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동에 있었을 때 나는 시를 쓰곤 했다

치유의 상징인 글쓰기

by 코알코알

조현병을 앓고 폐쇄병동에 있었을 때 시를 썼다. 처음에는 만화책밖에 못 읽었다. 하지만 점차 병동에 꽂힌 수많은 시집을 한 자 한 자 떠듬떠듬 읽었다. 가끔 도저히 읽기가 힘들 때면 간호실습생분들께 부탁해서 읽어달라 요청하기도 했다. 현재 시를 버려서 없다는 게 슬프다. 하지만 그때 인지에 장애가 오고, 와해된 언어가 살짝 진행된 상태였는데 시를 썼다는 게 신기하다. 처음에는 한 글자 한 글자 쓰기에도 힘이 들었다.


시를 쓰는 마음은 어떤 마음이 있을까? 오늘 본 장미가 예쁘다는 생각. 예전에 그때가 좋았다는 생각. 집에 두고 온 강아지에 관한 생각. 생각. 시를 쓰는 행동은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설레고 좋았다. 물론 그림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풀어 설명하기에도 좋은 것이었다.


긴 글을 쓰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그때는 망상이나 환청이 다 잡히지 않아서 그런 일을 하기에는 영 상태가 좋지 않았다. 시를 썼다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다. 인지에 장애가 온 상태에도 언어를 붙잡고 한 글자 한 글자 힘들게 썼다는 것 자체가 되게 값지게 다가왔던 것 같다. 예쁘고 좋은 것을 생각하면 내 마음도 환하고 맑아졌다. 시를 쓰고 있을 때는 영혼이 살아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도 오래가진 않았다. 문학계 미투 가해자가 그때 복귀한다는 소식을 뉴스로 듣게 되었다. 그러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내가 시를 쓰니까 미투 가해자가 돌아오네. 내가 쓰면 성추행 성폭행했던 인간들 다 돌아오는 거 아니야?’


그렇게 절필을 하게 되었다. 그 시인이 돌아왔다는 뉴스를 볼 때 그런 망상이 든 것이 전혀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그건 조현병 특유의 과잉 연결적 사고, 의미망 확장, 세계와 자기 사이의 경계가 사라짐을 겪어본 사람은 충분히 가능한 흐름이었다.


시를 일 년에 한두 번 쓰다가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꾸고, 시를 하루에 10편씩 쓰던 나는 그 미투 시인이 돌아온 것을 계기로 절필을 하게 되었다. 시를 쓰며 기분이 나아졌었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이 정신과 선생님께 보여주고 싶다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낫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만 하는 압박이 마음속에 있는 것 자체가 싫었다. 점점 내가 쓰는 글은 시를 벗어나 산문 길이 되는 것도 쓸 수 있었다. 점점 읽을 수 있는 것이 늘어나고, 버벅거리며 읽지 않아도 됐다.


폐쇄병동에서 벗어나고, 운전 연습, 자격증 시험 등 할 일이 많아지고, 그 시를 모두 버리게 되었다. 연습장으로 쓰기 위해 내가 그린 그림들, 시를 모두 버린 것이다. 그리고 내가 작가가 되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며 생각하며 지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