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습은 다르지만 모두 친구가 되는 곳
나는 이전에 친구들과 교류가 없었다. 병 이전에는 평범한 인간관계도 허덕허덕하는 나였기에 그냥 인간관계를 포기한 채로 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폐쇄병동에 입원하게 되고 달라졌다. 그때는 몰랐다. 폐쇄병동 입원이 몇 주가 될지 몰라서 거의 살다시피 짐을 꾸리고 갔다. 모두가 보따리를 싸서 병동에 갔는데 거기에서는 할 일이 없어 다들 심심해하며 삶을 살았다. 나는 솔로에서도 고립시켜 놓으니, 전우애가 피어난 것처럼 순박한 사람들끼리 짝을 지어 놀았다. 폐쇄병동에 가니 서로의 결핍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울증부터 조울증, 그리고 나와 같은 조현병 환자도 있었다. 거기에서는 편지지도 없어 노트를 뜯어 편지를 쓰곤 했다. 근사한 것은 없지만 모두의 뜨거운 마음을 받을 수 있었다. 순박한 사람들이 조금 느리게 가는 환경에서 서로를 도우며 살아가는 모습이 뜨거웠다.
폐쇄병동에는 각자의 아픔이 있다. 세상의 기준에 맞추려 살을 빼려고 밥을 먹지 않다가 온 친구도 있고, 사람들이 괴롭혀 우울증이 온 사람도 있다. 우울한데 이유를 알지 못하는 친구도 왔다. 조현병이 심해져서 오기도 하고,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서 오시는 분도 있다. 각자의 사연들을 자세히 적지는 못 하지만 그분들과 편지를 나누고 연락처도 교환하며 우리는 교감을 나누었다. 연락이 지금은 잘되지 않지만, 연락이 되지 않아도 좋다. 잘사는 증거기도 하니까. 연락이 없는 것이 우리가 치열한 삶을 살아간다는 증거여서 우리는 서로를 응원해 준다.
우리는 병동 밖에서도 연락하고 안부를 묻는다. 가끔 만나기도 했다. 우리는 사는 곳이 다르지만 만나고 싶으면 만나러 간다. 조울증 친구는 하루는 하늘을 날 듯이 행복하다가 하루는 무너지기도 한다. 우울증 친구는 나보다 더 깊은 고통을 지닌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환청과 환각 환후 등을 경험하고 결코 낫지 못한다. 서로 병이 달라도 결국은 살기 힘들다는 공통의 언어로 이어지고 연결된다. 세상에서는 내보일 수 없는 약점을 우리는 공유하고 나누었다. 병을 공유하는 친구들과는 한 시간 통화도 하고 내가 글을 쓴다는 사실도 알렸다. 정상이라 불리는 사람들에게는 남자 친구를 제외하고 글을 쓴다는 사실을 도저히 알릴 수 없다. 모순이지만, 이때야말로 가장 인간적이고 진실한 교류가 생긴다.
이 사람들이 어디서 지내든 어떻게 살기로 하든 응원하고 싶다. 내가 병동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를 쓴다면 거장이 쓰듯 38번 퇴고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 그만큼 그 사람들이 잘 되었으면 좋겠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 특히 결말이 좋았으면 한다. 다시는 입원하지 말고 보란 듯이 살았으면 좋겠다. 직장에 들어가서도 학교에 들어가서도 재미있게 즐기며 살고 와인처럼 삶을 음미하기를 바란다. 내 환청 이야기를 들어준 친구는 특히 잘 살았으면 한다. 내 브런치스토리를 잘 봤다고 이야기해 준 친구는 지금 재수하고 있는데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으면 하고 빌고 또 빌어본다.
폐쇄병동에서 나온 뒤에도 여전히 세상에서는 서툴렀다. 병동 안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서투름이 밖에서는 금세 벽에 부딪혔다. 밖에서는 병을 감추며 사람들을 만나야만 했다. 알바를 할 때에도, 학교에 다닐 때도, 동아리를 할 때에도 눈치를 보면서 의젓한 사람인 척을 했다. 하지만 병동 친구들은 조금 다르다. 오늘 약을 안 먹었더니 증상이 올라오나보다고 이야기해도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약을 거르면 안 된다는 말은 있어도 거기에는 동정도 이상한 호기심도 없다. 그저 서로의 말은 곧 이해였다.
우리는 각자의 병 때문에 사회에서는 결핍으로 보였지만, 서로 사이에서는 오히려 그 결핍이 다리가 되었다. 우울한 날엔 전화기를 붙잡고 한 시간을 떠들다가, 며칠간 연락이 끊기는 게 우리 방식이다. 연락이 없으면 ‘아, 그래도 아직 버티고 있구나’ 하고 안도했다. 정상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약속에 늦으면 원망하지만, 우리는 약속이 무산되면 그냥 서로의 고단함을 알았다. 이런 유연함이야말로 진짜 이해일지도 모른다.
가끔 생각한다. 만약 내가 병동에 가지 않았다면, 내 삶에 친구라는 단어가 있었을까. 병 전에는 인간관계를 포기한 채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살았다. 그런데 병을 겪고, 병동에 갇히고 나서야 나는 친구를 얻었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병은 내 자유를 빼앗았지만, 동시에 친구를 안겨주었다. 사람들은 병이 사람을 무너뜨린다고만 생각하지만, 나에게는 오히려 관계를 시작하게 만든 계기이기도 했다.
이제 나는 그 친구들을 멀리서라도 응원한다. 언젠가 다시 병동에 갈 수도 있다. 우리 중 누구는 또다시 입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다. 나는 안다. 병동에서 만난 우정은 병을 넘어서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그들이 삶을 음미하며 웃을 수 있기를 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 모두 병동이 아닌, 더 넓고 자유로운 자리에서 다시 만나길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