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의 나를 돌아보기
* 이 글은 극히 개인적인 의견일 뿐 모든 문화와 사람들의 생각을 반영하지 않습니다.
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게임을 하고 치열한 수 싸움과 머리싸움으로 누군가 이기고 누군가 탈락하는 프로그램이 재밌다. 나 자신이 게임을 좋아하지 않고, 정해진 시간과 압박 안에서 경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대리 만족으로 더 즐겨 보는 것도 같다.
그런 프로그램은 그냥 즐겨야 하는데, 참가자 중에 외국인이 있으면, 감정 이입이 되어 보기가 힘들다. 한국 말이 서툴러 자신의 주장을 과감히 펼치지 못하고, 같이 게임하는 플레이어들이 팀원으로 받아주기 꺼린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웨이브에서 했던 '피의 게임'이나 넷플릭스 '데블즈 플랜 시즌2'에 외국인 참가자가 있었다. 전자는 일본인이었고 (순수 일본인), 후자는 미국인 (한국계)이었다. 그 플레이어들을 보고 있으면, 캐나다 대학교 수업이 생각난다.
수업 시간 발표 과제가 있었다. 교수가 그룹을 정해 주면, 거기에 따라 팀원이 정해지면 좋지만, 어떤 교수는 각자 팀원을 정해서 발표하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나같이 영어에 서툰 이민자는 팀원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겨우 겨우 중국, 일본, 이란 같은 비영어권 이민자와 한 팀이 된다. 발표로 한 학기 학점이 달라질 수도 있는데 나라도 영어가 유창한 팀원과 작업하고 싶을 것 같다.
내가 들었던 수업 중 한 교수는 발표 점수를 반 학생 전부가 채점하고, 또 조에 속한 조원들이 다른 조원을 채점하게 했다. 총 20점 만점에 교수가 10점, 조원 제외 학생 점수 5점 (이 점수는 팀별 점수로 모든 팀원이 동일한 점수를 받는다), 조원 별로 각자 조원에게 점수 5점을 주는 것이다. 보통 대부분 팀원들 간 5점 만점을 준다. 같은 편이니까 5점을 주는 거다. 하지만, 내가 받은 팀원 점수는 4명 중 2명이 4점을 주었다. 물론,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부족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 이 점수에 너무 슬펐다. 적어도 같이 공동 작업을 한 팀원에게서는 만점을 받고 싶었으니까.... 웨이브 피의 게임에서 일본인 출연자가 수학 문제에 정답에 다가갔는데도, 다른 출연자는 그의 말은 무시했다. 귀를 기울이려고도 하지 않았다. 급기야 네가 탈락해야 한다고 까지 말하는 언어폭력까지도 가한다. 한국말이 서툴다고 전 세계 공통인 산수와 수학까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건 편견이고 이것이 차별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캐나다 대학에서 발표 점수나 영어 작문 점수는 낮을지 몰라도 수학, 생화학, 화학 등의 성적은 캐나다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보다 월등히 높았다.
캐나다 수업은 한 학기 동안 그룹을 만들어 교수가 조원 별 토론을 통한 수업 진행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 당시 조원 중에 미국에서 온 학생 (미국인은 이중 국적이 인정되기 때문에 캐나다 국적을 갖는걸 마치 운전면허증 딴 것처럼 여긴다. 그리고 국경도 가깝기 때문에 캐나다 국적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어릴 적 캐나다로 이주한 한국계 캐나다인 조안 (한국어를 말하지 못한다. 느낌상 말은 못 해도 한국어가 들리는 것 같기는 했다), 비영어권 이민자, 그리고 나 이렇게 네 사람이 한 팀이었다. 처음엔 몰랐지만, 이 미국에서 온 학생이 오로지 조안 하고만 대화를 했다. 다른 학생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이야기를 해도 못 들은 것처럼 행동했다. 다른 수업을 듣는 한국인 언니도 나와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서도 영어권 학생들과만 대화를 한다고... 조안이 말하면 듣고 이야기하고... 이 학생의 무시 행동에 화가 치밀었지만, 조안에게도 화가 났다. 마음속으로 '너는 네 부모님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이렇게 무시당하는데도 이 애랑 이야기가 하고 싶냐?'라고...
데블즈 플랜에서 미국에서 온 저스틴이 연합하자고 했을 때 안 할 것처럼 하더니, 다른 플레이어와는 저스틴이 제안한 방식으로 연합하는 것에 화가 났다. 그래도 저스틴이 살아남기에 계속 저스틴을 응원했다. 하지만, 다수를 이길 수는 없었다. 역전을 기대했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가장 감정 이입이 되어 화가 났던 건 규현이 세돌과 저스틴은 그들이 도와달라고 팀원 하자고도 한 적이 없어서 자기가 도와주지 않은 것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합숙 생활 동안 팀원 간의 어떤 끈끈한 관계가 형성되었는지 모르지만, 요구한 적 없으니 도와지주 않는다라고 하지 말고 차라리 '내가 좋아하는 사람 도와줄래'라고 했다면, 규현에 대한 이미지가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마지막까지도 본인이 무슨 정의로운 용사로 퇴장하는 듯한 인터뷰에 그에 대한 나의 이미지는 더욱 나빠졌다.
그때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들은 체도 않던 그 미국 여자아이가 생각난다. 그 학생도 너 왜 내가 이야기하면 못 들은 척했어?라고 물으면, "네가 한 번도 나하고 이야기하자고 한 적 없잖아"라고 하겠지... 아니면 '너의 영어 발음이 이상해서 알아들을 수 없었다'라고 하던가
상상 속에서 그 서바이벌에 참가했던, 몇몇 플레이어들을 외국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시켜서 언어가 다른 사람이 겪는 차별과 고통을 한 번 경험하게 하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