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속을 걷다
아무래도 카페에서 동생을 기다리기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만나기로 한 시각보다 일찍 나와 보경사 입구의 카페에 들어갔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시원한 에어컨 아래에서 책을 읽으며 기다릴 요량이었다. 주문한 음료를 받아 들고 창가 자리에 앉아 책을 펼쳤다. 카페에 나밖에 없는 것이 문제였다. 사장님이 손님이 너무 없다며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보경사를 드나드는 사람들의 성별과 나이대, 식사와 음료를 준비해 오는 여행객, 급기야 인구 감소까지 다양한 원인을 분석하며 열정을 태우셨다. 나는 ‘네~네~’를 연발하며 반응하다가 고개를 슬며시 숙이며 책을 읽겠다는 의지를 소심하게 드러냈다. 사장님은 내 의중을 눈치채셨는지 더 이상 말을 건네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이 왠지 불편했다. 펼친 책을 덮고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때였다. 길 건너 나무들이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흔들리고 있었다. 여린 가지는 일렁이고, 끝의 잎사귀는 하나하나 떨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나도 나무처럼 바람에 휘감기고 싶었다. 남은 커피를 급히 마시고 자리를 정돈하여 밖으로 나왔다. 나를 기다린 듯 벤치가 비어 있었다. 앉아서 눈을 감았다. 나무에서 차르르 차르르 소리가 났다. 잎사귀 부딪히는 소리인지 벌레 울음소리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시원했다. 살갗을 부드럽게 스치는 바람이 좋았다. 얼굴과 어깨를 스치고 머리카락 몇 올이 목덜미에서 하늘거리는 게 느껴졌다. 깊은 호흡을 하며 이 공기와 기운을 들이켰다. 잠시 바람을 즐기다 눈을 떴을 때, 카페에서 보이지 않던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조경공사로 가려져 있던 연못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느 해는 촛불 맨드라미 가득한 꽃밭이었다가, 어느 해에는 사람에게 버려져 잡초가 주인이기도 했던 언덕 아래 넓은 땅이 제대로 모양을 갖추었다. 경사진 땅에 높이가 다른 층층이 연못이 여러 개 조성되었고 사이사이 산책로가 닦여있었다. 연못 가장자리에는 부들과 억새 같은 키다리 수중 식물들이 자라고, 안쪽으로 수련이 넓게 자리 잡아 잎이 돋아나고 있었다. 머지않아 수련꽃이 피어나 수놓을 것 같았다. 연못은 이걸로 부족했던지 산과 나무의 반영을 그득히 담고 있었다.
물그림자를 멍하니 바라보다 지난 며칠간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휴가 차 내려온 동생과 오랜만에 부모님을 찾아뵈었다. 포와 과일, 술을 올리고 부모님을 추억했다. 서로 다른 기억의 조각들이 맞추어지며 하나의 사건들이 완성될 때마다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는 사이 내가 몰랐던 동생의 마음도 알게 되었다. 동생은 부모님의 아픔을 충분히 공감해 주지 못한 것을 괴로워했다. 동생만 그랬을 리가 없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나도 실은 마찬가지였다.
한참 동안 머물렀다. 이런저런 상념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이건 물그림자 때문이라고, 연잎이 예뻐서라고 어설픈 핑계를 찾다가 동생의 등장으로 겨우 빠져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자연학습장이라는 안내판을 발견했다. 연못을 조성한 이는 연못이 학습의 장으로 기능하기를 바랐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는 궁금하고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들기보다 고요히 나를 돌아보게 하는 곳이었다. 내 마음대로 이름을 다시 지었다. 이제부터 '사색의 연못'이라 불러야겠다고 생각하며 잠시 ‘빨강 머리 앤’이 되었다.
동생이 서울로 돌아간 후, 나는 자주 보경로 연못을 찾는다. 보온병에 따뜻한 차를 담고, 좋아하는 책을 가방에 넣고, 나이 많은 느티나무가 넉넉하게 그늘로 품어주는 벤치에 자리 잡고 앉는다. 바람과 연못이 만든 풍경 속에서 동생을 기다리던 아름다운 오후를 떠올리며 나도 풍경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