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편견, 그 사이에서
엄마는 내가 조현병을 앓자마자 크고 두꺼운 책 한 권을 사왔다. 무려 페이지가 5-600장에 달하는 두껍고 큰 책은 평소 독서를 안 하는 엄마에게는 굉장히 큰 결심이었다. 그 두꺼운 책에 형광펜과 볼펜으로 밑줄을 쫙쫙 그어서 읽고 모퉁이가 접혀 있는 책의 모습으로 보건대, 엄마의 조현병의 학구열은 엄청났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밑줄이 여러 겹으로 되어있는 부분은 “조현병은 만성적인 질병이다”라고 쓰여 있는 문장이었다. 이걸 읽고 어떤 마음이었을지, 감히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조현병은 나에게 닥친 일이었지만 가족들, 특히 엄마에게는 큰 재난이었음을 알 수 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나도 마음 한켠이 아려온다.
내가 조현병 진단을 받은 그때, 기행을 일삼았던 그때 가족들은 분주해졌다. 엄마는 엄마대로 근사한 요리를 하루 세 끼, 아니 네 끼를 챙겨 먹였다. 그리고 아빠는 내가 아프자마자 휴가를 썼다. 내 동생은 내 동생대로 나에게 마음을 써주었다. 바로 교회에 데려가려고 했다. 동생은 독실한 신자였다. 지금은 개인적인 사건으로 교제에서 떨어져 나갔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있다고 믿는 마음은 진짜였다. 나는 그 당시 환청에 시달려서 교회에 갈 수 없었지만 그 마음에 감사한다. 병이 있는 지금은 신앙이 간절해져서 교회에 간다. 외할머니도 나의 소식을 듣고 먼 걸음을 해주셨다. 화순까지 오는 길이 힘들었을 텐데, 헤매었을 텐데. 이런 사랑들은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찡하다.
우리는 누군가의 사랑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이 애인과 나누는 사랑이든, 친구와 나누는 사랑이든, 가족과 나누는 사랑이든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정말 작은 존재이기 때문에 그리고 여리고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는 누군가에게 기대며 살아간다. 우리 인생에서 사랑이 전부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우리는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누군가의 결핍은 때로는 사랑을 확인하는 가장 큰 사건이기도 하다. 내가 조현병이 걸리지 않았다면, 세상이 나를 사랑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을까? 조현병 환자들이 나와 같이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까? 더 나아가서 병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그저 약하고 무력한 개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까? 나는 확실하게 답할 수 있다. 아니, 나는 몰랐을 것이다.
애인이 내가 조현병이 있어도 받아준 사실은 사랑이다. 여전히 내가 가족들의 딸로, 누나로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사랑이다. 누군가가 나의 병을 배우려 형광펜을 써서 책에 북북 줄을 긋는다면 그것 또한 사랑이다.
어떤 사람은 조현병 환자는 폐쇄병동에 갇혀서 평생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서슴없이 인터넷에 써서 올린다. 어떤 이는 조현병은 통제 불능한 광인들만 있는 병이니 자신과는 친구를 또는 연인은 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정신과 의사들은 조현병 환자를 당뇨 환자, 고혈압 환자와 비슷하다고 한다. 당뇨 환자나 고혈압 환자들이 당뇨나 고혈압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듯이 조현병 환자도 그렇다. 나의 경우는 증상 관리를 하고 있고 약을 먹는 동안 재발한 적은 없다.
조현병 환자를 무너뜨리는 건 병 자체보다도 편견이다. 하지만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사랑이다. 사랑은 편견을 녹이고 환자가 아닌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는 가장 확실한 힘이다. 편견은 나를 환자라는 굴레에 가두려 했지만, 사랑은 그 굴레를 부수었다. 결국 나를 구한 것은 진단서가 아닌 시선이었고 편견이 아니라 사랑이었다. 가족에게 받은 사랑은 나를 살렸다. 그 사랑은 편견을 넘어섰다. 이제 나는 믿는다. 사랑이 있을 때 우리는 더 이상 환자가 아닌 평범한 이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