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 브랜딩 스터디의 마지막 날이었다.
나는 이 스터디에서 알게된 분께 어떤 제안을 받아 상당한 시간을 들여 일종의 과제를 진행했었고, 이 날은 그 과제에 대해, 그 과제를 통해 내가 가진 강점과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얘기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강한 양가 감정이 들었다.
1. 감사하다
아무 상관없는 타인의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들어주는건 쉬운일이 아니다. 하물며 내가하는 얘기는 대체로 추상적인 이야기다. 하물며 듣고 나름의 조언까지 해주는것은 감사하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2. 정말 화가났다.
결국에는 또 '아이돌 팬픽', '초등학생, 중학생을 포함하는 미래의 소비층'이라는 키워드를 진단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 저번에 '웹소설'이라는 키워드를 받았을 때에도 정말 빡쳤었는데, 이번에도 같은 느낌으로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그 날 모임원들은 모임장을 포함해 정말 나에게 선의를 가지고 있었기에 내가 이렇게 화가난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당황스러웠지만, 조금 진정이 되고나서 생각해보니 이유는 간단했다.
그 모임장과 모임원들이 가진 관점에 대해 납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스터디에 참여하면서 반복적으로 '내가 스토리텔링 쪽으로 관심이 있고 그런 능력이 있다'고 얘기해왔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직업과 그 안에서 하고있는 일, 내가 혼자 만들었던 작업물에 대해서도 이미 얘기했었다.
사실 나는 내가 가진 강점이 뭔지를 알고싶었던게 아니었다. 이미 알고있으니까.
나는 사실은 내가 가진 역량이 그거 하나가 아니고, 그 하나의 역량이 나의 본질적인 부분이거나 제일 큰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사실 여러가지 카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만, 스스로에 대해 명확히 파악할 수 없어 그나마 하나 포착한 서브컬쳐와 스토리 텔링이라는 카드를 뽑아들었을 뿐이다.
왜냐면 이런 네트워킹 모임에서는, 스스로에 대해 표현하는 것부터 시작해야하므로...사실 네트워킹 모임이라는 것 자체가 스스로에 대해 탐색하는 자리가 아닌거다.
네트워킹이라는것 자체가 사실상 방향성이 이미 정해진 사람이 더 지지를 받고 그 방향성을 활성화하기 위해 오는 곳인거다.
하지만 나의 니즈는 그런게 아니었다.
내가 가진 니즈는 내가 아직 포착하지 못한 나의 다른 카드들을 발굴하고, 그것을 통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내가 단순히 컨텐츠만 만드는, 단순히 스토리만 만들고, 단순히 예술적인 부분만 가진 사람이었으면...
처음부터 웹소설가, 웹툰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아트디렉터, 디자이너 이 길로 직행했겠지.
그런데 나는 그러지 않았다.
이 사람들은 내가 걸어온 길이...단순히 내가 욕심히 과해서, 꽉막혀서, 통찰력이 없어서, 남의 시선을 생각하느라 그랬다고 생각하는건가?
나는 경쟁을 통해 높은 타이틀을 따냈다. 이건 내가 그만큼 현실적인 안목이 있는 사람이라는것이고,
나는 공학공부를 했으며 수학을 잘했다. 이건 내가 수치적이고 과학적인 접근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고,
나는 시스템 기획을 했으며, 시스템 문서를 쓰는 일을 아주 잘했다. 개인 포폴을 만들때는 약간의 코딩도 했다. 이건 내가 체계적인 사고를 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고,
나는 건축을 추가로 공부했고, 레벨디자인이라는 일을 하고있다. 이건 내가 공간적인 설계능력이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요 근래 두번의 브랜딩 스터디에서는 내가 가진 이런 카드 들은 포착될 기회조차 잃고, 내가 꺼내든 단 하나의 카드가 내 전부이자 본질인것 처럼 결론이 나버렸다.
위에서도 말했듯, 네트워킹이 가진 한계인 것이다.
내가 스토리텔링이라는 카드만을 꺼내드는 것은, 그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 환경에서 시달렸던 경험 때문에 그 반작용으로 꺼내드는것 뿐, 나는 그 카드 하나로 대변되는 종류의 인간과는 거리가 멀다.
이래서야 도움을 받는다기 보다는 또다른 방해를 받는 것과 다를것이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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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그동안 나름의 인간관계를 경험하면서 또 한가지 한계를 발견했다.
나는 주류 성인의 사회에서 인정받을 능력과 자질이 충분한 사람이고, 산업군에서 인정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아무리 선의가 밑바탕이 되어있다지만, 이 사람들의 관점은 나를 성인의 사회, 산업군의 사회에서는 가장 멀리있는 영역으로 분류해버렸다.
(아니 그럼 내가 궂은 일 참아가며 버텼던 그 사회생활은 뭐가 되는데?)
그리고 주류의 사회, 성인의 사회, 산업군에서 인정받는것...
이것은 결코 사소한 것, 허영된 것이 아니다! 아주 중요한 것이다.
나는 인생이란 가장 많은 이득과 주도권, 안정을 통합적으로 확보할 길을 발견해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인생은 총점과 밸런스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
그 길을 찾는것은 쉽지도 빠르지도 않기에 전략이 필요하고, 자질을 발굴하는 것도 결국에는 전략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상당한 위화감을 느꼈다.
분명 이들의 태도는 마치...마치 상당한 객관성을 가지고 있는것 처럼 느껴졌는데, 대화를 하면 할수록 결국에는 어딘가에 한정된듯한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엘리트 사회 안에 있을때 느꼈던 것이 있다.
이 사람들은 경쟁과 안정이라는 가치 말고는 아무것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이 관점에 너무 시달려서 잠깐 환상을 품었다. 엘리트 사회의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더 유연하고 통합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을것이라고...
그러나 근 5년간 사회에서 경험한 바로는, 장르만 바꾼 똑같은 한계를 모든 집단의 사람들이 가지고있다는 것이다.
장르만 바꿨을 뿐, 똑같은 수준으로 치우친 것이다.
그런데 내가 느낀 위화감은 이것이 아니다.
나는 살면서 사회에는 딱 정해진 절대 기준, 절대 평균, 절대 옳음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시할 수 없는 "보편"이라는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세월을 거듭하는 동안 구축된 주류의 라이프사이클이라고나 할까....
전통사회의 사람들은 그 당시의 환경과 맞아떨어져, 이 메인 스트림 안에 있으면 모든것이 보장된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현대에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이것에 그렇게까지 많은 것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 또한 어딘가에 치우친 삶일 뿐인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함정...
그렇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누적되어 만들어진 라이프사이클에서 벗어난 삶을 사는 사람들은....
이 한계를 초월한 사람들인가?
아니, 나는 이들 또한 그냥 어딘가에 새로운 방식으로 치우친 사람들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여기서 정말 위험한것은.
얘기를 해보면 해볼 수록 어떤 위화감을 지울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 라이프 사이클에서 다소 벗어나있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메인스트림의 삶이 갖는 한계를 초월한 존재라고 보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나는 분명 리스펙한다.
모두가 의존하는 어떤 하나의 방식, 하나의 흐름으로부터 벗어나 다른 방식으로 살 방법이 있는지 직접 모색하고 나름의 삶을 구축한것.
이것은 배울점이 정말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보다 좋은, 보다 의미있는, 보다 가치있는"것인가? 라고 하면 그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이다.
하지만 내가 살면서 경험했던 사람들...
나의 학교 동창 중에도 몇명 있었다. 어딘가 부유하는 느낌이 드는 아이들이었다.
친목 모임을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
소위 1인기업, 프리랜서를 지향하는 사람들의 스터디 모임...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1. 현실적인 조직에서 만들어진 인맥 보다는 모이기 위해 모인 인맥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현실에서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인맥 또한 한계가 극명하다. 퇴사하고나면 다들 남남이 되더라는 얘기는 이미 하나의 법칙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느슨한 정보교류, 정서교류를 위해 만들어진 관계는 그럼 더 가치있고 파워가 있는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또한 상당한 한계를 가지고있다.
2. 자신이 품을 수 없는... 자신과는 다른 사람, 다른 삶에 대해 쉽게 파고들어 의미부여를 하고 진단내리려 한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그것이 본인들의 역할이고, 남들이 그것을 본인들에게 기대한다고 생각하는것 같다.
그렇다.
나는 사실 이런 스터디에도 25만원이라는 거금을 냈지만, 그것은 이 스터디와 모임장에게 나를 리드해주거나 나에 대해 진단을 내려주거나 실질적인 조언을 해주기를 기대했기 때문에 낸 돈이 아니다.
나 외의 다른 사람들이 어떤 방법을 써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관찰하고 싶었고, 나 스스로에게 자극을 주고, 나 스스로를 정리하기 위해서이다.
결국에는 전부 내가 해야하는 것들이고, 나는 그 재료가 필요했을 뿐이다.
그래서 사실은 이 스터디의 실제 값어치는 8~11만원이 적정하다고 생각하지만,
스스로를 움직이게 할 기회 자체가 지금의 나에게는 절실했기 때문에 투자를 한 것이다.
나는 이 두번의 네트워킹과 그동안의 각종 모임, 또 인간관계를 통해서 계속해서 혼란스러웠고 스스로가 남에 의해 왜곡되는 기분이 들어 불편했었다.
그래서 왜곡되지 않기 위한 여러가지 대책들과 마련하기에 급급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보니 그 방어책들이 다 무슨 소용일까?
처음부터 "인간"이라는 것의 한계를 바르게 알았다면, 각종 갈등부터 감정낭비, 혼란같은건 겪을 일도 없고 대비를 할 필요조차 없는거 아니었을까?
아무튼....
내가 알고싶은건 어디까지나 내 인생일 뿐이다.
네트워킹을 통해, 남의 조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도움에는 한계가 있다는것을 알았으니
당분간은 다른 전략을 사용해봐야겠다.
일단은 내가 생각하는 나의 지향점이 보다 '통합적인' 방향이라면, 그런 직무나 산업은 현재 보이지 않는다.
나는 산업군의 동향이 빠르게 바뀔것을 기대하며 내가 가진게 어떤건지 통합적으로 보여줄만한 작업물을 직접 만들어야겠다.
그리고 내가 가진 가장 큰 단점.
그건 완벽주의다.
나는 곧잘 실제 현실이 흘러가는 느낌이나, 실질적으로 먼저 얻어야할 정보는 생각하지도 못한채 혼자만의 목표치를 설정해버리고 에너지를 낭비해버린다. 아...이건 진짜 심각하다.
어떻게 해야 내가 지금까지 해온 경험과 내린 결론은 지지해주면서도, 그게 현실에서 쓸모없어지지 않게, 내가 불필요한 에너지를 쓰지 않게 밸런스를 맞출 수 있을까?
아....
아무래도 당장 무언가를 하겠다고 나서기 보다는
한 발 물러서서 의문이 드는 것들을 확인해보는 시간부터 가져야겠다.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