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던 전화가 왔다. 인동에 살고 있는 친구였다. 오래전부터 시골살이가 꿈이었던 친구는 대나무숲과 벚나무에 안긴 시골집을 매입해 직접 수리했다. 가장 공들여 손을 본 것은 마당이었다. 가장자리의 개울을 다듬어 이제는 꽃과 나무들이 서로 어울리게 자리했다. 사계절 언제라도 볼거리가 풍성하다. 나에게 전화하기 직전까지도 잡초를 뽑고 꽃망울을 틔우는 식물들을 살피고 있었을 것이다.
“진달래가 피었어. 화전 부쳐 먹자.”
2년 전 울타리에 진달래를 심었다며 꽃이 피면 화전을 해 먹자고 말했다. 올해는 진달래나무에 화전을 해도 될 만큼 꽃이 피었단다. 친구의 부름에 얼른 달려갔다.
4월 첫 주말 봄꽃들이 절정이었다. 골목 입구에서부터 벚꽃이 바람에 흩날리며 떨어져 내리는 것이 보였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잔디 위에 꽃잎이 눈처럼 쌓여 있었다. 친구는 마당에 서서 경탄하는 나를 맞으며 대뜸 소쿠리를 쥐어 주고는 진달래를 따오라고 했다. 화전놀이 때 꽃을 따는 건 내가 꼭 하고 싶다는 말을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울타리 옆에 자리 잡은 진달래는 가지마다 여러 송이씩 덩어리 져 피어있었다. 나무 옆에 바구니를 내려놓고 다소곳이 앉아 꽃을 땄다. 진달래는 제 에너지를 다하여 가지 끝까지 물과 영양을 보내고 꽃을 피웠다. 그 예쁜 꽃을 나 먹자고 몽창 따려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궁여지책으로 모양이 민숭하지 않게 가지마다 한 송이씩 남겨두며 꽃을 땄다.
소쿠리에 진달래꽃을 한 움큼 담아 부엌에 들어갔다. 친구는 찹쌀가루를 꺼내 익반죽을 준비하고 있었다. 커다란 볼에 찹쌀가루를 넣고 소금을 녹인 뜨거운 물을 조금씩 부으며 버무리고 주물렀다. 반죽이 완성되자 작은 덩어리로 잘라 동그랗고 납작한 모양으로 빚었다. 이제 화전 부칠 준비가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친구가 갑자기 놓친 것이 있다며 쑥과 잣을 가져왔다. 그렇다. 프로와 아마추어는 디테일에서 차이가 난다. 친구는 음식에 대해서는 프로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예열한 뒤 둥글게 빚은 찹쌀 반죽을 조심스레 네 개 올렸다.
어느 정도 익었을 때 뒤집어 꽃을 올렸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긴장할 일인가. 꽃을 집어 든 손가락이 떨렸다. 진달래꽃잎을 활짝 펼치고 가운데 잣을 올려 눌렀다. 옆에는 쑥잎을 얹어 모양을 더했다. 화전에 아름다움을 더하는 사이 아랫면이 익으면 다시 뒤집어야 한다. 모양이 흐트러질까 노심초사하며 뒤집다가 아뿔싸 그만 잣이 떨어져 나갔다.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진달래 화전을 굽는 것을 왜 ‘놀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반죽하며 웃고, 둥글게 빚으며 웃고, 뒤집다가 실패해서 웃고, 웃음이 끊이지 않는 일을 두고 노동이라 부를 수 없다.
진달래가 살포시 내려앉은 화전이 완성되었다. 그릇장에서 커다란 도자기 접시를 꺼내 화전을 예쁘게 놓고 남은 진달래꽃으로 장식했다. 화전과 꿀, 차를 들고 나와 마당의 나무 그늘에 놓인 테이블로 갔다. 먹기 아까운 모습으로 담겨있는 화전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다가, 그래도 먹자며 꿀에 찍어 입에 넣었다. 단짠단짠의 자극적인 조화나 코를 찌르는 향기는 없지만 찹쌀의 고소함과 꿀의 단맛이 어우러지며 입안에 은은하게 퍼졌다. 맛에도 품위가 있다면 이런 맛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각이 곧 미각,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쩌면 화려하게 장식된 화전을 보면서 입에서 맛을 느끼기도 전에 나는 이미 맛있다고 정해버렸을지도 모른다.
풍류의 절정인 ‘죽란시사(竹欄詩社)’가 부럽지 않았다. 친구와 죽란시사의 규약과 낭만을 이야기하다 보니 우리도 그들처럼 꽃을 즐기는 일곱 개의 규약을 만들고 싶었다. 나는 마당의 식물들을 둘러보았다. 시간을 달리하며 피어나는 꽃들은 충분했다. 매화, 진달래, 작약, 수국, 능소화, 수련, 국화를 호명하며 일곱 개의 규약을 끼워 맞췄고 친구는 웃음으로 화답했다. 우리는 술 대신 차와 화전을 두고 마주 앉아 있었다. 시를 읊을 만한 교양은 부족할지언정 진달래꽃이 피는 봄을 즐기는 마음은 넉넉했다.
꽃잎 하나가 바람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공을 돌다가 내 찻잔 속으로 떨어졌다. 시절의 행복 하나가 예고 없이 나에게 훅 들어온 것이다. 나는 진달래 화전이 담긴 그릇과 찻잔의 벚꽃을 휴대전화로 찍었다. 가끔 사진을 열어보는 일은 화전놀이를 핑계로 온몸으로 느꼈던 봄의 행복을 선물처럼 풀어보는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