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빔

추석엔 새 옷이지

by 지락

유난히 길었던 추석 연휴였다. 차례를 지내러 강원도를 오가는 길에는 어느 해 보다 많은 차량이 지나다녔다. 차례를 위해 이동하는 사람들보다 동해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을 거라는 짐작은 어렵지 않았다. 명절 풍속이 많이 변했다. 가까운 이웃에도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는 가족여행을 떠나는 젊은 부부가 많았다. 어린아이 손을 잡고 차에 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저 아이의 추석과 나의 어린 시절 추석은 흘러온 시간만큼 사뭇 다른 의미로 남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추석 풍경을 찾아 시간을 거슬러 가다가 자꾸만 흐릿해져 가는 기억의 끝을 잡으며 잠시 먹먹해졌다.

나의 추석은 여행이 아니라 추석빔이었다. 가난했던 시절, 새 옷을 입을 수 있는 날이 그리 많지 않았다. 한 번 사면 키가 클 것을 고려하여 엄마는 손바느질로 바짓단을 접고 소매를 올렸다. 해가 바뀌어 그 옷을 입어야 할 계절이 오면 길어진 팔 만큼 소매를 내리고 바짓단을 수선해서 입었다. 옷이 좀 작고 짧아서 불편해도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것이라 여겼다. 이러한 불편을 한 번에 잊게 하는 것이 추석을 맞이해서 새로 장만하는 옷, 바로 추석빔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추석이 다가오던 즈음 엄마와 장보기에 나섰다. 죽도시장으로 가는 길은 신명이 절로 났다. 시장은 물건을 팔기 위해 호객하는 상인과 차례상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혼잡하고 소란스러웠지만 내 심장은 오히려 더 크게 쿵덕거리며 나를 들뜨게 했다. 추석 장은 여느 때보다 복잡했다. 나는 사람들 사이를 뚫고 나가는 엄마를 놓치지 않으려고 새 옷을 향한 나의 욕망을 실어, 있는 힘껏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잡았다.

아동복 가게에 도착했다. 엄마는 벽에 걸쳐진 이 옷, 저 옷을 내려 입혀보고 벗기고 다시 입히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나는 엄마의 옷 고르기가 지나치다 싶어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게 대수인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드디어 삼 남매의 옷이 결정되었다. 나는 짙은 푸른색의 바지와 같은 색의 차이나 칼라 상의 한 벌이었다. 남동생은 니트 티셔츠에 줄무늬 바지, 여동생은 은색실 스티치로 꾸며진 빨강 조끼와 바지였다. 나는 양손의 짐이 무거웠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세상 부러운 것이 없었다.

추석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이불을 정리하고 세수했다. 얼른 옷을 갈아입었다. 빨리 집 밖으로 나가고 싶어 조바심이 났다. 전과 나물로 아침 식사를 급히 마치고 동네로 나와 어슬렁거렸다. 우리 집은 아버지가 실향민이어서 차례를 지내러 갈 데가 없었다. 또 맏이가 아닌 탓에 차례를 지내지 않았다. 친구들은 사정이 달랐다. 차례를 지내고 있거나 친척 집에 가고 없었다. 그 시각에 나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도 기분 좋게 이리저리 휘젓고 다녔다. 그러다가 한 명의 친구라도 만나면 몸을 이리저리 돌려 보이며 추석빔을 자랑했다. 새것이 주는 최고의 행복을 누렸다.

엄마는 옷을 사주는 것으로 끝내지 않았다. 며칠 후 삼 남매를 데리고 송도해수욕장으로 나갔다, 집에 카메라가 흔치 않았던 당시에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사진 찍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진사가 있었다. 모래사장에 철탑처럼 세워진 망루 기단에 우릴 세워 놓고 사진사를 불러와 사진을 찍었다. 망루는 물놀이하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해변의 모래사장에 세워졌지만 동시에 포항 송도의 상징과도 같았다. 엄마는 우리가 송도에 살았던 흔적을 망루 앞 사진으로 남기고 몇 달 뒤 포항을 떠나 이사했다.

추석사진.JPG

흑백사진은 엄마가 가장 소중하게 간직했던 애착 사진이었다. 삼 남매가 함께 찍은 유일한 어린 시절 사진이기도 했다. 우리는 성장해서 각자의 업과 가정을 이루며 흩어져 살고 있었지만, 엄마는 이 사진을 곁에 둠으로써 평생 우리와 함께 살았다. 사진 속에 시절의 곤궁함 따위는 없었다. 이발소에서 머리를 단정하게 자르고 추석빔을 차려입은 아이들만 있다. 엄마는 힘들고 지친 시간과 누추하고 허름했던 모습들을 프레임 밖으로 밀쳐내고 추석빔을 차려입은 세 아이만을 오롯이 남겨 행복한 찰나만으로 재단하고 싶었으리라.

엄마는 돌아가시기 얼마 전 사진관에서 이 사진을 여러 장을 출력해 액자에 넣은 다음 집집이 보내주었다. 엄마가 그러했듯, 나도 사진을 어디서든 볼 수 있게 거실의 피아노 위에 두고 동생들과 함께 있다. 그 사진 곁에는 삼 남매의 2세들이 그때의 우리 나이가 되었을 때 찍은 또 다른 사진이 데칼코마니처럼 나란히 놓여있다. 두 개의 사진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젖어있다가, 추석을 맞아 집에 온 딸에게 물었다.

“추석빔 사줄까?”

마흔을 앞둔 딸이 싱긋 웃더니 되물었다.

“내가 엄마 추석빔 사줄까?”

나는 잠시 주저하다 거절의 말을 삼켰다. 그 시절의 엄마가 되고 싶었는데 그만 다시 어린 딸이 되고 말았다. 딸은 손 안에서 쇼핑을 끝냈다. 며칠 뒤 택배가 도착했다. 상자 안에는 붉고 짙은 갈색 상의가 비닐에 포장되어 들어있었다. 내가 몹시 입고 싶었던 스웨이드 재킷이었다. 역시 추석엔 새 옷이다. 분명 딸이 사준 옷인데 추석빔을 사주던 엄마가 보고팠다. 나도 엄마에게 묻고 싶었다. 엄마, 추석빔 사러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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