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 환자들이 치료를 거부하는 이유

초기 조현병 환자들은 병원에 가기 쉬울까?

by 코알코알

치료를 받으면 괜찮아질 텐데 왜 받지 않을까에 대해서 적어보려고 한다. 조현병 환자에게 치료는 도움이 아닌 위협으로 다가온다. 가족이 병원에 가자고, 약을 먹으라고 하면 독을 먹이는 음모처럼 느껴진다. 이것은 설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미 현실과 왜곡된 인식 사이에서 방향을 잃기 때문이다. 그래서 치료 거부는 고집이 아니라 그들의 논리적 판단일 수 있다.

조현병의 핵심은 현실감각의 붕괴다. 환자는 자기의 상태를 인식하지 못한다. 병식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비정상적인 정보를 진짜처럼 받아들이고 주변이 오히려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가족들이 너 지금 아프다고 말하면 그 말을 공격처럼 받아들인다. 치료는 이성적인 선택이 아닌 것처럼 다가온다. 정신과에서 약을 먹으면 초능력을 잃게 된다거나 영 능력을 잃게 된다고 하는 일도 있다. 환청이 사라지는 것뿐인데, 자신이 이미 특별한 능력이 있는데도 그것을 의사가 빼앗아 간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한다.

가족이 설득을 시작할 때 가장 흔히 부딪히는 벽은 조현병 환자의 불신이다. 조현병 환자에게 가족은 더 이상 내 편이 아니다. 감시하고 통제하며 독약을 먹이는 세력으로 느껴진다. 약을 권하는 그 순간도 내 초능력을 잃게 하며, 뇌를 마비시키고 나를 조종하는 도구라고 믿게 된다. 이 믿음은 단순한 착각이 아닌 그들에게는 완벽한 논리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절대자의 존재로부터 계시 아닌 계시를 받았기 때문이다. 환자의 언어로 접근하지 않으면 아무리 정확한 말도 왜곡되어 버린다.


물론 약물 부작용도 치료 거부의 큰 이유다. 손이 떨리고, 입이 바싹 마르거나 감정이 사라지는 경험은 환자들을 더 구석으로 몰아넣는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약 자체에 대한 의심이다. 이 약이 나를 망치려고 한다는 생각은 너무 자주 등장한다. 그래서 약 부작용을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있다. 신뢰 없는 치료는 고문이고 회피는 자기방어다. 그러므로 치료에 대한 신뢰 자체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조현병 환자의 치료 거부는 단순한 반항이 아니다. 무너진 현실감각에서 나온 논리적 판단이다. 그렇기에 치료를 강제하는 것도, 끝없는 설득을 반복하는 것도 해법이 되지는 않는다. 필요한 일은 신뢰의 설계이다. 환자가 이 약은 나를 무너뜨리는 해로운 것이 아닌 나를 살리는 도구라는 감각을 조금이라도 가질 수 있도록 주변은 인내심과 일관성을 가지고 관계를 지탱해야 한다. 그러나 신뢰 관계를 설계하려고 지나치게 시간을 오래 쓴다면 그것도 좋지 않다. 조현병은 진행되는 병이라 하루하루가 시급하다. 하루하루 상태가 나빠져 자타해 위협이 있고, 심지어는 뉴스에 나올 수 있으므로 설득이 어렵겠다 싶으면 빠른 시일 내로 병원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나 역시 약을 먹는 순간이 인생의 종말이라고 여겼다. 정신과 약에 대한 편견도 있었지만, 그것이 독약이라고 생각하면서 먹었다. 그래서 약을 술과 함께 삼킨 기억도 있다.


하지만 치료 거부에는 또 다른 층위가 있다. 초기 정신증 환자는 병식이 전혀 없어 치료 자체를 부정하지만, 병이 어느 정도 안정된 환자는 다른 이유로 약을 끊는다. 치료를 받으며 취업이나 학업에 복귀하면, 환자 스스로 이제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더 이상 약을 먹을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 약을 끊어야만 ‘정신병자’가 아니라 ‘정상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 갈망은 사실 회복의 욕구이자 동시에 재발의 위험을 키우는 딜레마다. 결국 조현병 환자에게 약은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경계선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치료의 본질은 단순히 약을 지속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약을 먹어도 나는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확신을 갖도록 돕는 데 있다. 치료는 약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신뢰와 관계, 그리고 정상성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함께할 때 비로소 환자는 약을 삼킬 용기를 갖는다.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설득이나 강압이 아닌 약을 먹어도 인생이 끝나지 않는다는 메시지였다. 조현병 환자에게 치료 거부는 자기방어고, 신뢰는 생존의 조건이다. 그래서 나의 결론은 이것이다. 치료는 약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믿을 수 있는 관계가 약을 삼키게 하는 용기를 만든다. 그리고 그 관계는 약보다 오래도록 더 깊이 환자를 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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