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디는 삶, 캐모마일

역경에 굴하지 않는 강인함

by 코알코알

올해에만 병원비가 100만 원이 나왔다. 조현병이 악화되지는 않았지만, 이게 최선이었던 것일까 계속해서 생각이 들었다. 올해 편입을 준비하며, 졸업과 편입과 생활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이 모든 과정에서 빚이 많이 늘었다. 집세와 생활비, 어학성적 준비 비용이 계속해서 쌓였고, 내 선택 때문에 생긴 빚이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마음을 아프게 찔렀다.


다이어트와 졸업, 편입,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를 동시에 고민하는 것은 내게 너무 벅찬 고민이었다. 살을 빼지 않으면 염증이 계속 나타났고, 혈뇨와 농뇨 등이 나타나는 것도 건강에 무리가 간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돈이 없으면 치료도, 운동도, 생활 자체도 멈출 수 있다는 불안감에 너무 고통스러웠다.


삶을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삶을 더 이어 나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 생각이 머리를 스칠 때마다 나는 샤워를 했다. 뜨거운 물이 나를 세차게 때리고, 나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거품을 내지도 않았고, 머리를 축 늘어뜨리기만 한 채로 그저 세찬 샤워 줄기를 맞기만 했다.


지금은 집 문제로 또 씨름 중이다. 집주인이 집을 빨리 비우라는 요구에 1월까지만 살 수 없겠냐고 말했다. 여기만큼 싼 곳이 없으나 재계약 할 생각은 없었다. 곰팡이와 결로는 나를 정말 괴롭게 했다. 보증금 문제로 상당량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니 너무 부담스러웠다. 실제로 감당해야 하는 비용은 더 늘어난 셈이다. 게다가 집주인은 보증금을 빼려고 드릉드릉 시동을 걸고 있다. 계속해서 감정에 호소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나를 힘들게 한다.


생계를 위해 나는 공장에 들어갈 것인지, 아니면 카페 점장을 할 것인지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지금 현재를 희생한다는 생각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평생을 이렇게 힘들게 살지는 않을 테니까. 그냥 내가 한 선택의 결과를 책임지고, 학자금과 생활비 대출을 빠르게 갚는 것이 답이라는 생각이 든다.


선택의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도 책임을 안 져준다. 내 선택이었으니까. 부모님도 감당하기 어려운 빚이고, 부모님도 정년을 준비해야 하는데 더 감당하게 둘 수는 없다. 사치를 부리지 않았어도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래도 지피티와 말해보니 6개월 정도면 다 갚을 수 있는 양이라고 정확히 진단해 주었다.


시간과 체력이 안 될까봐 두렵지만, 최대한 버텨보려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왜 비싼 집이 좋은 집이 많은데 나는 왜 거기에 누울 자리조차 허락되지 않는 건지. 그렇다면 내가 허투루 살았는지 그냥 요새 너무 현타온다, 슬프다. 왜 좋은 면접 자리에서는 나를 밀어내고, 사람 갈려 나가는 곳에서만 사람 못 구해서 안달인 건지 정말 모르겠다. 불안정이라는 꼬리표가 나를 유령처럼 따라다닌다.


근데 다들 마찬가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나만 힘든게 아니지. 다들 요새 집 구하기 힘들고, 안정적인 직장 얻기도 힘들고, 알바에서도 경력을 먼저 보고, 대학 나오면 빚은 필수로 있는 느낌이다.


삶은 흔들리는 모닥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장작을 넣어야 살 수 있고, 바람에 흔들리고, 때로는 비가 와서 작아지기도 하고, 그럼에도 계속 살아야 하고. (왜?)


이런 경험들 사회초년생에게 전부 있는 일일까? 안정되고 싶고, 돈도 많이 벌고 싶고, 등 따시게 누울 수 있는 월세 집 하나 있고 싶다는 것이 그냥 사치인 걸까?


지금은 영원히 이 상태에 머무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만 위로가 된다. 이 빚이 남이 준 상처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결과라 뼈 아프지만 영원히 이 상태로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약해질 때 탄생화를 떠올린다. 역경에 굴하지 않는 강인함, 캐모마일을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대다수는 조용한 불행 위에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