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함을 증명하지 않기로 했다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직업재활 상담을 받았을 때, 나는 처음으로 장애인 등록이라는 선택지와 마주했다. 상담사는 “정신장애인으로 등록하면 대기업 취업 연계가 가능하다”고 설명했고, 등록하지 않으면 공장 같은 현장에서 일해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 순간 나는 단순히 제도적 혜택을 넘어, 장애 등록이 나의 삶과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할지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결론만을 말하면 나는 비장애인으로 살기로 했다. 장애인 딱지가 싫어서라거나 그런 이유는 아니다. 나는 비장애인으로 사는 것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비장애인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장애인증이 있으면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 편하겠다고. 조현병 환자다는 말은 무섭지만, 정신장애인이라는 말은 덜 무섭다. 우울증이나 조울증 같은 사람들이 그 범주 안에 있으니까, 그들이 나를 희석해 주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현실은 복잡했다. 불법은 아니지만, 멀쩡한데도 장애인으로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글을 커뮤니티에서 본 적이 있다. 조현병이 아닌데도 그걸 연기하면서 장애인이 되고 싶어서라는 이유를 내세우는 경우였다. 실제로 조현병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대부분은 장애 등록을 목적으로 했다.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더 쉽게 들어가기 위해서, 혹은 장애 수당을 받기 위해서 말이다.
나 자신도 만약 장애 등록을 한다면, 아마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하는 데 드는 에너지를 아끼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클 것이다. 장애인이면 이미 결함이 있다는 전제가 있으니, 내가 내 결함을 드러내더라도 잘리지 않고, 생계의 위협을 느끼지 않고, 관계를 맺을 때 이미 나는 아픈 사람임을 사람들이 알고 시작하니까. 그것은 분명 편안한 지점이었다.
아빠도 그냥 장애인 등록을 하라고 했다. 왜냐면 아빠는 내가 잘되기를 원했으니까. 반면 엄마는 절대 하지 말라고 했다. 엄마는 장애 관련 일을 하시는 분이고, 언어장애 센터 원장님이다. 그래서 누구보다 장애인 차별의 현실을 가까이에서 보셨다. 그렇기에 엄마는 내가 그 무게를 지지 않기를 바라셨다. 아빠는 보호하려 했고, 엄마는 지키려 했다.
하지만 나는 결국 포기했다. 장애 등록을 받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병원 진단, 서류 준비, 행정 절차 등 단순히 귀찮다는 게 아니라, 그 과정은 나의 아픔을 반복해서 증명해야 하는 과정이었다. 그 무게를 나는 감당할 수 없었다.
고민은 많았지만, 결국 나는 등록을 하지 않기로 했다. 많은 이들이 안정과 혜택을 위해 장애등록을 선택하지만, 나는 제도보다 내 마음을 지키는 길을 택했다. 아빠의 보호와 엄마의 지킴 사이에서, 나는 주체적인 선택을 했다. 장애 등록은 혜택보다 과정이 더 버겁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지금의 나는 안전망을 거부한 대가로 여전히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지만, 최소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를 스스로 선택했다는 사실에서 안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