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의 일이었다. 설머리 물회 거리에서 점심 식사를 마치고 서로 계산하겠다며 계단을 내려오던 참이었다. 거의 다 내려왔다고 생각했을 때 짧은 비명과 함께 친구가 계단참에 놓인 벤치 의자에 머리를 부딪히며 넘어졌다.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비틀거리며 발을 딛지 못하고 다시 한번 휘청거렸다. 다친 곳이 머리가 아니라 발이었다. 마지막 계단을 헛디뎌 발목이 꺾이며 넘어진 것이었다.
나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거렸다. 친구는 아픔에 걷지 못하면서도 카드를 내밀며 계산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당황스러움 속에서 계산을 끝내고 걷지 못하는 친구를 일단 식당 앞에 기다리게 했다. 주차장으로 달려가 차를 가져왔다. 친구를 태우고 가까운 병원으로 갔다. 접수창구에서 다친 과정을 설명하고 안내받은 3번 진료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짧은 시간 동안 벌어진 일들이 영화 필름처럼 한 장면씩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길게 숨을 내쉬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친구의 발이 가벼운 상태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친구는 서울에 살고 있었다. 오랜만에 나를 만나기 위해 포항까지 먼 걸음을 했다. 기차 시간에 맞춰 친구를 맞이하러 나갔다. 도착 안내 방송이 끝나자 곧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인파 속에서도 친구는 두드러지게 눈에 띄었다. 가르마를 하고 단정히 빗어 넘긴 머리카락을 뒤에서 쪽을 진 헤어스타일에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검정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반듯하게 걷는 모습은 모델 같은 기운을 내뿜었다. 서로를 발견하고 손을 마주치며 기뻐했다.
포항역을 나서 설머리로 향했다. 물회를 먹으며 안부를 묻고, 서로의 삶을 응원하며 훈훈하게 점심 식사가 끝났다.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들뜬 목소리로 계획을 밝히며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일어섰다. 우리를 기다리는 건 푸른 바다를 보며 모래사장을 걷는 낭만이 아니라 계단에서 넘어지는 사고였다.
간호사가 친구를 호명했다. 휠체어에 친구를 태우고 의사 선생님과 면담했다. 천만다행으로 골절은 아니었다. 왼발을 반깁스 했다. 의사 선생님은 발을 딛지 않아야 한다며 3주간 목발에 의지하는 불편한 생활을 예고했다.
치료를 마치고 병원 건물의 지하 카페로 갔다. 우리가 가고자 했던 멋진 카페는 아니었지만 이대로 친구를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함께 누릴 시간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컸던가. 우리는 망고 라테를 사이에 두고 앉아 시원하게 한바탕 웃었다. 웃음으로 근심 걱정을 날려버리고 싶었다.
정신을 차리고 친구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역에서 만났을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예쁜 원피스 하단에 두툼한 플라스틱 덩어리가 보였다. 양쪽 어깨 아래로 알루미늄의 목발이 길게 걸쳐있었다. 깁스한 발 옆으로 내민 또 다른 발의 파란색 발톱만이 멋쟁이임을 소심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항상 멋지고 세련된 친구의 스타일을 해친 게 속상했다. 큰 부상이 아닌 게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당분간 집안에서만 있어야 하는 친구가 느낄 답답함에 미안했다.
집에 도착한 친구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친구여, 반가움에 겨워 절뚝거리면서도 웃었네. 걱정 끼쳐 미안하고.’
멀리서도 내 마음이 들여다보이는지 나에게 먼저 미안하다는 말을 써 보냈다.
메시지를 다시 읽으며 그날을 회상했다. 참 많이 웃었다. 어떤 대화가 그리 재미있었냐고 물으면 꼭 집어 대답하기 어렵다. 아픈 다리로 걸으며 서로를 의지한 채 웃었다. 진료를 기다리면서도 다른 환자의 눈치를 보며 웃었다. 낙엽 굴러가는 것만 봐도 웃는다는 사춘기 소녀처럼 이게 웃을 일인가 싶으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사실 우리는 웃음 뒤에 가려진 진실을 알고 있었다. 나이 들어 줄어든 근력과 순발력을 어찌할 것인가.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몸으로 인해 실수가 조금씩 늘어나고 의도치 않게 삐걱거리기도 한다. 이런 내밀한 속내를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서로의 눈을 마주칠 때마다 공감했기에 웃음으로 드러냈을 뿐이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이 슬픈 일만은 아니다. 마음은 여전히 내가 좋아하던 시절에 머물러 있다. 웬만한 일들은 사소하게 느껴지는 여유로움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늘어난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즐거워야 행복해진다는 것도 깨닫는다. 나만의 여유와 시선을 장착하고 친구를 만나러 가고 싶다. 우리가 다시 만날 때는 멀쩡한 다리를 하고 깁스의 기억을 떠올리며 또 재미지게 웃을 것이다. 설머리 해프닝은 우리의 웃음 버튼이 될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