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하는 말을 남자가 잘 알아듣지 못할 때가 있다. 하고 싶은 말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완곡하게 에둘러 표현해서 ‘여자어’라고 한다. 우리 집에는 반대 상황이다. 나는 남편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 어려울 때가 많다. 에둘러 표현하기와 정확하지 않은 표현이 섞여 있다. 나는 이를 ‘남편어’라 칭하고 싶다.
어제는 마당에 나가 이곳저곳을 정리하던 남편이 거실 창 앞에 서서 집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버릴 것 갖다 줘.”
“쓰레기?”
남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쳐다보며 다시 물었다.
“아니, 영양분 있잖아.”
“?”
남편이 말한 ‘버릴 것’과 ‘영양분’의 조합을 찾아 짧은 시간 생각했다. 가끔 유청을 식물의 영양제로 사용해 온 사실을 기억해 내며, 그릭 요거트를 만들 때 분리된 유청을 모아둔 병을 가져다주었다. 원하던 것이 맞았는지 군말 없이 받았다. 남편에게 어떤 물건인지 정확하게 말해달라고 요구하면 ‘말하면 딱 알아채야지.’라는 식이다. 서로가 기분이 괜찮을 때는 웃고 넘어가지만, 누구 하나라도 심사가 틀어지면 언쟁이 되기 십상이다.
지난 추석 연휴 끝자락에 1박 2일 가족여행을 갔다. 첫날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모여 조촐한 술자리를 가졌다. 술이 거나하게 오르고, 분위기도 무르익자, 속에 있는 이야기가 하나씩 나왔다. 조카 부부의 이야기 끝에 남편이 조언을 건넸다.
"부부는 서로 존중하고 믿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두루뭉술하게 원론적으로 한 말인데, 나는 어느 때보다 명쾌하게 들렸다. ‘네네’하며 듣고 있던 조카에게 말했다.
"무슨 말인지 설명해 줄까?"
조카는 반색하며 듣고 싶어 했다.
"날마다 술 먹고 늦게 들어와도, 주말마다 산에 가도, 아무 말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달라는 말이야."
딸 부부와 조카 부부는 동시에 숨넘어가듯 웃었다. 남편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부정하지 않고 웃는 것으로 내 말을 긍정했다.
직접적인 표현보다 에둘러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관계를 부드럽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유쾌한 분위기를 끌어내기도 한다. 요구를 정확한 언어로 말하지 않아 오히려 웃음을 터뜨리게도 한다. 이건 상대가 맥락을 이해하고 수용할 마음을 가졌을 때 가능하다. 나는 아직 남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거나, 돌려서 말하는 것에 불편을 느낄 때가 있다.
상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불편함이 남편 탓만은 아니다. 남편으로부터 시작되었더라도 언어의 파동에 즐겁게 올라타고 나 또한 익살맞게 뜻을 전달하면 유쾌한 대화로 이어질 텐데, 그런 재치 있는 언어 감각을 지니지 못했다. 그렇다고 어떤 말이든지 시원하게 받아들이고 그러려니 할 만큼 마음 그릇이 크지도 않다. 불편함의 상당한 지분이 나에게 있다.
남편어로 생긴 자잘한 일화들을 내 탓으로 돌리며 식사 준비를 위해 싱크대 앞에 섰다. 먹거리를 고민하며 서성거리는데 때마침 남편이 현관을 들어서며 들뜬 목소리로 호기롭게 말했다.
“오늘 고기 먹나?”
생뚱맞게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저녁에 고기 먹자는 말이다. 아, 나는 왜 이 말을 알아듣고 있지. 너무 오래 같이 살았나 보다. 나는 소리 없는 아우성을 외친다. 차라리 고기 먹고 싶다고 말하라고. 내 허탈한 웃음과 함께 짧았던 성찰의 시간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