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바람 부는 겨울저녁 휘영청 밝은 달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얼굴로 홀로 힘겹게 걸어가는 사람을 비춥니다. 그래도 그 밝은 달빛에 위로를 받으니 마음이 잠시 환해집니다.
병실에서 어떤 할머니를 만났어요. 허리를 다친 후로 걷지도 못하고 계속 누워서 지낼 수 밖에 없는 처지라 마음이 너무 아픈지 살고 싶지 않다며 간병인에게 계속 의사와 간호사 좀 불러달라고, 안락사 주사를 놔달라고 하십니다. 할머니에게 다가갔더니 외롭다고 자기 손을 잡아달라 하네요. 할머니의 얼굴은 달처럼 하얗고 동그란 얼굴에 피부도 매끈하고 좋아 보이십니다. 한참 동안 손을 잡고 얘기를 나누었는데 딸이 마흔일곱에 먼저 하늘나라에 갔다고, 죽으면 천국에서 딸을 만날 수 있을 테니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하셨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너무 슬퍼 울어버렸죠. 눈물이 그치지 않았어요. 지금껏 참았던 눈물이 다 나온 듯해요. 할머니도 눈물을 글썽이며 내게 울지 말라고 울면 자기 마음이 더 아프다고 하셨어요.
그때 난 울고 싶은 현실에 그 슬픔을 꾹꾹 누르며 참고 있었는지 몰라요. 갑자기 할머니의 딸 얘기를 듣는 순간 눈물버튼이 눌러져 버린 거죠.
내가 손잡아 준 걸 잊지 않겠다고 하시며 나를 축복해 주셨어요. 깊은 우울과 자신의 외롭고 힘든 날들에 슬퍼하시던 그 할머니는 침대에 누운 채로 다음날 요양원으로 떠나셨어요. 남은 날들 좋은 기억만 생각하며 편하게 지내시다가 언젠가 딸이 기다리고 있는 그곳으로 가서 더 행복하시길 바라요.
다른 환자 한 분은 병문안을 자주 오는 자식들에게 매일 고맙고 감사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정말 쉼 없이 하십니다. 같은 병을 앓고 있어도 누군가는 끊임없이 감사의 말을 하고, 누군가는 끊임없이 불평불만을 하며 24시간 곁에서 간병하는 자식에게 퉁명스러운 눈빛과 가시 돋친 말로 상처를 줍니다.
친구들과 다정한 목소리로 안부를 묻고, 자신의 동생들과 아들들이 문병 오면 웃음 띈 얼굴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즐거워하다 그들이 떠나면 표정과 말투가 차갑게 변합니다. 세상엔 그렇게 자기 맘에 안 들면 자신을 돌보는 사람의 마음을 서운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같은 병실의 같은 처지의 가족 간병인들에게 서로 위로를 주고받습니다. 온갖 병시중 옆에서 다 들어주며 돌보는 딸에게 왜 저렇게 화를 내냐고 합니다.
아픈 사람이 불쌍해서 매일 울며 간병하는 것보단 마음의 상처는 남더라도 내게 모질게 대하는 사람을 바라보며 무감각한 게 더 나은 건지도 모른다며 애써 자기 위안을 해봅니다.
지난해 연말부터 병원에서 끝이 없을 것 같은 마음의 고통으로 힘들어하다 집으로 돌아오니 지금 느끼는 이 여유와 행복에 그저 감사한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