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
오늘은 결정사를 통해 매칭된 사람과 소개팅을 했다.
소개팅을 하면서 말은 잘 통하고 사람이 정말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모든 부분에서 꿇리는 게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성적인 호감을 느끼진 못했다.
이 사람은 자만추냐 맞선이냐를 뚜렷이 구분하는 사람이었고, 대화 중에는 일반적인 연애를 할 때의 심리와 결혼으로 이어질 때의 심리는 다르다고 했다. 아마 맞을거다. 나는 머리로 이해했지만 이상하게 숨이 막혔다.
아무튼간 이성적으로 끌리는지는 정말 애매했기 때문에 나는 더 연락을 하거나 어필하려고 애를 쓰진 않았다.
흐릿한 의향과 감정을 쥐어 짜내는것이 나에게는 너무 힘들다는걸 경험적으로 알고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순간 예전에 들었던 지인의 경험담이 떠올랐다.
아는 형에게 소개받은 여자와 2주째 연락을 했지만, 결국에는 호감까지 가지는 않아 잘 되지는 않았다고 했다.
-> 나는 이걸 떠올리고 생각했다.
그때는 잘 이해가 안되었는데, 지금 나의 상황이 이런건가? 내가 오늘 했던 행동과 생각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존중받아야 하는것인가?
아냐, 가만.
나는 그 다음 순간 다른게 떠올랐다. 일반적인 연애와 결혼을 하고싶은 사람들의 연애는 다른 것이라고 선을 그었던 것.
여자한테 더이상 설레지 않는다고 말하며 결정사에서 만난, 스펙이 완벽한 새언니와 일사천리로 결혼을 진행해 만족스러워하는 오빠.
-> 나는 이걸 떠올리며 또 생각했다.
내가 오늘 했던 행동과 생각은 자기 나이는 생각 안하고 피터팬마냥 아직도 애같은 소리만 하는 패배자의 생각인가?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나는 내가 감정이 중요한 사람이라고, 오빠와 엄마랑은 뭔가 다르다는걸 알게되었지만, 그렇다고 그 얘기를 들려주었던 지인과 같은 종류의 인간이라기엔 납득이 되지 않았다.
왜냐고?
그 사람은 나처럼 경쟁을 통해 원하는걸 쟁취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력이 낮고, 딱히 이뤄낸 성과가 없고, 본인의 직업에 이렇다할 고찰 같은게 없다. 이러면 아무리 현실감이 있어도 딱히 더 부유해지거나 삶이 더 달라질 일 같은건 없다. 당연한거 아닌가.
편견과 오만 같지만 어느정도는 맞는 평가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러면 남들이랑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를 따져서 나의 정체를 규명하려고 했다.
왜냐면 나는...
내가 추구하는것이 지극히 정상적이고 옳은것이라는 지지를 받고 싶었고,
나라는 사람이 이미 경쟁을 버티고 발전을 꾀할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나의 주관을 추구하더라도 나의 삶이 낮아지지 않을거라고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따져왔던 지난 세월.
일시적으로만 스스로에 대해 알게된것 같은 기분이 들었을 뿐, 어떠한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막막했고, 또다시 혼란 스럽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나는 외로움, 불만족스러움, 불안감에 평생을 시달리며 살아왔다.
나는 내가 이런 불행감에 시달리는 이유를 자기 객관화를 통해 찾아내려 했다.
왜냐면 나는 자기 객관화라는 것이 어떤 절대적인 기준과 나를 비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세상에는 절대적인 기준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나와는 다른 남들의 인격은 어떤 "평균치"에 모여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와는 다른 남들의 인격은 어떤 "승자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서로 끼리끼리 말이 통하고 공감이 된다는 것이 그 증거 아닌가?
나는 내가 외로운거, 답답하고 불만족스러운거, 불안한 것이 다 내가 평균의 사고방식에서 멀어져서, 혹은 내가 승자의 옳바른 사고방식에서 멀어져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나는 내가 자라온 환경에 대한 타인의 소감을 듣고 다른 생각이 들었다.
우리 4인 가족...
전원이 서울대.
며느리도 서울대.
일가 친척이 연대와 서울대의 조합.
우리 엄마와 오빠...
어떤 문제의 원인을 약자에게서 찾는 사람들. 실제의 원인이 무엇이 되었든 약한 사람이 잘못한 것이라는 전제가 먼저 나오는 사고방식. 힘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힘과 정의를 동일선상에 두는 사고방식....
극단.
내가 외로움과 불안감, 불만족에 시달려 왔던 이유는
내가 어떤 절대적 평균에서 먼 사람이라서, 내가 어떤 절대적 옳음에서 멀어져서가 아니라.
나와는 다른 극단적인 환경에 노출된 탓에 건강하게 만들어졌어야할 나의 주관이 혼란을 겪어서인 것 아닐까?
왜냐면 내가 있다고 생각했던 절대적인 평균, 절대적으로 옳은것은 없으니까.
그게 있었다면 나는 한 번의 객관화로 모든것을 규명했어야 했다.
그러나 내가 남과의 차이를 느끼고 그 차이를 분석할 때마다, 그 후로 또 다른 혼란들이 계속해서 나타났다.
없는거다.
옳기에 많은 것을 얻고 누린 것이 아니고,
같기에 서로서로 공감하고 얽혀 지낸 것이 아닌거다.
내가 아무한테도 공감하지 못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을 쉽게 얻지 못하는 것, 내가 끝없이 불리하다고 느끼는것은...
내가 무언가와 다르기 때문이 아닌것이다. 내가 옳지 못한 생각을 해서가 아닌 것이다.
나는 그냥 당연히 알고있어야할 스스로에 대해 잘 모른채 살아와서, 당연히 만들어졌어야할 나의 사고방식과 삶이 의심을 받아서. 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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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소개팅을 하면서 나에 대해 깨닳은게 있다.
1. 남들 눈에 나는 상당히 불안정하고 믿음이 안가는 음지의 여자로 보일 수 있겠다.
왜냐면 결혼을 할건지 말건지부터 정해놓고 사람을 사귀지 않겠다고 말하는 여자이고, 결혼을 앞둬야할 시점에 감정적인 끌림을 따지고 있으니까. 실제로 자기가 원하는 남성을 찾으려고 끝없이 탐색하고 있으니까.
2. 나는 왜 그동안 이것저것을 전부 나의 죄로 만들었던거지?
나는 그동안 뭔가 그런 세계관에 있었던거 같다. 절대적 평가자가 이 세상에는 있고 그 존재가 나의 운명을 결정하고, 그리고 그 존재는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라고.
그렇잖아.
나는 그동안 내가 택시를 타고가는 모습을 누군가 보는게 두려웠다. 왜냐면 경제관념이 없어 보이니까.
내가 택시를 타고 가는 모습을 본 상대방 남자들이 나를 보고 불안감을 느끼며 "안될 사람"으로 선을 그어버릴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른 생각이 들었다.
뭐가 부끄럽고 뭐가 두렵다는거지?
내가 택시를 타고 오가든 말든..손해는 내가 보지, 그걸 보고있는 사람이 손해를 보는게 아니잖아.
나는 왜 그동안 부끄러워하고 숨기고 싶어했던거지?
그러고보니 내가 내린 판단에 대해서도 다르게 느껴졌다.
그렇잖아.
내가 몸이 너무 힘들어서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도, 상대에게 성적으로 별로 안끌리는거 같다고 생각하는것도
그냥 다
내가 힘든거고
내가 불만족스러운거지
내가 상대방에게 죄를 지은게 아니잖아?
내가 죄값을 치를거라고 정해진게 아니잖아?
그렇게치면 그동안 나를 적극적으로 확보하지 않았던 그 수많은 남자들도 다 죄인이고 앞날이 비참해야 맞는건데...안 그렇잖아?
그렇게 치면 자기 마음이 애매해도 일단 트라이부터 하고 보는 그 남자A*가 가장 될성부른 인간이고 잘되어야하는 인간인데...아니잖아?
(예전에 나는 결정사를 통해 이상한 사람을 소개받은 적이 있다. 그 사람은 자기가 크게 마음이 없는 여자한테도 있는 힘을 다해 어필하고, 무성의하게라도 연락을 이어가려했다. 그 사람은 그게 성실한 것이라고 생각한거 같다. 왜냐면 결혼에는 감정이 중요한게 아니니까. 크게 나쁠게 없다고 생각하는 여자는 전부 확보해서 저울질 하는 전략을 택한거다.)
사실 나는 그동안 나한테 나서지 않는 남자들한테 한편으로는 감사하고(왜냐면 나한테는 거부권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한편으로는 부정하면서(왜냐면 대쉬를 받지 못한 내 가치가 낮아보이니까)...
사실은 남자A랑 똑같은 행동을 해온것 아닐까?
'엄마가 나에게 원하는 것이 이런것이니까'라는 핑계를 대면서, 사실은 그냥 그 남자랑 똑같은 짓을 해온게 아니었을까?
나는 자신의 의향이나 감정은 제쳐두고 나 외의 것에 의미부여를 하면서 힘써야하는게 책임감있는거라고 가르친 엄마의 세계관과,
가장 가치가 높은 여자, 예쁘고 매력적인 여자는 일방적인 대쉬를 받는 여자, 일방적인 숭배를 받는 여자라고 가르쳐온 세상 남자들의 세계관,
(이게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는데...여자의 가치는 본인들이 정한다는 주장이 하고싶었던거 같다. 절대 다수의 남성이라고는 못하겠지만 이런식의 얘기들이 꽤나 많은 곳에서 오갔던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이건 지금와서 보면 어떤 대단한 주의주장이 있기 보다는 해소되지 않은 어떤 욕구의 표현이었던거 같다.)
이 두가지의 세계관에 사로잡혀 농락당해온게 아닐까?
사실은 이 두 세계관 모두...
모두...
모두 억지에 불과한 얘기들인데?
내가 그동안 아무것도 아닌 억지에 놀아나온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