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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분 Feb 09. 2023

150명을 태우고 잠든 조종사

인디아 에어 익스프레스 182편

두바이

두바이의 인구 1/3은 인도인이다. 인도와 두바이를 잇는 하늘길은 매우 붐빈다. 코치, 코지코드, 망갈로르, 티루바난타푸람, 티루치라팔리. 남인도의 공항들은 꾸준히 성장 중이다. 

떠오르는 시장을 본 에어 인디아는 2005년 자회사 에어 인디아 익스프레스를 설립했다. 에어 인디아 익스프레스는 망갈로르와 두바이를 잇는 정기편을 811편과 812편으로 편성해 운영했다. 항공사의 모든 기체는 737-800으로 통일했다. 수직 미익에는 인도의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이 그려졌다. 등록번호 VT-AVX에는 콜카타에 있는 빅토리아 여왕 기념관과 오리사주에 있는 코나라크 태양신 사원이 도장되었다. 

13세기의 이 사원 둘레에는 24개의 거대한 석조 바퀴가 있다. 바퀴를 인도 문화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인도의 국장은 네 마리 사자가 바퀴 위에 올라탄 아소카왕의 사자상이다. 이 바퀴 즉 '법륜'상징물은 16세기 무굴제국의 국장이기도 하다. 오래전, 바퀴를 가진 정복자가 우월한 기술로 숭배를 받았을지 모른다. 인도는 교통수단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조종사

기장 즐라코 글루시카 Zlatko Glusica. 55세. 세르비아인이다. 2년 전 2008년 12월, 에어 아시아 익스프레스에 고용되었다. DC-9기로 비행을 시작해 737-300을 조종했다. 유고 연방 해체 후에는 몰타, 캐나다, 호주 등지에서 경력을 쌓아왔다. 가정적이며 친절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부기장 사이에서는 일하기 좋은 사람이라는 평과, 고집이 세다는 평이 엇갈린다.


2009년 12월 12일. 기장은 경착륙으로 조사를 받았다. 737의 경착륙은 우측 메인 기어 수납부에 설치된 가속도계로 측정한다. 보잉의 제한치는 2.1Vg, 인도 민간항공국 기준은 1.8Vg.  에어인디아 익스프레스 기준은 1.65Vg다. 글루시카 기장은 1.9Vg로 착륙했다. 기장은 조사를 받는 것을 두고 동료에게 불평했다. 억울한 일일까. 1.9Vg의 착륙은 하루에도 몇 번씩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경착륙으로 인한 조사가 이직에 불이익을 줄지 모른다고 걱정했다. 5월 18일까지 세르비아로 2주간 휴가를 다녀온 후 첫 비행이다.


총 비행시간 12,215시간. 737-800 기종 비행시간 2,844 시간

부기장. 하빈더 싱 아할루왈리아. 40세.  

인도 뭄바이 출신이다. 2009년 에어 인디아 익스프레스에 채용되었다. 이전에는 인도의 최대 규모 항공사였던 제트 에어웨이즈에서 5년간 부기장으로 비행했다. 꼼꼼하고 원칙적이라는 평이 있었다. 규정을 지키지 않은 외국인 기장에 대해 서면으로 항의한 적이 있다. 


총 비행시간 3,620시간. 737-800 기종 비행시간 3,319시간.


에어 인디아 익스프레스는 지난 5년간 조종사를 30명에서 242명으로 늘렸다. 2009년 기준 인도에서 일하는 외국인 파일럿은 686명이다. 인도 정부는 기장급 파일럿 1,300명 양성 계획을 설립했지만, 당장은 외국인 기장을 채용할 수밖에 없다. 외국인 기장에겐 8주 근무 후 2주 휴가를 주는 추가 계약이 붙는다. 비행시간이 인도인 조종사의 75% 수준이지만 아쉬운 건 회사다. 글루시카 기장의 경우 세르비아 에이전시를 통해 채용했다. 에이전시가 알려준 것 외에 개인적인 배경을 항공사는 알 수 없다. 배경을 알 수 없는 이국의 조종사들이 모였으니 반목이 적지 않다.

두 사람은 두바이에 21시 35분 도착했다. 급유를 하고 화물을 싣는다. 고장 난 25C 좌석을 수리하고, 로고 라이트 전구를 갈아 끼운다. 비행 준비를 하는 동안 기장과 부기장은 터미널 빌딩에 있는 면세점에 들린다.


호흡

새벽 2시 36분, IX812편으로  편성되어 망갈루르로 다시 돌아간다. 승객은 유아를 포함해 160명. 도착 예정시간은 6시 30분이다. 


오전 5시 32분 52초. 고도 37000피트로 보고지점인 IGAMA에 접근 중이다. 부기장은 관제소에 보고한다.


“망갈로르 관제 레이더는 지원하지 않습니다.” 관제소에서 알린다. 관제 레이더의 회전 부품 교체를 위해 정비 중이다. 2010년 5월 20일 이후 사용할 수 없다고 항공고시보로 발행했다. 관제 레이더가 없으니 평소보다 좀 더 짧은 하강 거리가 주어진다.


순항이 끝나고 하강할 때가 다가왔다. 망갈로르에서 두바이로, 두바이에서 망갈로르로 오는 두 조종사의 호흡은 어땠을까. 지난 2시간 동안 어떤 대화도 없었다. 대화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기장석에서는 이따금 코 고는 소리, 숨을 들이켜는 소리만 들린다. 기장은 잠들었다. 난기류도 없어 잠들기 좋은 편안한 비행이다. 기장이 잠든 사이 부기장이 조종은 물론 교신을 모두 맡는다.  객실 승무원들의 인터폰도 부기장이 모두 받는다. 외국인 기장에 대한 부기장의 불만은 차곡차곡 쌓인다.


수면

피로를 감추지 못할 만큼 무리한 일정은 단연코 아니다. 기장은 비행 전 주어진 휴식시간을 활용하지 못했다. 그리고 비행 내내 긴 수면에 빠졌다. 


대부분의 조종사들이 순항 단계에서 잠깐 잠들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한다. 잠깐 든 낮잠은 깊은 수면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깊은 수면은 5분만 더 자고 싶어지는 수면 관성(sleep Inertia)을 불러온다. 일어난 후에도 완전히 깨기 전까지 판단력이 흐려진다. 옆에서 지켜보는 부기장에게도 졸음이 전염되었을까. 부기장은 하품을 한 후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2013년 8월 13일. 영국 민간항공국은 A330 조종사들이 동시에 잠들었다고 발표했다. 영국 항공 조종사 노조(BALPA)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조종사의 56%는 비행 중에 잠에 빠진 적 있고, 29%는 잠에서 깼을 때 다른 조종사가 자고 있는 것을 본 적 있다고 답했다. 이런 일은 일어난다. 2022년 8월,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로 향하는 에티오피아 항공의 조종사 두 명은 37,000 고도에서 동시에 잠들었다. 하강 지점을 지나친 후 오토파일럿이 해제되는 소리를 듣고서야 잠에서 깬다.

에어 인디아 익스프레스 812편의 잠든 기장은 착륙할 때가 되면 전구가 켜진 것처럼 번쩍 깨어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까.


테이블탑 활주로

망갈로르 공항의 활주로는 테이블탑 활주로다. 이름 그대로 탁자처럼 생겼다. 지형지물이 복잡한 지역 위에 활주로만 책상처럼 반듯하게 솟아있다. 각도에 따라 테이블 위와 아래의 단차가 안 보여 같은 높이로 보이는 착시를 일으킨다. 에어 인디아 익스프레스는 요주의 공항으로 지정하고 기장만 이착륙할 수 있게 제한을 걸었다.

공항에는 두 개의 활주로가 있다. 오래된 27/09 활주로는 길이 1625m다. 이 활주로에선 737-200기가 활주로를 벗어나는 준사고가 있었지만, 인명피해로 이어지는 대형사고는 없었다. 2006년 2450m 길이의 24/06  활주로와 새 터미널이 열렸다. 이제 737-800과 a320이 착륙할 수 있다. 2010년까지 큰 사고 없이 운영되었다. 그렇다고 안전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 


“큰 사고 없이 활주로를 거쳐간 조종사의 기술과 전문성을 칭찬해야 합니다. 망갈로르 공항은 아직까진 오점이 없지요.” 어느 에어 인디아 조종사. 더 텔레그래프.


기장은 망갈로르에 16번 착륙했다. 부기장도 66번 착륙했다.


하강

5시 47분, 망갈로르 공항 77마일 앞에서 하강 허가를 받는다. 관제 레이더의 지원이 없기 때문에 하강 거리가 상대적으로 짧다. 가시거리 6km. 24번 활주로에 ILS/DME ARC접근을 해야 한다.


하강 전 접근 브리핑이 진행된다. 처음으로 기장과 부기장 사이에 대화가 오간다. 그러나 표준에서 벗어난 불완전한 브리핑이다. 기장은 잠에서 깨었을까. 아직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접근 브리핑은 불완전하다.

5시 50분 54초. 50마일 앞. 기장은 하강률을 높이기 위해 스피드 브레이크를 작동시킨다. 접근 브리핑을 포함한 하강준비는 150마일 앞에서 시작되어 순항고도 아래로 내려오기 전 끝나야 한다. 


아크턴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 기장은 하품을 하고 목청을 가다듬는다. 부기장도 길게 하품을 하다 휘파람을 분다. 


“속도 210노트” 

원하는 만큼 속도가 줄지 않고 고도 관리도 되지 않는다. 

“기어 다운”

기장은 기어를 내린다. 하강률을 더 높여야 한다.

“너무 높습니다!”

부기장은 너무 높다고 말한다. 2.5마일 앞에서도 표준 하강 경로보다 두 배 높이다. EGPWS가 2500피트 고도를 알린다.


적절한 위치에서 ILS신호를 잡아야 한다. 활주로가 바로 밑에 보인다. 기장은 “Oh, my God.” 탄식을 뱉는다. 부기장이 복행을 권유한다.  


“복행 하시죠?”


선택의 여지가 없다. 복행 선언이 있으면 당연히 따라야 한다. 기장은 하강 경로가 잘못되었다고 인정한다. 


"하강경로가 잘못됐어.”


그러나 복행 할 마음은 없다. 기수를 급히 낮춘다. 

부기장은 복행을 선언한다. 정밀계기접근시 1000피트 고도에서도 안정이 되지 않으면 복행해야 한다. 1마일도 남지 않았다. 부기장은 또다시 복행을 말한다. 


“기장님 복행 하셔야 합니다.” 

기장은 침묵한다. 부기장이 다시 기체가 불안정하다고 말한다.  


“Unstable” 


기장은 침묵으로 의지를 보인다. 조종석에 싱크레이트 경고음과 풀업 경고음이 울린다. 기장은 기수를 무리하게 낮추고 있다.


터치다운

결국 접지를 한다. 우격다짐으로 착륙했다. 활주로 시작점에서 5200피트 떨어진 곳이다. 활주로 끝까지 2800피트만 남았다. 


부기장이 활주로가 충분히 남아있지 않다고 외친다. 


“활주로가 충분히 남지 않았어요.”

기장은 역추진을 한다. 보잉이 정한 표준작동절차보다 지연된 시도다. 기장은 비명을 지른다. 


“아앗. 충돌하겠어!”


활주로를 벗어난다. 오른쪽 날개가 ILS 안테나에 충돌한다. 이어 공항 펜스를 들이받고도 멈추지 않는다. 테이블 위에서 떨어진다. 아래는 협곡이다. 기장처럼 떨어지는 충격에 즉사한 사람도 있지만, 불길에 휩싸여 죽은 사람도 있다. 아비규환이다. 


일부 생존자들은 착륙 과정에서 깨어있었다. 연기가 나는 것을 보고 안전벨트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객실은 암흑 속이었지만 동체에 난 균열 속으로 햇빛이 들어왔다. 생존자들은 날개 뒤 균열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왔다. 직후 비행기에 불이 붙었다. 


152명의 승객, 6명의 승무원이 목숨을 잃었다. 생존자는 8명뿐이었다.


유튜브로 보기 https://youtu.be/W_J2sfU3ZM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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