 체제로 귀속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농민에게 땅을 돌려준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사유재산 철폐라는 미명 아래 또 다른 형태의 착취와 통제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는 생산성 하락과 대규모 아사 등 참혹한 결과를 초래했다.


3. 순수한 이상과 참혹한 현실: 사회주의의 비극적 결말


사회주의 이상은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을 제어하고, 모두가 평등하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고귀한 포부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불평등과 착취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순수한 열정 말이다.


대학 시절, 우리는 《태백산맥》을 읽으며 염상진과 김범우 중 누가 더 옳은가에 대한 열띤 논쟁을 벌이곤 했다. 당시에는 이상에 대한 순수한 열망 때문인지, 염상진의 편에 서는 이들이 더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 현실에서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 미처 알지 못했다ㆍ 염상진이 상징하는 급진적인 이상과 김범우가 대변했던 현실적인 고뇌 사이에서, 젊은 이상과 열정적 활동에 매료되었던 시절이었던 셈이다.

95년 1월 후배들과 태백산맥의 배경 벌교답사


하지만 사회주의의 그 결과는 너무나도 참혹했다. 폭력과 강제가 혁명의 수단이 되었고, 권력을 쥔 소수가 모든 것을 독점하고 통제하는 전체주의 체제로 변질되었다. 인간 본성, 즉 소유욕이나 자유로운 성취욕구를 억압하려다 보니 생산 의욕이 상실되었고, 결국 독재와 인권 유린이라는 비극이 뒤따랐다. 이상을 좇았던 수많은 투사와 희생자들이 지금의 북한이나 중국의 현실을 본다면 어떤 심정일지 가늠조차 어렵다. 자신들이 꿈꿨던 '인민 해방'과 '평등한 사회'가 아니라, 오히려 더 견고한 권력 체제와 불평등이 만연한 모습을 마주했을 때의 허망함은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4. 나의 활동, 그리고 '모호한' 결과에 대한 단상


대학 시절 학생운동에도 참여했고, 직장에서는 노조 활동을 함께했다. 그때는 사회 정의와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나 또한 해고의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당시에는 강경파보다는 온건파에 가까웠지만, 동료들과 함께 우리가 옳다고 믿는 길을 걸어갔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모든 노력의 결과가 '모호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분명 우리 세대의 많은 노력 덕분에 사회는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고, 지금의 후배들은 예전엔 상상조차 못 할 권리들을 누리고 있다. 최저임금, 주 52시간 근무, 민주노조의 건설과 사수 등은 분명히 우리 젊은 날의 싸움으로 쟁취된 것들이다.


그런데 그 성과를 누리면서도 노조 활동 자체는 '귀찮아하는' 후배들의 모습을 보면 솔직히 씁쓸할 때가 많다. 우리가 닦아놓은 길인데, 그 소중함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이상'을 좇았던 내 젊은 날의 열정은 분명했으나, 그 결과의 빛깔은 여전히 '모호한' 채로 남아 있는 듯하다. 후배들에게는 후배들 몴의 어려움과 그걸 극복해 내는 활동이 있겠지!


5. 세상을 바꾼 건 이념이 아니라 '물적 토대'?


최근에는 세상의 변화를 보면서, 과거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이상'이나 '신념'이 세상을 바꾸는 유일한 동력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오히려 '물적 토대', 즉 경제적 기반과 생활 수준의 변화가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통찰에 이르게 되었다.


특히 중산층의 대규모 출현이 결정적이었다고 본다. 극단적인 빈부격차 속에서는 급진적인 이념이 힘을 얻기 쉽다. 그러나 중산층이 두터워지면서 사람들은 안정과 점진적인 개선을 선호하게 된다. 나의 재산을 지키고, 자녀를 교육하며, 노후를 준비하는 등 현실적인 욕구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중산층은 민주주의의 든든한 기반이자, 시장 경제를 지탱하는 주요 세력이 되었다.

2017년 혼자 벌교에 다녀왔었다ㆍ 태백산맥의 스토리로 잘 조성된 관광지? 가 되어 있었다


6. 대한민국 중산층 형성의 특별한 '운'과 노력


우리나라에서 중산층이 이처럼 광범위하게 형성된 것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특별한 경우다. 동남아나 남미, 아프리카 국가들이 민주화 투쟁을 하고도 여전히 빈부격차와 혼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이는 우리의 피나는 노력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냉전 시대의 전략적 중요성으로 인한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 세계적인 고도 성장기라는 시대적 운, 초기 토지 개혁의 성공적 추진, 그리고 국민들의 뜨거운 교육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젊은 날에는 분단과 냉전이 인권과 민주주의, 경제 발목을 잡는다고 생각했지만, 나이가 드니 역설적으로 그것들이 우리에게 엄청난 '혜택'을 안겨준 측면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마치며


《태백산맥》에서 시작된 사색은 이처럼 이념, 역사, 개인의 삶, 그리고 대한민국의 발전에 대한 복잡한 생각들로 이어졌다. 정답이 없는 문제들 속에서 계속해서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함을 다시금 느끼며, 오늘도 새로운 깨달음 앞에서 겸허해진다.

2021년 후배들과 다시 벌교를 다녀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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