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도덕'이 아니라 '장사'였다.
91년 대학 2학년 때, 범중 형이 권해서 님 웨일스(Nym Wales)가 쓴 김산의 일대기 《아리랑》을 읽고 깊은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군대에서는 에드거 스노의 《중국의 붉은 별》을 읽으며 중국 혁명을 이해했다. 나중에 도올 김용옥 선생의 일제하 독립운동가 김산에 대한 강의를 보며 이 두 저자가 부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후 김명호의 《중국인 이야기》, 유튜브 채널 '붉은 오늘', 그리고 대약진 운동과 문화 대혁명 등을 알아가면서 중국 혁명과 그 그늘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이념이 무엇인지, 신념이 무엇인지, 그리고 혁명은 왜 그렇게 많은 우여곡절과 희생을 동반하는지 많은 질문과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중국 혁명의 다른 면을 짧게 정리해 본다.
1. 낭만이 가려버린 역사의 민낯
우리는 흔히 중국 혁명을 '부패한 국민당'과 '청렴한 공산당'의 대결로 기억한다. 하지만 역사의 뒷면을 들여다보면, 그 본질은 이념의 승리가 아닌 철저한 '패권의 서열 정리'와 '고객 관리'의 결과였다.
특히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이 선포되고 불과 8개월 뒤인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터졌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국 혁명 과정에서 보여준 미국의 애매모호한 태도와 미국 방위선인 '애치슨 라인'에서 한반도를 제외한 결정은 김일성으로 하여금 남침을 하더라도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오판을 하게 했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 대륙을 통째로 잃고 나서야 극동 아시아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뼈저리게 인식했고, 이는 한반도 전쟁에 미국이 사활을 걸고 개입하게 된 결정적인 배경이 되었다.
2. 내부에서 시작된 균열: 조지프 스틸웰 장군의 분노
미국이 장제스라는 '고객'에게 등을 돌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 중 하나는 현장 사령관이었던 조지프 스틸웰 장군과의 갈등이었다. 철저한 실용주의 군인이었던 그는 장제스가 미국이 지원한 무기를 일본군과 싸우는 데 쓰지 않고, 나중에 공산당과 싸우기 위해 아껴두는 모습에 극도로 분노했다. 그는 장제스를 '땅콩'이라 비하하며, 차라리 기강이 잡히고 잘 싸우는 공산당 군대에 무기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장에서 날아온 이 냉소적인 보고서들은 미국 정부 내에 "장제스는 투자가치가 없다"는 회의론을 퍼뜨리는 불씨가 되었다.
3. 사회주의 종주국의 이면과 기묘한 동행
가장 역설적인 장면은 사회주의 종주국인 소련의 행보다. 스탈린은 마오쩌둥을 같은 '동지'로 보기보다, 자신의 통제를 벗어날지 모르는 위험한 '잠재적 경쟁자'로 보았다. 스탈린은 마오쩌둥이 중국을 통일해 강력한 국가를 만드는 것보다, 중국이 내전으로 쪼개져 소련에 의존하는 상태로 남기를 원했다. 그래서 소련은 마오쩌둥의 뒤통수를 치고 장제스의 국민당과 '중소우호동맹조약'을 맺으며 만주의 철도권과 항구 사용권이라는 실리를 챙겼다.
이러한 소련의 실리주의는 국민당이 몰락할 때 극에 달했다. 1949년, 국민당이 대륙에서 쫓겨날 때 서방 국가들은 이미 공산당과의 눈치싸움을 시작하며 대사관을 난징에 남겨두었으나, 오직 소련만이 끝까지 장제스 정부를 따라 광저우로 영사관을 옮겼다. 공산당이 승리하기 직전까지도 장제스라는 '보험'을 들고 있었던 셈이다. 세계 혁명을 주도해야 할 종주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보여준 이중적인 태도는 실망스럽기까지 하다. 물론, 마오쩌둥이 건국을 선포하자마자 소련은 단 하루 만에 장제스와의 조약을 휴지조각으로 만들고 새 주인을 승인했다.
4. 미국의 치명적 오판: "어제의 동지"와 분단 시나리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중 소련에 엄청난 물자를 지원하며 함께 피를 흘린 연합군이었다. 승전의 기쁨에 취해 있던 미국은 설마 전쟁이 끝나자마자 소련과 이토록 빨리 냉전 체제로 돌입할 것이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이러한 방심 속에서 조지 마셜 장군은 '마셜 미션'이라는 어설픈 중재를 시도한다.
당시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는 장강(양쯔강)을 경계로 중국을 남북으로 가르는 방식이 진지하게 고려되었다. 북쪽은 공산당이, 남쪽은 국민당이 통치하는 '중국판 38선'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이 중재 기간은 열세였던 공산당이 전력을 재정비할 시간만 벌어주었을 뿐이다. 미국은 동맹이었던 소련의 야욕을 과소평가했고, 결국 '분단'이라는 차선책마저 놓친 채 대륙 전체를 잃는 '최악의 비즈니스'를 마감했다.
5. 역사가 던지는 질문: 결말을 책임질 수 있는가?
중국 대륙의 주인이 바뀐 것은 단순한 도덕적 우월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큰 손이었던 미국과 소련의 요구 사항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장제스의 전략적 실패와, 자국의 이익에 따라 언제든 투자처를 옮기는 열강들의 냉혹한 생리가 맞물린 결과였다.
하지만 모든 것이 실리와 돈으로만 결정된 것은 아니다. 마오쩌둥과 공산당은 밑바닥 민심이 갈구하던 '변화'라는 명분을 장악했다. 장제스가 열강들의 눈치를 보며 기득권 유지에 급급할 때, 마오는 대중의 욕망을 혁명의 동력으로 치환하는 데 성공했다. 비록 그 과정에 거대한 희생과 오류가 따랐을지언정, 인간 세상은 결국 명분이라는 깃발 아래 움직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에서 이 거대한 변화의 사후 수습에 실패했고, 그 대가로 냉전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야 했다. 역사는 반복된다. 우리가 지금도 낭만주의적인 함정에 빠져 세상을 선악의 구도로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역사는 언제나 도덕적 명분 뒤에서 '돈과 실리'라는 엔진이 작동하고 있으며, 그 엔진을 돌리는 명분이 민심과 결합할 때 비로소 거대한 혁명이 완성된다는 사실을 되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