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친절했던 '나'였다.
그게 설령 사람이 아닌 존재까지에게도 말이다.
그러나 이 '지구'란 행성을 통틀어 세상에 딱 한 명, 그 사람에게만큼은 가혹했었다.
그 누군 바로 '어른이 된 나 자신'이었다.
누구의 편도 잘 되어주었으면서 정작 내가
나의 편이 되어주지 못하고, 내 자신이
생각하는 기준에 미치지 못할 때마다
내 자신을 반복적으로 비난했다.
이 기준이라는 것은 신기하게도 세상 모두에겐 '그럴 만 했네, 그럴 만도 해'라며 현실적이면서도 막상 나에게만 이 기준을 적용할라치면
실제 이루기 어려울 정도로 높기만 했다.
어른이 된 지금, 내가 누군인지,
무엇을 해야할 지도 몰랐기에 미래에
어느 시점에 얻고싶은 '결과'를 상상하지도,
이걸 이룰 '과정'을 미리 떠올려보기도 어려웠다.
또 어렵게 생각해냈다고 해도 이 과정을 이뤄갈 '꾸준함'이란 행동은 항상 '술'에게만 늘 적용되었지 나에겐 그런 기대는 허무맹랑했다.
어른이라고 해서 살다보면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딱 명확하게 알게되는 것은 아니었다.
정체성이 불분명했던 나이만 차서 무늬만 어른이었던 나는 남과 비교하게 되면서 자꾸 내 자신이 초라해지는 기분을 자주 느꼈었다.
내면에서 생기는 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무시하고, 늘 타인 및 상황을 먼저 배려하곤 했다.
타인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하고,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고 상대에게 자신을 맞추는 잘못된 대인관계 스킬로 항상 자존감이 낮고 감정을 억압할 수 밖에 없었다. 꼭꼭 누른 억압된 감정의 '뚜껑'은 늘 막혀있었지만 터지기 일보
직전 상태였다.
매번 감정을 숨긴채 내면 속에서 수많은 가면을 고르고 골라 쓰곤 억지로 웃는 삐에로같은
가면을 쓴 얼굴을 하고 살았다.
어른이 되기 위한 수많은 과업들에 대해 힘들고, 재미없고, 하기 싫다고 생각했다. 이 괴롭고 힘든 일을 하느라 스트레스를 받았으니
힘든 기분을 풀고싶다는 열망으로 술을 습관적으로 소비하며 시간을 보내고 감정쓰레기를 술로 치우는 패턴은 너무도 익숙했다. 이 패턴으로 각종 삶의 문제에 대처했다. 적극적으로 처음엔 문제에 빠르게 대응하기도 했지만 계속 생겨나는 문제에 넉아웃이 되어 탈진상태로 이젠 '술'로
회피전략을 구축했다.
'술'로 인한 회피전략은 일시적으로 두려움이나 불안을 해소시켜주었지만, 문제를 실제로
해결해주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회피 후엔 불안감을 크게 키워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지연시켰다.
[어른의 사전적 정의는 다 자란 사람,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라 한다.
생물학적으로 성장을 마친 것은 물론 나이가 그 시점에 도달했기 때문에 '어른'이라 불릴 뿐이지, 마음은 아직 다 자라지 못해서 혹은
다 자란 마음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어른답지 못한 면모를 갖고 있는 어른'도 많다고 한다.]
'어른'이란 가면을 나이가 먹어 썼긴 썼지만 '어른다운 어른'이 되기엔 내 가면은 엉망이었다.
어른이 되려면 어디로 가야할 지, 어떤 얼굴을 해야할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평생 발달하고 성장해간다고 하는데 '어른'이란 가면 뒤에 내 진짜 얼굴은 '아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어른이 되기 위한 새로운 환경이 주어질 때마다 '극도의 불안감'만이 나를 지배했다.
어른이 되기 위한 모든 발달과업에 '불안'이 스며들었고, 결국 불안은 불신으로 그렇게 나를 '어른'으로서 믿어주지 못하는 내 자신은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도, '실패'에서 배웠네 하며 툭툭 터는 성장형 캐릭터도 될 수가 없었다.
'어른'이란 가면을 쓰니 그 누구에도 이 '불안'을건강하게 토로하기 어려웠다.
나 스스로도 '어른이라면 남들도 다 힘들어..'라며 자꾸만 벗겨지는 '어른의 가면'을 힘겹게 고쳐쓰며 무늬만 어른이라는 내 민낯이 드러날까 전전긍긍했다.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와 '어른'이라는 가면을 벗고 웃는지 우는지 모르는 얼굴을 하곤 점점 '술'이 그려내는 민낯을 마음껏 드러냈다...
무늬만 어른가면을 쓴 알콜중독자의 자화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