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날은 친오빠와 새언니가 우리 가족을 불렀다.
단순한 식사 자리인줄 알았는데 깜짝 선물이 있었다.
새언니가 임신을 했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기분이 너무 나빠져 견디기 힘들었다.
식사 자리 내내 어떻게든 참았지만, 식당에서 나와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남들이 보면 노처녀가 자기 오빠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는게 질투나서, 자기 처지가 서러워서 떼쓰는 것, 그냥 열등감이라고 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게 단순히 그런 감정이 아니라고 느꼈다.
왜냐면 지금의 나는 당장 가정을 꾸리는것 보다 내가 누리지 못했던 좋은 관계, 받지 못한 사랑을 충분히 받고싶은게 먼저이고, 또 나는 결혼하는 내 지인들을 보며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순수한 축하의 마음을 가진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 감정이 뭘까?
나는 고통받으며 눈물 흘리다가 생각했다. 나는 이 비참함에서 벗어날 힘이 없는 나를 탓하다가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고통스러운것이 내 잘못이 아닌데, 나는 그저 결핍되었을 뿐이잖아.
왜냐면 오빠는 연장자였으니까.
가족으로서 연장자의 자리라는 것은 그저 권력을 누리라고 있는 자리가 아니다.
왜냐면 연장자는 연하보다 힘이 훨씬 세고, 심지어 나는 비교적 마음 약하게 태어났잖아?
가족이라면 서로 서로 주인공이 될 수있게 정신적으로 버팀목이 되어주는게 당연한 의무이다.
왜냐면 가족이라는 작은 사회 밖의 세상은 남을 엑스트라 취급하고 자기 자신이 주인공이 되겠다고 하는 사람들 천지니까, 나의 가족 구성원이 거친 사회의 논리에 속아 자신의 것을 남에게 다 내어줘버리지 않도록 가장 중심적인 위치에서 알려줘야하는게 가족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 의무를 다하지 않았고, 특히나 약자인 나한테 거꾸로 행동했다.
본인이 줘야하는 것들이 결코 큰것이 아니었는데, 그 작은것 마저 주기 싫다고 한게 이 사람이고.
약자한테는 어떠한것도 베풀지 않고, 강자에게 모든것...모든 존중과 관심을 쏟는게 이 사람이다.
왜냐면 우리 가족은 힘의 논리로 돌아가는 가치관이 있었으니까.
왜냐면 힘이 없는 나는 많은 성취를 이루어냈으니까. 힘이 가치의 본질은 아니었다.
힘이 센 다른 가족 구성원이 대신 해준게 아니다. 내가 해낸 것이지 나의 환경이 만들어준 것이 아니다.
내 가족이 힘이 가치의 본질이 아니라는걸 나에게 알려줬다면, 내 인생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내가 훨씬 더 많은 성취를 하지 않았을까? 내가 더 바깥 세상과 많이 연결되지 않았을까? 최소한 내가 스스로를 엑스트라로, 남을 주인공으로 여기진 않지 않았을까?
이 사람은 나를 통해 연장자로서의 권력을 누렸다.
자기 마음대로 규칙을 정하고 자기가 화내고 싶을 때 화내고 내 얘기는 듣지 않고.
그렇다. 나는 이 사람한테 받아야될게 한참 남았는데,
아무것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무언가를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은 사람에게
내가 어떻게 무언가를 주겠어?
그건 빵셔틀이지.
그리고 그 잘못은 내가 아닌 오빠가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복수는…
남이 무엇이라 하든 그 논리를 듣지 않고 오로지 내 논리로 행동하는 것이다.
남이 무엇이라 느끼든 그 논리 대신 오로지 내 논리로 세상을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내 삶을 꾸려야지.
그래서 이 가족에게서 벗어날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