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에로플로트 593편
1994년 3월 8일. 인도 델리 인디라 국제공항. 사하라 인디아 항공의 737기가 훈련 비행을 하고 있다. 탑승자는 교관과 훈련 조종사 3명. 한쪽 엔진 고장 상황을 상정한 이착륙 훈련이다. 다섯 번째로 28번 활주로를 터치하고 다시 이륙할 때 문제가 생긴다. 훈련 조종사가 방향타를 잘못 사용해 기체가 기울지만, 교관 조종사는 뒷수습을 하지 못한다. 기체는 200여 미터 상승한 후 좌측으로 급격히 기울며 국제 터미널 주기장에 추락하고 만다.
국제 터미널 45번 베이에는 갑작스러운 고장으로 긴급 착륙해 정비 중인 아에로플로트 항공의 일류신 86편이 주기되어 있었다. 아에로플로트 항공의 정비사 두 명을 포함해 5명이 사망한다. 예기치 않은 고장으로 인해, 예정에 없던 공항에 착륙하여 정비하는 중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악운에 악운이 겹친 어이없는 사고였다. 이렇게 어이없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아에로플로트 항공은 이보다 더 운 나쁜 일을 몇 주 뒤 겪는다.
1994년 3월 23일, 16시 39분. 아에로플로트 593편이 러시아 모스크바 북서쪽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에서 홍콩 카이탁 공항을 향해 이륙한다.
항공기는 유럽 은행 소유로 프랑스에 등록이 되어있고, 아에로플로트 러시아 국제 항공사가 임대해 3년째 사용 중이다. 아에로플로트는 러시아의 국영 항송사로 긴 역사 내내 소련제 항공기만을 도입해 왔지만, 고르바쵸프의 개방 정책 이후 에어버스와 계약을 맺었고 1994년에는 보잉사와도 계약을 맺었다.
기종 A310-300. 애칭은 글린카. 러시아에서 사랑받는 작곡가 미하일 글린카에게서 따왔다. 기장과 교대기장, 부기장, 객실 승무원 9명, 승객 63명이 탑승했다. 승객 63명 중 23명은 외국인 승객. 40명은 러시아 승객이다. 이중 서른 명가량이 아에로플로트 항공사 직원과 가족들이다. 외국인 승객 중 한 명은 홍콩을 기점으로 한약재 무역업을 하는 한국인 강 모씨였다.
기장 안드레이 빅토르비치 다닐로프 40세. 총 비행시간 9,675시간. 비행시간의 반은 4700시간을 TU134로 비행했다.
교대 기장 야로슬라프 블라디미로비치 쿠르딘스키 39세. 총 비행시간 8,940시간. A310 비행시간 907시간. 이중 임무 조종사로 비행한 것은 735시간. 많은 시간 Yak-40 (1636시간), AN-12 (500시간), IL-76(2265시간) 등 러시아 항공기를 운항했다.
부기장 이고르 블라디미로비치 피스카레프 33세. A310 면장은 1993년 4월에 땄다. 총 비행시간 5,855시간. 440시간은 A310 부기장으로 비행했으며, 3,105시간은 TU-134 기종으로 비행했다.
세 명의 조종사 모두 소련제 항공기로 비행해 왔다.
다닐로프 기장은 4시간 동안 조종을 하다 노부쿠츠네츠크 상공에 이르자, 쿠드린스키 기장과 교대해 조종간을 넘기고 객실에서 휴식을 취한다. 객실에는 쿠드린스키 기장의 아들 엘다(15세)와 딸 야나(13세), 그리고 친척인 현직 조종사 블라디미르 마카로프가 승객으로 타고 있었다.
조종사가 교대하는 걸 본 마카로프는 아이들을 데리고 조종석에 깜짝 방문을 한다. 9·11 이후 낯선 풍경이 되어버렸지만, 20세기에 조종석 출입은 흔한 일이다. 객실에 승객으로 있던 조종사도 비상상황을 확인하면 조종석으로 뛰어가 도움을 주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
쿠드린스키 기장은 자녀들의 방문이 즐겁다. 딸 야나를 기장석에 앉힌다.
쿠드린스키: 여기 아빠 자리에 앉아 보렴, 어때?
조종권을 부기장에게 넘기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은 지금은 물론이고 1994년 당시의 운항 매뉴얼에도 어긋나는 행동이었다.
민간항공 비행운영 매뉴얼 (NPP GA- 85)
7.1.4
비행 중 승무원들은 자기 위치에서 안전벨트를 매고 있어야 한다.
7.1.5
조종사는 비행 중 임무 받는 곳에 있어야 한다. 비행 조건이 좋은 경우 잠시 자리를 비울 수 있다. 이때는 부조종사가 조종해야 하며, 다른 승무원들은 자기 위치에 있어야 한다. 승무원은 조종사 허락 없이 위치를 떠나는 것이 금지된다.
4.4.2
비행 임무를 맡은 모든 승무원은 항공기 운항과 관련된 임무 수행이나 생리적 필요를 위해 자리를 비울 경우는 제외하고, 자기 위치에 남아 있어야 한다.
야나: 아빠 자리가 낮아요.
야나에게 성인에게 맞춰진 조종석 좌석은 너무 낮다. 쿠드린스키 기장은 한 걸음 더 나간다.
쿠드린스키: 잠시 비행기를 조종해 보지 않을래?
쿠드린스키: 그래. 조종해 봐.
야나가 조종간을 잡자 옆에 선 쿠드린스키는 방위각 모드로 변경하고 방위를 15도 돌려 좌선회를 한다. 선회각이 20도가 되었을 때 다시 방위각 노브를 돌려 우선회 한다.
기체는 111도 방위에서 102도로 변경된다. 이어서 115방위로 선회한 후 다시 원래의 방위각 102도로 복귀한다. 쿠드린스키 기장은 딸이 조종간을 잡고 있는 동안, 오토파일럿의 방위 선택 노브를 돌려 실제로 조종하는 듯한 체험을 시켜준 것이다. 그리고 다시 NAV 버튼을 눌러 항법 모드로 변경한다.
야나는 기장석에서 일어난다. 야나가 기장석에 앉아 있었던 시간은 7.5분. 그사이 부기장 피스카로브는 노보시비르스크 컨트롤을 교신하고, 노보쿠즈네스크 컨트롤과 교신한다. 이제 곧 ZAKIR 지점에 도착할 것이다.
부기장은 기장의 자녀 사랑을 방해할 생각이 없다. 자신의 조종석도 최대한 뒤로 밀어 아이들이 조종석을 구경하기 좋게 만들어 준다.
마카로브: 자, 우리 조종사 사진을 찍어 볼까나.
쿠드린스키 기장의 아들 엘다가 기장석에 앉는다. 마카로브 삼촌이 카메라로 촬영한다.
엘다: 사진 찍으셨어요?
마카로브: 그럼.
사진이 나오면 아이들에게 자랑할 수 있을 것이다. 쿠드린스키 기장은 딸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조종 체험 놀이를 반복한다. 똑같은 흉내내기는 금방 시시해진다.
엘다: 이거 조종간 돌려 봐도 돼요?
쿠드린스키: 물론.
쿠드린스키 기장은 조종간 작동을 허락한다. 엄격히 금지된 규정이 간단하게 깨어졌다.
7.1.3
비행 임무가 주어지지 않은 사람은 조종석에 있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조종사 마카로브도 조종석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7.1.6
비행 중, 조종사 한 명은 기체의 자세와 고도 변화를 계속 관찰하여야 한다. 오토파일럿으로 운항할 때 항공기를 조종하는 승무원은 모든 조작을 하기 전 다른 승무원에게 보고해야 한다.
아이들의 체험을 위해 방위각을 돌릴 때, 쿠드린스키는 일일이 이 수치를 부기장에게 말해줘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엘다는 조종간을 좌로 3,4도 꺾고 3초가량 유지한다. 이때, 조종간에 걸린 힘은 10kg가량. 오토파일럿은 정상적으로 작동 중이다. 쿠드린스키 기장은 아들이 조종간을 좌로 돌리는 것에 맞춰 방위각 노브를 좌로 돌린다. 엘다는 조종간이 실제로 작동하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조종간에 가해지는 힘이 13kg까지 증가한다. 항공기의 안전 메커니즘에 혼란이 일어난다. 조종간에 11~13kg 가해지면 에일러론 액추에이터가 분리된다. 이때는 경고등이나 경고음이 없기 때문에 조종사가 오토파일럿 해제 순간을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조종사가 직접 조종을 하려는 것인지 잘못 조종간을 건드렸는지 구분하기 힘든 회색지대에 놓여있다.
엘다가 조종간을 좌로 꺾는다. 오토파일럿은 원래 지정된 방위각을 유지하기 위해 역동작을 한다. 가해지는 힘에 반대되는 조작을 하기 위해 오른쪽 에일러론을 꺾는다. 쿠드린스키 기장은 아들의 조종에 맞추어 방위를 좌측으로 15도가량 꺾는다. 오토파일럿은 에일러론을 4도가량 꺾는다. 좌선회각이 21.5도에 도달한다.
쿠드린스키는 방위 선택 노브를 원래 비행 방향으로 돌려놓는다. 오토파일럿은 선회각을 줄인다. 우측 에일러론이 오토파일럿 지시에 따라 우선회를 위해 움직이지만, 좌측 에일러론은 조종간 조작에 따라 1도로 고정된다. 기체는 좌선회에서 우선회로 바뀐다.
선회각이 줄어들자 쿠드린스키는 방위각 모드에서 NAV 모드로 변경시킨다. 오토파일럿은 선회각은 6도에서 15도로 증가시켜 지정된 방향으로 돌아가려 한다. 좌측 에일러론은 여전히 1도를 유지한다.
딸 야나는 아빠가 동생의 동작을 따라가지 못하게 눈을 가리는 장난을 친다. 좌선회각은 15도가량. 엘다는 조종간을 3~5도 우측으로 돌리고. 오토파일럿은 선회각을 줄이려 한다. 조종간에 걸린 힘은 11~13kg.
엘다는 조종간을 좌로 기울이고 있다. 부조종사 피스카레브는 조종간을 우로 기울인다. 좌우측 조종간 연결에 문제가 생기면서 계기에 아무 표시 없이 선회 조종 시스템이 해제된다.
엘다는 조종간에 가해지는 힘이 왜 달라지는지 알 수가 없다. 러시아기로 경력을 쌓아온 조종사들은 이런 특이한 조작 상황에서 오토파일럿이 해제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부기장의 조종간도 저항이 달라졌지만, 부기장은 엘다가 조종간을 작동시키고 있기 때문에 달라질 것이라 판단한다.
아무런 경고가 없으니 쿠드린스키 기장도 오토파일럿이 해제된 상황을 알 수 없다. 조종간이 조금씩 우측으로 돌아간다. 우선회각이 점점 커지지만, 기장 쿠드린스키와 부기장 피스카레브는 눈치채지 못한다. 캄캄한 고공의 밤하늘이다. 눈으로 참조할 수 있는 지형지물은 없다.
선회각은 우측 20도까지 초당 1도씩 계속 올라간다. 비행 한계치 45도를 넘어 계속 증가한다. 엘다가 묻는다.
엘다: 왜 돌아가죠?
엘다가 야나와 놀고 있는 아빠를 부른다.
쿠드린스키: 저절로 돌아간다고?
엘다: 네.
비행기가 왜 선회하는지 쿠드린스키, 피스카레브, 마카로브 세 명의 조종사 모두 이해할 수 없다. 당장 해결해야 한다.
마카로브: 홀딩 패턴으로 진입하려는 거 아냐.
피스카레브: 홀딩 구간에 들어간 거지요.
쿠드린스키: 그런 건가?
피스카레브: 확실합니다.
그렇지 않다. 급격히 선회하는 둥근 패턴이 마치 홀딩 패턴처럼 보였기 때문에 조종사들이 착각한 것이었다. 선회각이 커지자 오토파일럿은 더 이상 고도를 유지할 수 없다. 기체는 하강하기 시작한다. 선회각은 무려 50도. 서 있기 힘든 각도이다. 당시 A310은 선회각 초과를 초기에 알아차릴 경고 시스템이 없었다. 쿠드린스키는 엘다 등에 가려 자세 표시기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기체에 진동이 오면서 받음각이 2초 만에 4.5도에서 10도까지 증가한다.
마카로브: 이것 봐.
쿠드린스키: 조종간 잡아. 꼭 잡고 있어. 버텨!
쿠드린스키가 조종간을 붙들라고 하자, 엘다는 안간힘을 다해 조종간을 중립 위치에 두려고 한다. 선회각은 63도로 늘어난다. 쿠드린스키와 마카로브는 반대쪽으로 조종간을 꺾으라며 소리친다. 부조종사 피스카레브도 조종간을 잡으려 하지만 조종석을 너무 뒤로 밀어두었다. 키가 160cm인 피스카레프는 조종간을 제대로 잡을 수가 없다.
선회각은 수직으로 돌아간다, 기수는 아래를 향해 최대 50도까지 내려가있다.
피스카레브: 조종간 왼쪽. 저긴 지상이야!
기체속도는 740km까지 증가한다. 기체에 가해지는 중력은 2G. 쿠드린스키는 기장석에 돌아가려 하지만, 중력 가속도에 짓눌린다.
쿠드린스키: 비켜!
피스카레브: 쓰로틀 완전히 내려!
속도가 시속 180km 이하로 떨어진다.
피스카레브: 추력 최대! 추력 최대! 추력 최대!
기체는 간신히 조종 가능한 상태가 되었지만, 기수가 들리며 다시 속도를 잃는다. 쿠드린스키 기장이 선회를 멈추기 위한 조작을 한다. 고도는 3,400미터.
17:58:01
이내 지상에 추락하고 만다. 72명이 어처구니없이 희생되었다. 조종사들도 승객들도 최후의 순간까지 추락의 이유를 몰랐을 것이다.
유튜브에서 보기 https://youtu.be/cDgZ0gZSh2M