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그 이후] 새해가 되어 여행을 가고 싶다던 밤

그날의 마음을 우리는 끝내 알지 못한다

by 흔적기록가

같은 현장을 보아도 남는 것은 모두 다르다

나는 그 다름을 기억하려 한다



2026년이 된 지 2개월이 지났다

'새해'란 단어가 각자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지금 시점에서 한번 돌아보는 건 어떨까?


새로운 직장, 나이, 환경, 목표 등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지며 새로운 시작을 기대하고 맞이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새해란 끝나지 않는 시간의 연장선일 뿐, 그저 절망적이고 지루한 숫자 놀음 그뿐이었을 거다

그 숫자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보며 자신도 '새로움'을 시작하고 싶었을까?

무엇이 되었든, 결국 잘못된 선택으로 그 삶은 '새로움'을 맞이할 새도 없이 끝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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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새해, 명절, 연휴는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다

이번 2026년도 그런 편이다, 특히 1월이 그렇다


그저 매해 연휴를 보내는 일반 사람들이 사이좋게, 별 탈없이, 싸우지 않고 행복하고 조용히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이 마음을 알아주는 이가 있을까

아무 일 없듯, 조용히 지나가길 바라는 게 우스웠는지

시간의 공백을 채워주려는 사건은 끊임없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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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수사 요원의 출동은 항상 업무폰 전화 벨소리가 울리며 시작한다


사람들은 겨울 찬바람이 불어도 외출은 한다, 우리의 출동도 마찬가지다

그날이 공휴일이든, 주말이든, 아니든


하지만 사람들은 생각보다 주변을 잘 보지 않는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지나가고 주변에 눈길 주는 이 하나 없이 시간이 흐르다

뭐에 홀린 듯 눈을 돌린 이에게 발견되는 시신들이 있다

이번엔 그곳이 아파트 화단 깊은 곳, 누군가의 집이라 불리는 베란다 그 아래였다


출동하는 차 안에서 전달받은 사진엔 앳되어 보이는 남성 한 명이 얇은 옷차림을 하고 베란다 아래 웅크려 누워 발견된 줄 알았다

'저체온사? 아니면 추락인가', '아파트 주민인가'


현장에 도착해 보니 여지없는 '추락사'였다

전달받은 사진에서 보이지 않았던 많은 피부 까짐, 멍, 그리고 추락사 시신에서 보이는 천 파창(골절로 인해 부러진 뼈가 피부를 뚫고 나온 상태)까지

사망 원인은 '추락'으로 인한 외인사로 보였다


변사자의 신원은 현장에서 채취한 시신의 지문 사진을 확인할 수 있다

사무실에서 출동 대기하는원들에게 부탁해 초고속 신원확인을 할 수 있었

그건 그렇고 현장에선 시신의 출처(사는 곳)와 추락경위만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유족을 찾아야 한다


먼저 시신이 발견된 위치에서 건물 위를 바라봤다

얇은 옷차림을 한 변사자 혼자 강행한 극단적 선택이라면 창문을 닫아 줄 사람 없으니 창문이 열려있을 거다

그렇게 고층부에 위치한 집 중 창문이 열려있는 곳을 찾았다


"한파 경보까지 내린 추운 날씨에 창문을 활짝 열어놓은 곳은 거의 없다, 우선 저기부터 가자"


시신을 장례식장 직원들에게 인계하고 변사자의 주거지로 추정되는 집 내부를 확인하고자 건물 출입구로 다가가니

한 중년 남성이 '저희 집입니다, 안내해 드리죠'라며 다가왔다


변사자의 부친이었다

눈가는 슬퍼 보이지만, 행동과 말투는 차분했다

일이 비교적 수월하게 풀렸다고 안도하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안내를 받아 들어간 집안은 대궐 같았다

조금 오래되어 보이는 건물 외관과 달리

내부는 시간이 좀 지난 거 같지만 올 수리 인테리어에 50평 넘는 소위 옛날 부자 집 같은 형태였다


변사자의 방은 더 놀라웠다

외동아들이라 그런가, 부모의 아들 사랑은 규모가 달랐다

변사자의 방 하나 크기가 일반 아파트 방 2개를 합친 것보다 큰 공간이었다

한쪽 벽면은 고가의 양주 컬렉션 진열대, 커브드 모니터의 번쩍번쩍한 컴퓨터와 각종 전자기기, 게임기, 헬스기구

모든 게 다 들어가고도 퀸사이즈 침대까지 여유롭게 배치되어 있는 아주 넓은 방이었다


그 규모에 놀라던 중 컴퓨터 책상 앞 작은 노트에 유서형태 메모가 놓여있었다

'장례 치르며 굿도 치러줘'

아마도 그 글을 쓰고 바로 옆 창문을 열고 추락했다 예상되었다


생활의 어려움은 무슨, 풍족하다 못해 다 가진 듯해 보이는 변사자가

죽음을 선택한 동기가 궁금해졌다


부친이 말한 이유는...

"여행 가고 싶다한걸 말렸어요, 걱정돼서요"

"조용해서 술 먹고 자는 줄 알았어요. 외출하려고 나오니 경찰이 와있더군요"


고등학교 때부터 극심한 우울증을 앓던 아들이

사회에 나가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꿈이 생기면 나아질 줄 알았다더라

왕따를 당한 것도, 학업스트레스를 받은 것도 아니었던지라 정확한 원인은 모르겠고

걱정한 것과 다르게 정신병원을 스스로 가고 약 처방받길래 잘 지내는 것 같았다더라


돌연 휴학했단 사실을 듣고 앞으로 인생계획을 응원하려 했는데

돌아올 기한은 정하지 않고 여행을 간다더라

옆에 둬도 불안한 게 자식인지라, 조금 신중하게 결정하란한 게 사달이 날 줄 몰랐다고 허탈하게 웃으시며 울음을 삼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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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본 변사자는 부족할 거 하나 없었다

그래도 그 속의 아픔의 깊이는 단정할 수 없었을 테지

삶의 고독을 '여행'으로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던 걸까

그 시작을 부정받아서인지 잘못된 선택을 한 결과였을까

한 번의 시도가 성공할지 몰랐을까

결국 그는 그토록 원하던 '여행'을 위한 짐 한번 꾸리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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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사람은 모른다

자신의 외로움과 우울에 잠식되어 그렇게 비관하던 현실이

누군가에겐 행복의 기준이고 힘듦 하나 없을 거 같은 바라던 삶이란 걸

우울에 빠진 사람은 자신이 잘난 거 없이 망가지고 볼품없다 생각했을 거다


혹시라도 자신을 평가 절하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면

당신은 존재 자체로 누군가의 부러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알아주길 바란다

당신이 하찮게 생각하는 생활의 불편함 또한 타인이 그렇게나 원하던 부러움의 대상일 수 있다

그러니 현실이 거지 같아 도망가고 싶더라도 절대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길 바란다

그 현실이 결국 일주일 전 기억도 안나는 점심식사 같이 잊히는 시기가 올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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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일도 아닌 말이

아무 일도 아니지 않을 때가 있을 거다


하지만 오늘의 대화가 내일로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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