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돌아올 수 없었다
같은 현장을 보아도 남는 것은 모두 다르다
나는 그 다름을 기억하려 한다
시간을 느껴본 적 있는가?
문득 시계를 보았을 때?
지나가는 날짜를 흘려보내며 달력을 넘겼을 때?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자녀를 만나 세월의 야속함을 체감할 때?
나는 주로 계절 변화를 통해 시간을 느낀다
매일 같은 시간 대 출근하며 해가 뜨고 짐의 차이,
매일 같은 옷과 장비를 착용해도 다르게 느껴지는 공기의 온도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
그리고 그 시간의 흐름이 쌓여 계절이 바뀌면 자주 겪는 사건의 배경도 달라진다
시간이 흘러 돌고 돌다 보면
새해가 되고 봄이 온다
올해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봄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조금 따뜻해진 기온을 반기듯
'입춘'이란 절기를 지내자마자 산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 전의 추운 겨울 그곳을 먼저 찾았던 다른 존재의 흔적을 발견해 낸다
나는 그렇게 봄을 맞이한다
산속 그 깊은 곳에서 쓸쓸히 죽어간 그 잔해가 봄이 오기 전 발견되면
'벌써 봄이 오는구나' 하고 받아들인다
그렇게 시간의 흐름은 잊어도 계절 변화는 누구보다 먼저 느낀다
.
얼마 전인가 한파가 끝나고 영상 기온이 찍힌 지 며칠 되지 않은 시점
점심을 먹고 나른한 식곤증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싶었던 날
요란스럽게 벨소리가 울려 출동 준비를 했다
'아... 조금 쉴만하면, 조금 날 풀리면 또 시작이네'
현장은 산이었다
봄이 오기도 전
가족들에게 줄 고로쇠 수액 채취하러 이맘때 자주 가던 산에 가니
깊은 산속 비탈에서 생명이 꺼진듯한 형체가 쓰러져있다더라
안내길, 표지판 하나 없는 곳이라 서둘러 현장으로 갔다
지도를 보지 않으면 지역도, 지명도 처음 봐 길이 있는지도 몰랐을 산기슭을 따라 달리다 보니
저 멀리 먼저 온 소방차, 경찰차가 줄지어 주차되어 있었다
소방관계자 손이 가벼운걸 보니 변사자로 발견된 건 확실했다
운구차도 못 들어가는 산속이니, 변사자를 길가로 모시려면 시체백(Body bag)을 챙겨가야 한다
그런 우리가 안쓰러웠는지 소방관계자들이 먼저 말을 걸었다
"길이 없어요. 저희도 신고자 분에게 안내받아 겨우 찾아갔습니다.
부패는 아니에요. 사망하신 지 얼마 안 되신 거 같습니다. 그리고... 사고 같아요. 고생하십시오"
생명이 꺼진 존재는 소방관, 구급대원이 손을 대지 않는다, 그저 두고 간다
매뉴얼인 건 알지만, 현장이 열악할수록 그 매뉴얼이 참 야속하다
어쩌겠는가, 각자의 할 일에 집중해야지
그렇게 고개만 돌려도 방향을 잃는 그 산에서 신고자의 도움을 받아 현장에 도착했다
변사자는 산비탈에 쓰러져 있었다
아니, 끼어있었다고 해야 적절한 표현일 거다
한 손은 절망적인 손짓의 흔적으로 부러진 나뭇가지를 붙잡고 있었고
바위와 잔가지가 가득한 나무 사이 전신 흙먼지 투성이 차림의 변사자가 쓰러져있었다
자세와 행색을 보아하니, 실족사하신 분인데
내 눈에 보이는 많은 혈흔의 흔적은 실족과 연관되지 않았다
패딩, 바지 주머니를 확인해 보니 지갑 하나 발견되어 신원은 얼추 찾을 수 있었다
주소지를 보니 발견된 지점과 꽤 거리가 있는 곳에 사는 분이었다
'왜? 여기까지 오신 거지? 며칠 전 한파였는데?'
'혈흔은 왜 이리 많으신 거야? 이상한데...'
더 자세한 사망경위 조사를 위해 변사자가 실족한 현장 즉, 산비탈 오르막을 올라갔다
그곳에 변사자의 소지품으로 보이는 가방, 장갑, 핸드폰이 발견되었다
곳곳에서 발견된 다량의 혈흔과 변사자가 떨어져 발견된 지점까지 위치한 나무, 돌 곳곳에 묻은 혈흔까지 변사자의 이동 경로를 추정하기엔 확실한 흔적들이었다
산속에서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없기에 변사자를 인근 장례식장으로 모셔 검시를 진행했다
착용한 옷을 한 겹, 두 겹 탈의하며 손목의 깊은 자해흔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량의 혈액은 손목에 깊게 파인 상처 때문이었다
결국 변사자는 그 추운 날 극단적 선택 후 실족하신 것 같다는 게 우리의 결론이었다
죽고 싶어 선택한 자해, 의도치 않아 헛디딘 발로 인해 죽음에 이르기까지
결국 변사자가 원하는 바가 이루어졌으니 다행이라 해야 할까
끝끝내 붙잡고 싶었던 나뭇가지를 보면 사실 살고 싶었던 거 아닐까?
그 마음은 변사자만 알 테지
나중에 형사팀을 통해 유족을 찾았다고 연락이 왔다
그 추운 겨울 변사자가 찾아간 그곳은 부모님 산소였다더라
아주 어린 시절 그 산 주변 작은 마을에서 자랐고
그 산에 부모님 산소를 모신 뒤 아들과 함께 종종 찾아갔던 자리라더라
'그 아들은 변사자가 이렇게 되기까지 뭐 하고 있었나' 내심 궁금해질 때 즈음
형사팀에서도 같은 질문을 했고 황당한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자신은 새 가정을 꾸렸다고...
변사자는 변사자의 삶을 사는 줄 알았다고...
사는 곳 주소는 알지만 누추하단 말을 하며 방문하길 극구 반대한 변사자의 집을 가본 적 없어
연락이 끊겼는지 몰랐고 실종신고 할 생각도 못했다고...
그저 무소식이 희소식인 줄 알았다더라
그러면서 '항암치료 중이셨습니다' 라며 비관적 선택을 옹호하듯 말을 마쳤다더라
참 무심도 하셔
변사자가 그 추운 날 기력 없는 몸을 이끌고 부모님 산소를 왜 찾아갔는지 조금 이해되더라
외로웠을 거다
아팠을 거다
무서웠을 거다
기댈 곳 없이 쓸쓸히 죽을 날 받고 산 송장처럼 살바에
죽음을 선택하고 싶었을 거다
그렇게 부모님 옆에서 추억 많은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하려 했나 보다
하지만 막상 죽음과 가까워지니 더 살 수 있는 날이 그리워지며 돌아가고 싶었을 거다
그 생각이 들 때 즈음, 때는 늦었고 그렇게 생명은 꺼져갔을 거다
.
외롭고, 아프고, 미래가 겁나도
존재 자체로 의미 있을 수 있다
'해봐야 알 수 있고', '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분야'가 나누어진 것처럼
'삶'과'죽음'의 선택이 '해봐야 알 수 있는 분야'로 분류되지 않길 바란다
'죽음'을 선택하면 '삶'은 선택지에서 사라진 이후일테니
'삶'의 축복을 이전에 깨달을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