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무력한 사내가 되기 위해 나는
얼금뱅이었다
세상에 한 여성조차 나를 돌아보지는 않는다
나의 나태는 안심이다
양팔을 자르고 나의 직무를 회피한다
이제는 나에게 일을 하라는 자는 없다
내가 무서워하는 지배자는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역사는 무거운 짐이다
세상에 대한 사표 쓰기란 더욱 무거운 짐이다
나는 나의 문자들을 가둬버렸다
도서관에서 온 소환장을 이제 난 읽지 못한다
나는 이젠 세상에 맞지 않는 옷이다
봉분보다도 나의 의무는 적다
나에게 그 무엇을 이해해야 하는 고통은 완전히
사그라져버렸다
나는 아무때문도 보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무것에게도 또한 보이지
않을 게다
처음으로 나는 완전히 비겁해지기에 성공한
셈이다
- 이상 , 《이상시집》, 스타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