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인천 공단, 그 뜨거웠던 인민노련의 엇갈린 40년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하루 만의 실패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후 국회에서 지명한 헌법재판관 후보자들에 대해 한덕수 총리가 거부권을 행사하며 정국은 급격히 냉각되었고, 뉴스에는 매일 헌법재판관 후보자들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그중 내 눈길을 사로잡은 이름은 마은혁 판사였다. 그의 이력에 적힌 '인민노련 투옥 전과'라는 문구를 보는 순간, 잊고 있었던 30여 년 전의 강렬한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내가 이 조직의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대학교 1학년 겨울 방학이던 1991년 1월쯤이었다. 당시 대전 유일의 불온서적 판매점이라 불리던 대흥동 ‘창의서점’에서 만난 책의 제목은 도발적이기 그지없었다. 유시민의 ‘항소이유서’가 순진한 대학생이 어떻게 투사가 되는가를 보여주었고, 다른 조직 사건들이 고문에 의한 조작이나 좌경 세력이 아님을 항변하며 변론에 급급했다면 이들은 달랐다. 법정 최후 진술에서 “맞다, 우리는 사회주의자다. 그래서 어쩔 건데?”라고 되묻는 듯한 당당함. 그 강심장에 매료되어 나는 그 책을 사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대한민국 정치의 일부를 담당하는 정치인의 뿌리가 바로 이곳, 80년대 인천의 매연 가득한 공단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1. 학출들이 기름때 묻은 공장으로 간 이유
당시 대학가를 휩쓴 주류가 민족 해방을 외치던 NL(민족해방) 계열이었다면, 인민노련은 정통 마르크스주의에 기반해 노동 계급의 해방을 꿈꿨던 PD(민중민주) 노선의 본산이었다.
출신 지역과 학교는 달랐지만, 세상을 바꾸겠다는 일념으로 전국에서 모여든 청년 지식인들은 책상을 박차고 나와 인천과 부천의 공장으로 향했다. 신분을 숨긴 채 위장 취업을 했고, 낮에는 용접봉을 잡고 밤에는 노동자들과 함께 세상을 고민했다. 관념에 매몰되지 않고 몸으로 부딪친 실천적 지식인들의 탄생이었다.
2. 세대를 아우른 인민노련의 주역들
인민노련은 70년대부터 활동해 온 선배 세대와 80년대 학번 후배들이 결합된 탄탄한 조직이었다. 이들은 훗날 각기 다른 정당의 옷을 입고 한국 정치의 전 스펙트럼을 형성하게 된다.
명단 1. 진보의 길
• 노회찬 (1956년생 / 부산 / 고려대 정치외교): 인민노련 중앙상임위원. 징역 2년 6개월 선고. 훗날 진보정치의 상징이 되었으며 정의당 대표와 3선 의원을 지냈다.
• 주대환 (1954년생 / 경남 함안 / 서울대 종교학): 인민노련의 리더이자 이론가. 징역 2년 선고.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을 거쳐 바른 미래당 비대위원장 등을 맡으며 사회민주주의와 합리적 중도의 길을 모색했다.
• 조승수 (1963년생 / 경남 울산 / 동국대 생물학): 인민노련 울산 활동. 징역 1년 선고.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소속으로 재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명단 2. 민주당의 길: 제도권 정치의 주류
• 이목희 (1953년생 / 경북 상주 / 서울대 무역학): 인민노련 창립 주도 및 맏형 격. 징역 2년 선고. 민주당 재선 의원과 문재인 정부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 송영길 (1963년생 / 전남 고흥 / 연세대 경영학): 인민노련 현장 활동가.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선고. 인권 변호사를 거쳐 인천시장과 민주당 전 대표를 지냈다. 고 노회찬 의원에게 각별한 애정을 표하는 배경에는 정당은 달랐지만 청춘을 함께 보낸 이 시절의 기억이 자리 잡고 있다.
명단 3. 사회주의자에서 국힘계열로
• 최형두 (1962년생 / 경남 마산 / 서울대 사회학): 인민노련 현장 활동. 징역 1년 선고. 문화일보 기자와 청와대 비서관을 거쳐 현재 국민의힘 재선 국회의원이다.
• 신지호 (1959년생 / 서울 / 연세대 정치외교): 인민노련 활동가. 징역 1년 선고. 1995년 잡지 <사회평론 길>에 '그대 아직도 혁명을 꿈꾸는가'라는 도발적인 글을 실으며 전향을 예고했다. 이후 뉴라이트 운동을 주도하며 18대 총선에서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김근태 의원을 꺾고 당선되어 화제를 모았다. 최근에는 한동훈 계열로 활동하며 정치적 보폭을 넓히고 있다.
• 정태윤 (1958년생 / 서울 / 서울대 국문학): 인민노련 활동. 징역 2년 선고. 한나라당 대외협력위원장 및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을 역임했다.
명단 4. 사회의 길: 각 분야의 전문가
• 윤철호 (1960년생 / 강원 횡성 / 서울대 철학): 법정 선언의 주인공이자 저서의 필자. 징역 2년 선고. 현재 사회평론 대표이자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이다.
• 마은혁 (1963년생 / 강원 고성 / 서울대 정치학): 인민노련 활동으로 구속. 징역 1년 6개월 선고. 사법시험 합격 후 부장판사를 거쳐 현재 헌법재판관으로 임명 사법부의 길을 걸었다. 정치와는 거리를 둔 그의 행보는 인민노련이 배출한 매우 독특한 사례로 꼽힌다.
3. 나가며: 흩어진 사람들, 현실의 벽
인민노련 출신들의 이후 행적을 지켜보며 나는 씁쓸한 현실을 목도한다. 사회주의라는 강력한 이념적 신념도 현실 정치에서는 결국 출신 고향이라는 벽에 부딪히는 듯하기 때문이다. 경상도 출신은 진보정당이나 보수 정당으로, 전라도 출신은 민주당으로 진출하는 경향은 무척이나 뚜렷하다. 만약 진보정치의 길을 걸었던 이들의 고향이 호남이었다면, 그들 역시 송영길처럼 민주당의 길을 걷지 않았을까? 진보정치를 택한 것이 보수 정당에 가지 못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는 씁쓸한 가정마저 해보게 된다.
물론 국힘계열로 향한 이들이 보여주는 일부 행보는 젊은 날의 뜨거웠던 외침과 대조되어 실망과 씁쓸함을 안겨주기도 한다. 누군가는 과거의 동지를 향해 날 선 공격을 퍼붓고, 누군가는 권력의 핵심에서 과거의 가치를 부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비록 그 유전자가 현실 정치의 거친 풍파 속에 때로는 굴절되고 훼손되었을지라도, 40년 전 그들이 꿈꿨던 뜨거운 변혁의 의지는 대한민국 정치의 토양 어딘가에 남아 오늘날까지 흐르고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